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통영과 자부심

5.7 2022

by 류재숙 Monica Shim

통영에서는 길을 가다가도 내가 찾고 있는 것에 대해 물으면 노인이든 젊은이든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박경리작가 생가를 찾아 헤맬 때도 길가던 할아버지는 생가가 어디에 있는지 길 안내뿐 아니라 이 근처가 김약국의 딸들 배경이 된 곳이라며 덧붙인 설명까지 해주셨다. 김용익 김용식 기념관을 찾을 때도, 청마 문학관을 찾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비 가게 주인에게 통영에 고급 누비 가게가 왜 이리 많은지 궁금하다 물었을 때도 그랬다. 옛 통영은 삼군 통제령이 있던 곳이라 한양에서 발령받은 고위직 무관들이 식솔을 데리고 이주하면서 한양의 고급문화가 많이 유입되어 그렇다고 주인장은 답했다. 건어물 가게 아저씨는 이 통영 땅이 어떤 역사를 가졌고 어떤 사람들이 살던 곳이고 그래서 지금의 통영이 어떤 특징을 지니게 된 것까지 얘기해 주었다.


작은 도시이니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오래 살면 당연히 안다손치더라도 내가 만났던 주민마다 통영의 역사든 통영 출신 작가든 그곳의 유래에 대해서든 어찌 그리 자세히 아는지 흥미로웠다. 이곳 주민들은 어릴 때부터 따로 통영에 대한 역사를 배우고 관광교육을 받는 걸까.


그래서 통영 출신인 숙소 주인장에게 그 궁금증을 물었더니 주민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다. 그건 자부심이었다. 예부터 군사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김춘수 유치환 박경리 김상옥 김용익 등 수많은 문인들과 윤이상 전혁림 등 걸출한 예술가가 많이 배출된 이곳이 바로 내 고향인 통영이오 하는 자부심. 그래서 많은 사람이 통영을 떠났다가도 돌아오게 되는 회귀본능을 가지는 건지도 모른다.


미국에 20여 년을 살면서 그동안 한국에서 온 분들을 많이 만났고 한국 방문 때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유난히 한국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걸 보았다. 비교적 다른 직업군보다 안정적이고 수입이 좋다는 의사들은 자기들이 정부 의료정책의 희생양이라 하고, 정부 복지로 혜택을 많이 받는 노인들도 주니까 받지만 나라가 망하려고 돈을 퍼준다 하고, 젊은이들은 비싼 휴대폰을 지니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도 부모와 정부를 잘못 만나 지옥이라 했다.


바깥에서 보는 한국은 작은 땅덩어리와 빈약한 자원으로도 비약한 발전을 이룬 대단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은 왜 저리 불만이고 행복하지 않은지 궁금했다. 지금의 한국은 내가 사는, 소위 세계 1위 경제라는 미국과 비교해봐도 생활의 편리함이나 치안, 의료시스템, 복지문제 등이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곳 한인들은 요즘 한국 방문을 하고 오면 괜한 위축감이 든다고 한다. 한국의 발전된 IT시스템이나 사회 전반의 인프라를 경험하곤 마치 신석기시대에 살다가 선진문화를 만난 듯 어리버리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패션이든 미용이든 미국보다 몇 발 앞서가니 인척들에게 왜 그리 사냐고 한마디 듣지 않으려면 미리 몸단장하고 가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제대로 갖춰진 버스 정류장이 없어 캘리포니아의 뙤약볕아래서 앉을 의자도 없이 30분이상 버스를 기다려야하는 미국을 보다가 버스가 몇 분내에 도착할거란 안내판까지 달린 한국의 최첨단 버스 정류장을 처음 봤을 때도, 핸드폰 하나면 교통카드 결제까지 되는 시스템도( 이곳 한인들은 한국가서 버스탈 때 결제도 못해 헤매다 간첩으로 오해 받을까봐 버스 타기도 망설여진다 한다), 호텔처럼 으리 번쩍한 병원 분위기도, 아직도 열쇠로 현관문을 여는 미국과 달리 키번호만 누르면 출입이 가능한 현관문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이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거기엔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자부심의 결핍이나 상대적인 행복감도 한몫하는 게 아닐까. 주위 사람이나 티브이에서 잘 사는 사람이나 여행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 내가 가진 것이 많음에도 상대가 가진 떡에 마음을 앗기는, 그래서 상대적인 불행을 느끼는 게 아닐까. 내가 가진 것, 내 환경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랑스러움이 없다면 어떤 혜택을 받든 불만스럽지 않겠는가.


어쩌면 지나치게 발달한 한국의 SNS시스템도 상대적 불행에 한 몫할 수도 있다. 날마다 지인들이 올리는 여행사진 쇼핑사진을 보며 나만 뒤쳐져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우울해질 것이다.


미국 대도시면 으례 볼 수 있는 수많은 홈리스들로 인해 주민들이 이유없는 폭행을 당하고 방화가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가 난무해도 방관하는 시 정부, 개인 파산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과도한 미국의 의료비 문제 (맹장 수술 한 번에 5천만원 이상의 의료비가 나온다.), 매일 일어나다시피하는 총기사건으로 국민이 불안에 떨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미국정부, 선진국이라 칭하는 미국사회에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그늘이 있음을 한국인이 안다면 미국과 비교해 잠시나마 행복해 지려나.

미국에도 불평등이 존재하고 어마한 부의 차이가 있고 불편한 제도와 개선되지 않는 일들과 부정부패가 많다. 어느 나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현상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싶은.


그런데 미국인들이 정부나 이웃의 부자들을 보고 내가 불행하다 여기는 것을 많이 보진 못했다. 미국에선 옆집 부자가 롤스로이스를 몬다고 내가 불행하다 느끼진 않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회 분위기가 그리 느껴진다. 한국엔 옆집에서 롤스로이스를 몬다면 나는 왜 이리 사는가 하고 불행해지는 것 같다. 사회가 불평등해서, 부모를 잘못 만나, 정부가, 대통령이 무능해서 그렇다고 탓을 한다.


한국인은 어쩜 평등에 대한 탁월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건지 아니면 만족 결핍증에 시달리는 건지 궁금하다. 그래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한건 지도 모른다. 다 함께, 똑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평등의식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질 때 당시 미국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사회가 많이 불안했었다. "He is not my president!" 라 외치며 대도시마다 데모의 물결이 일었다.


데모대에 열심히 참여하던 내 환자가 "한국은 정말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라고 부러워했다. 어떻게 국민들의 물리적 희생 없이 촛불시위만으로 대통령을 퇴출할 수 있는지라며. 아직 여성 대통령 하나 배출하지 못한 미국의 여성지위보다 한국은 남녀평등에도 뛰어난 민주의식을 가진 것 같다며 부러워했다. 그녀가 한국의 힘들었던 역사를 다 알지 못하고 하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한편 해외에선 한국을 이렇게 보고 있구나 하는 은근한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통영을 다시 본다.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에 대한 자부심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는지, 힘든 시간도 잘 견디게 하는지. 선진국 궤도에 오른 내 나라가 이젠 그동안 국민이 함께 고생하며 이룬 업적에 자부심을 갖고, 현재 내가 누리는 것에 감사하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국 방문 동안 해본다.



keyword
이전 07화통영-박경리 작가 생가를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