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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장터에서

5.17.22

by 류재숙 Monica Shim

이른 아침부터 아랫동네가 술렁인다. 2일과 7일마다 열리는 통영 장날이다. 괜스레 마음이 들떠 장터 구경을 나섰다. 시장 골목엔 파랑 빨강의 파라솔이 펼쳐지고 옷걸이가 잔뜩 늘어서더니 양복과 각종 옷들이 삽시간에 걸린다. 알록달록 색깔도 고운 이불과 베개들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옆으로 갓 따온 매끈한 호박과 고구마 줄기, 산나물을 가득 담은 빨간 고무대야가 줄을 선다. 봉고차에 실려온 뻥튀기 봉지가 산처럼 쌓인다. 아이스크림 콘 모양을 파는 할아버지가 있어 뭔가 했더니 죽순이다. 갓 캐어온 붉은 고구마가 흙이 채 털리지 않은 채 나와있다.


"한 바구니에 만원" 소리쳐 부르길래 다가가 보니 단짠 맛이 난다는 짭짤이 토마토와 하우스에서 갓 나온 까실한 참외가 파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객을 유혹한다. 까맣고 긴 열매가 조롱조롱 달린 처음 보는 과일이 있어 뭔가 물으니 가지 포도라 한다. 무엇이든 자를 수 있다는 막 칼, 단숨에 풀을 벤다는 기다란 낫, 크고 작은 못들과 각종 농기구를 선보이는 대장간도 한자리를 잡았다. 집에서 손수 만들었다는 아기 엉덩이처럼 탱탱한 손두부, 보기만 해도 알크러니 매울 것 같은 청양고추에 철이른 수박까지 있다.


"골라 골라 오천 원" 손발 장단에 맞춰 호객하는 총각은 화려한 몸빼바지를 입었다. 붉은 장화에 면장갑을 낀 아줌마들이 갓 잡아 온 생선 머리를 단 칼에 자른다. 새벽부터 길을 나선 할머니들이 삶은 산나물을 소쿠리에 담아 좌판을 펼쳤다. 큼지막한 고무다라이와 색깔 고운 바가지,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주렁주렁 달린 트럭에 손님이 몰린다.


여기저기 흥정이 벌어진다. 나물을 조금만 더 담으라느니 고구마 하나를 더 끼워달라느니 남는 거 없다느니 실랑이가 오간다. 번쩍이는 승용차를 타고 온 멋쟁이 사모님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고구마 한박스를 사 간다. 할머니의 바퀴 달린 장바구니는 영감님 줄 양말에 저녁 찬거리에 손주 먹일 뻥튀기 과자로 그득하다. 등산 가방을 둘러 맨 아저씨는 손장갑을 흥정하고, 엄마 손 잡고 나온 꼬마는 테이프가 풀리며 깡충거리는 토끼 장난감에 한눈 팔려있다.


통영 장터에 사람이 넘치고 삶이 넘치고 인심도 넘친다. 쭉쭉빵빵 예쁜 아가씨들이 구십도 각도로 인사하며 반기는 백화점이나, 눈치로만 훑던 명품들 앞에서 쉬 열리지 않던 지갑이 시골장터에선 다르다. 사람 냄새나는 곳을 돈도 아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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