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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나를 세상에 남기려면

9화 『기억의 기억들』마리야 스테파노바 지음

by 북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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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은 기억력이 좋나요?


저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요. 당장 어제 아침부터 무엇을 먹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생각이 나시나요? 불과 몇백 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기록은 소수의 특권이었죠.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을 떠올려보세요. 그곳엔 굵직한 역사적 기록만 존재하며, 왕이나 역사적 위인의 이야기만 실려있죠. 그 외에는 입에서 입으로 와전되어 미화돼버린 민담에 그칩니다. 이런 민담은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다르고,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죠. 그래서 수만 가지의 미검증된 가지로 여기저기로 뻗어갑니다. 그래서 대게는 기록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튼처럼요.


기록은 자기 내면의 기억이 아니라
외부의 신호에 따라 떠올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 플라튼 -


플라튼은 증거 없는 기록을 혐오했습니다. 기록은 사실만이 아니라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에서 미화되고 와전됩니다. 그래서 그는 기억에 대한 기록은 자기만 아는 주관적인 사실일 뿐이고 믿을 만한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죠.


사진 촬영의 논리는 우리 후손들이나 외계인을 위해
인류의 증거로 가득 채운 타임캡슐을 준비하는 것과 유사하다.


반면, 우리 현대 인류는 플라튼이 좋아할 만한 증거 투성이입니다. 사람의 입으로 와전될 일은 없으며, 누가 봐도 객관적인 증거가 여기저기 존재해요. 하지만 말이에요, 이 책 『기억의 기억들』에서는 이런 불완전한 기억을 추적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해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줘요.

마치 "플라튼, 너는 틀렸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Q. 문학을 좋아하시나요?


제 글을 읽는 당신! 당연히 문학을 좋아할 거예요.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시지도 않았겠죠? 이 책 『기억의 기억들』에서는 플라톤이 혐오한 기록을 '문학'이라 칭하고 사실적인 기록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해요. 왜일까요?


그것들은 원래 날 것 그대로는 먹을 수 없기에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신중하게 다듬고 손질해야 비로소 입데 넣을 수 있는 음식과 같다.


실제 역사적 기록은 굵직한 사건을 알려주지만, 문학은 그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교훈을 알려줍니다.

우리 인간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아름다운 문장과 그 문장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의 강렬한 여운을 사랑하죠. 이건 역사책 그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거예요.


저는 삼국지를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정사보다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좋아해요. "삼국지의 주인공 유비가 촉나라를 세웠다" 보다는 "돗자리나 팔던 볼품없던 유비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뛰어난 동료들을 모아 촉나라를 세웠고 마침내 황제가 되었다." 이런 스토리가 더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죠.



Q. 문학이 기록보다 뛰어난 점이 있나요?


그럼요. 기록과 문학은 동일시할 수 없는 확실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죠. 그중 문학이 기록보다 확실히 뛰어난 점이 하나 있죠. 저는 그걸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그건 자유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고통의 결과이다.


억압의 시대는 존재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나의 생각과 사상을 숨겨야 했고, 나의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었죠.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거기엔 쌀을 받기 위해 공산당원의 가입 신청서를 썼다가, 서울을 탈환한 국군의 손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장면이 나옵니다. 기록이 낙인이 된 것이죠.


이 시대에는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 반역에 해당되는 죄였어요. 소련에서는 정치 재판, 추방 및 처형을 생생한 사실로 기록하는 건 자살 행위였죠. 하지만 문학은 가능했어요. 작가가 느낀 감정을 문학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이 가능하죠. 그 당시의 참상을 작가의 생생한 표현력으로 담아내는 거죠. 일제 강점기를 살아간 우리나라의 수많은 시인들도 빼앗긴 나라에 대한 분노와 독립의 의지를 시에 꽁꽁 숨겨놓았었죠.


이 처럼 문학은 간접의 표현이 가능하고, 그 숨김의 정도를 조절도 할 수 있죠. 이건 기록은 못할 수 없는 문학의 장점 중 하나죠.



Q. 그럼 책에서 이야기하는 게 나 자산의 기억을 문학으로 남겨라는 건가요?


비슷해요. 이 책의 핵심은 주인공 옆에서 함께 여행하고 퍼즐을 맞춰나가며, 기록된 기억을 함께 기억해 가는 과정이에요. 함께 이야기를 따라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죠. 아마 책을 읽은 당신은 SNS의 발달로 클릭 한 번이면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짧은 호흡이 난무하는 시대에서, 오래된 사진과 편지, 엽서, 일기를 통해 추적해 가는 긴 호흡을 고집하는 레지탕스가 된 기분을 느낄 거예요.


그러고는 당신의 이야기를 써보세요. 당장 가지고 있는 사진도 좋아요. 그 사진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이어 붙여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그게 긴 호흡으로 쌓이고 쌓여 한 편의 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그럼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서 소비되고, 또 누군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겠죠.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진 기억의 기억들은 오래된 전래동화처럼 오래오래 세상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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