brunch

통영-북포루에서 취하다

5.15.22

by 류재숙 Monica Shim

동포루 서포루와 함께 망루로 쓰였다는 북포루는 하늘로 솟은 듯 높이 위치해 있었다. 북포루 가는 길을 찾아보니 등산로를 따라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고 나온다.

통영시 대부분이 가파른 언덕길이어서 숨차게 오르내려야 했는데 까마득히 높이 떠있는 북포루는 엄두가 나지 않아 방문을 포기할까 했다. 못먹는 떡이 맛있어 보이는지 옆지기는 줄곧 저길 가봐야할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북포루의 일몰이 장관이라는데" 하며 은근한 추파를 던지는 바람에 결국 사진기를 둘러매고 나섰다.


북포루로 가는 등산로는 여러군데가 있었는데 헬기장쪽으로 가는 길과 문화맨션길, 북신성당 입구길이 있었다. 헬기장 방향이 가장 짧은 길이라 해서 그쪽으로 정했다. 모두 가파른 산길이었다.

산속에 자리잡은 멋진 교육관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올랐다. 소나무가 무성히 자라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외엔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볼 수 없어 이 길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10여분을 오르니 헬기장이 나왔다. 안내판이 제대로 없어 헤매다 헬기장을 돌아 통과하니 등산로가 이어졌다. 이런 으슥한 산길에도 운동기구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한국은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운동할 수 있게 시설이 잘되어있다. 숲도서관이란 빨간 전화부스 같은 박스에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숲 속에서 책을 읽으면 상상력이 배가 될 것 같다.


산 중턱에 오르니 오두막집이 하나 있다. 사람이 사는 건지 빈집인지 돌아가보니 어머나! 넓은 정원에 꽃이 만발이다. 한쪽에 있는 텃밭도 제법 농사 규모가 크다. 티브이에서 본 자연인이 떠올랐다. 주인장의 손길이 정원 곳곳에 닿아 천국의 꽃밭을 만들어 놓았다. 한국에 예쁜 정원 가꾸기가 유행인지 유투브에 올리는 갖가지 아름다운 정원들을 보며 겨우 연명하는 내 정원과 비교해 부러워했었다.


40여분 산길을 걸어 땀이 등에 배일 무렵이 되자 북포루의 지붕이 보였다. 옛날엔 이 가파른 산길을 망루지기는 매일 올라야했을 것이다.

'통영성지는 숙종4년 삼도수군통제영을 왜적으로부터 방어하고 전쟁에 대비해 쌓은 통영성의 터이다. 성은 174m의 여황산을 등지고 있고 서피랑에서 동피랑으로 이어져 있다. 피랑은 절벽이란 뜻이다. 성벽에는 4개의 대문과 적이 알 수 없도록 꾸민 2개의 암문이 있다. 산꼭대기에는 장수들이 병사를 지휘하던 3개의 포루가 있었는데 북 동 서에 있는 장수의 지휘소란 뜻으로 북장대 동장대 서장대라 불렀다. 성안에는 9개 공동 우물과 3개 큰 못이 있었다. 통영성은 고종 32년 통제영이 폐지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주변 곳곳에 민가가 들어서고 도로가 개설되면서 지금은 성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있다.'


빽빽한 나무 숲에 가려 보이지 않던 전망이 북포루에 오르자 확 트인다. 아래로 강구안과 미륵도, 그 너머까지 수많은 섬들이 이어지는 한려수도, 섬사이를 오가는 배들이 움직이는 그림이 되어 시야에 담긴다. 통영이 한국의 나폴리란 별칭이 붙었다더니 가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동안 그저 말없이 서서 이 아름다운 자연의 작품을 지켜보았다.


'이런 곳에 살면서 어찌 시인이고 화가고 아니될 수 있으랴.'


통영대교로 해가 저문다. 저무는 해의 기운이 바다를 데워 바다가 뜨거워 지고 있다. 마이다스의 손길이 세상을 덮는다. 바다와 섬들, 그 사이 오가는 배들이 황금 빛으로 물든다. 황금 어장에서 잡은 고기를 가득 실은 황금 어선이 황금빛 항구로 들어선다. 하늘도 바다도 섬도 사람도 아니 취할 수 없다.









keyword
이전 08화통영과 자부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