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테리언 선언

by 햇살바람


플렉시테리언이 되기로 마음먹은 지 한 달이 지났다. 플렉시테리언은 플렉시블(flexible, 유연한)과 베지테리언(vegetarian, 채식주의자)의 합성어로, 채식을 주로 하지만 가끔 고기류도 함께 먹는 준채식주의자를 뜻한다. 채식주의자의 단계 중에서 가장 유연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다.


채식을 하는 이유는 건강 문제, 동물 보호, 환경 보호 등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내 경우에는 환경 문제 때문에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내 아이에게 깨끗한 지구를 남겨주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지만. 어쨌거나 지난 10년 동안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육류 섭취를 줄이는 사람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육류 섭취를 최소 75%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플렉시테리언이 되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플렉시테리언이 되는 데 따르는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에 어쩐지 애매모호하게 느껴졌다. 플렉시테리언의 바로 윗 단계인 폴로 베지테리언 같은 경우만 해도 가금류까지만 허용되고 그 외의 육류는 먹지 않는다는 규칙이 명확한 데 반해 플렉시테리언은 '가끔' 육류를 허용하는 것이다 보니 그 '가끔'에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야 했다.


그 규칙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니 '하루에 한 끼 채식하기'부터 '특별한 날에만 육류 먹기', '메뉴 선택권이 없을 때만 육류 먹기' 등 실천 방법들이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너무 넓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고기 먹기'로 정해볼까? 그 규칙을 지킬 수는 있을까? 내가 얼마나 자주 고기를 먹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일단 내가 한 달에 고기를 몇 번이나 먹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빨간색 표시가 고기류를 섭취한 것



달력에 그날 먹은 음식 세 끼를 적고, 고기류(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등)가 들어간 음식은 빨간색으로 표시하고(음식에 고기가 조금만 들어가도 빨간색 표시를 했다), 고기류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초록색으로 표시를 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것 중에서도 내가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은 빗금을 쳤다. 빗금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남편의 입맛에 맞춘 날, 가족모임이 있던 날 등)에 먹은 것이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X 표시를 했다.


식단 기록을 의식해 평소보다 채식을 지향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고기가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은 적은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얼마나 채식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초록색으로 표시된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의외로, 내가 먹고 싶어서 고기를 먹을 때 외에는 고기가 딱히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 육류를 먹는 것만 허용된다면, 그 외의 많은 날을 채식을 하는 건 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원체 채소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고기도 좋아하기 때문에 고기를 줄일 수는 있어도 끊을 생각은 없다.


여하튼 한 달 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만의 규칙을 정할 수 있게 됐다.


내가 먹고 싶을 때, 일주일에 한 끼 육류 먹기.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 일주일에 두 끼 정도 육류 허용하기.


다소 어설퍼도 이렇게 플렉시테리언 선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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