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베란다가 좁다. 거실 쪽에는 베란다가 없고 옷방 겸 내 방 겸 창고로 쓰는 방 하나에만 베란다가 붙어 있다. 세탁기, 건조기, 재활용 쓰레기, 아기 물건 등만 놓아도 공간이 꽉 찬다. 그런 작은 베란다 구석에서 소리 없이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것들이 있으니, 바로 빈 소주병과 우유팩이다.
소주병은 보증금을 환불받기 위해서 모은다. 다 마신 소주병을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 가져가면 병당 100원을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주병 외에도 맥주병, 청량음료 병 등도 환급받을 수 있다. 우리는 소주병 외의 공병은 거의 나오지 않다 보니 소주병만 모으는 꼴이 됐다(보증금 환불이 가능한 공병은 라벨에 재사용 가능 표시와 보증금액이 명시되어 있다).
소주병을 모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작년에 남편이 마트에 가기 전에 베란다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챙겨 나가기에 뭔가 했는데, 빈 소주병을 들고 가서 환불받아 오더니 동전을 기분 좋게 내밀어 보였다. 이때까지 분리수거하기만 바빴지 공병을 환불받을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로 빈 소주병은 자연스럽게 따로 모으게 됐다. 병이 어느 정도 쌓이면 대부분 남편이 챙겨서 다녀오는데, 얼마 전에는 가는 길에 아파트 앞 분리수거장에서 소주병 몇 병을 더 주워서 같이 환불을 받고 왔다.
우유팩을 모으기 시작한 건 더 최근이다. 우유팩을 모아서 주민센터로 가져가면두루마리 휴지나 쓰레기봉투로 교환할 수 있다는 걸 알고나서부터다. 교환 기준은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른데, 내가 사는 곳은 종이팩 1kg를 가져가면 두루마리 휴지 1롤과 10L 종량제 봉투 1매로 바꿔준다.
공병 보증금 환불이나 우유팩 교환은, 소소하게 몇 푼을 아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더 큰 즐거움은 자원이 제대로 순환하도록 행동한다는 데 있다. 빈 병 같은 경우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재사용 또는 재활용을 할 수 있는데(재사용은 병을 세척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 재활용은 파쇄 용해 후에 다른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공병을 마트나 편의점에 반환하면 업체가 수거한 후 재사용될 수 있다.
우유팩도 전에는 종이류로 분리수거만 했었다.하지만 일반 종이와 종이팩은 공정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재활용 공정도 다르고 재활용 결과도 다르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됐다. 폐지는 새 종이로, 종이팩은 두루마리 휴지 등으로 재탄생된다. 그런데 종이팩을 일반 폐지와 함께 버릴 경우 재활용 공정에서 모두 폐기 처분된다고 한다(잘 살펴보면 분리배출 표시도 '종이'와 '종이팩'으로 각각 다르다!). 그럼에도 종이팩은 대부분 분리수거장에 수거함이 따로 없기 때문에 주민센터에 가서 교환해야제대로 재활용될수 있다.
처음에는 종이팩을 가위로 잘라 펼치고 씻어서 말리는 과정이 귀찮았지만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다. 우유를 다 마시자마자 잘라서 씻고, 조리대 구석에 올려놓고 말린다. 그렇게 몇 개가 쌓이면 베란다로 가져가는 식이다.
SNS를 통해 알게 된 그린 인플루언서중에는 거의 매일 집 앞 분리수거장으로 나가 다른 사람이 버린 우유팩을 주워다가 일일이 세척하는 분도 있다. 그런 분을 보고 있으면 내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만이라도 신경을 써야겠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