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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 꽃이 된 도시

5.21.2022 토 맑음 그리고 비

by 류재숙 Monica Shim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던 날씨가 오후엔 급기야 소나기가 다녀갔다. 내일이면 한 달간의 통영과의 만남이 막을 내린다. 늦은 이 시각, 종일 북적이던 중앙시장에는 인적이 끊기고 강구안을 낭만으로 가득 채우던 문화마당 음악공연도 끝나 바람 소리만 남았다.


밤바다엔 고깃배의 불빛이 물위에 일렁이고 있다. 점멸하는 신호등과 호텔의 네온사인, 낯선 도시에서 숙소를 찾아 헤매는 늦은 여행객의 차 헤드라이트만이 잠든 통영을 이따금씩 비춘다.


숙소 너머 높이 떠있던 미륵도는 깜깜한 어둠에 녹아들어 그곳이 원래 섬이었는지 바다였는지 분간이 어렵다. 섬은 바다에 잠기고 바다도 섬에 잠겼다. 점점이 떠있던 밤배마저 깊은 잠에 들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향기가 나는 인연이 있다. 통영이 그렇다. 한 달간 이런저런 모습으로 만났어도 아직도 궁금하고 더 깊이 연을 맺고 싶은 도시, 작지만 거대한 작은 거인 같은 도시다. 역사면 역사, 자연경관이면 경관, 문학, 예술, 스포츠..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 같은 도시, 통영.


글로 다 채울 수 없었던 곳곳의 보석 같던 명소들, 그림 같던 달아항의 일몰, 은하수를 길어다 병기를 씻는다는 세병관, 정치욕의 희생양이 된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의 기념관, 죽어서도 이 땅을 지키는 듯 바다를 향해 큰 칼 차고 서 계시던 이순신공원, 수루에 홀로 앉아 시름하던 이충무공의 애잔한 마음을 엿보았던 한산도, 바다 밑을 걸어본 해저터널, 꽃의 시인 김춘수 유품 전시관, 빛의 화가 전혁림 전시회, 외교관과 작가로 빛난 형제 김용식 김용익 기념관, 한려수도의 장관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던 통영 케이블카, 빛의 축제 디피랑... 그리고 못다 만난 인연은 다음으로 기약해 본다. 아쉬움의 여지가 있어야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침내 나에게 와 꽃이 된 도시 통영. 골목골목 새겨둔 발자국과 숨차게 오르던 까꾸막, 푸른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한려수도의 섬들, 통영 사람들, 그들의 문학과 예술, 이들은 꽃으로 남아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별은 아쉬우나 회자정리 (會者定離) 거자필반 (去者必返) 이란 말을 마음에 담고 통영을 떠난다.



윤이상기념관/ 김춘수 유품전시관/해저터널

통영 사람들

남망산 조각공원

서피랑(서포루)

동피랑(동포루)
디피랑의 디지털쇼 /케이블카
김용식 김용익 기념관 / 김용익 소설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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