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다르다는 건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음식, 기후, 자연환경, 문화 등 전범위에 걸쳐서 다른 생활방식을 보인다. 영국에서 와서 이 말의 의미를 몸소 깨닫게 됐다. 아무래도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 보니 나의 생활상 역시 한국에서 살던 모습과는 변화가 조금 생겼다. 영국인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방식대로 내가 보내는 시간 역시 변하고 있다. 이번엔 매우 ‘영국스러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영국인들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못할 건 없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1. 공원
영국의 날씨는 안 좋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았다가도 학교를 가려고 나오면 비가 쏟아진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다시 화창해지면 금세 또 비가 온다. 하루에도 비가 4~5차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영국에서는 비가 한 방울도 안 내리는 날을 세는 것이 훨씬 빠를 정도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날씨의 중요성을 잘 체감하지 못했다. 물론 미세먼지가 심해서 그렇지 여름의 장마철을 제외하면 비가 자주 내리는 편은 아니니까. 하지만 영국에서의 나는 날씨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비가 올 때면 심하게는 아니지만 기분이 조금 처지고 신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해가 뜨기만 하면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서 해가 떠오르는 날이면 비가 왔던 어제가 오늘에 비하면 기분이 덜 좋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영국에 잠시 와있는 나도 이런데 변화무쌍한 기후에서 평생을 사는 영국인들은 어떻겠나. 진절머리가 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과 나는 나름의 해방구로써 광합성(?)을 한다.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환한 날씨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맑디 맑은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해가 뜨면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영국에서 하늘이 어두컴컴한 날에는 공원에 사람이 없지만, 맑은 날에는 잔디밭에 사람들도 꽉 차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인들은 공원에서 정말 다양한 것들을 많이 한다. 공원은 야외 공간이라 공간의 제약이 없고, 심지어 무료라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서 헤드폰으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을 펼치기도 한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러닝부터 시작해서 축구도 많이 하고, 프리스비도 많이 던지면서 논다. 그리고 공원에서 벤치는 꼭 없어도 된다. 영국 사람들은 땅바닥이어도 신경 안 쓰고 앉아있고 심지어 누워있는 사람도 많다. 돗자리를 들고 온 경우에는 샌드위치에 음료수를 마시면서 피크닉을 즐기고는 하는데, 내가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보기만 해도 여유로워지는 풍경들이다.
2. 차와 간식
영국인들의 차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할 것이다. 한국에서 카페를 가면 차를 팔지 않는 곳도 꽤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국의 대부분 카페에서는 차를 판다. 영국인들을 위해서는 아마 차를 안 팔면 안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냥 차만 파는 찻집도 많다. 영국인들은 홍차를 주로 마시는데, 차에 너무 진심이라 그런가 종류도 정말 많다. 모든 종류의 차를 다 알진 못하지만 아는 것만 해도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얼그레이, 다즐링, 실론, 아삼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홍차를 주문하면 우유를 같이 주는 곳이 많다. 홍차에 자신의 기호에 맞게 우유를 넣으면 된다. 그럼 씁쓸한 홍차에서 부드러운 맛의 훌륭한 밀크티로 재탄생한다.
*차를 시켰는데 우유를 같이 안 주는 곳은 아마 따로 시켜야 될 확률이 높다.
아침에도 차를 많이 마시지만 특히 한국에서도 유명한 것이 애프터눈 티 문화일 것이다. 오후 시간에 가지는 티타임인데, 3단이나 4단으로 된 트레이에 과자, 케이크, 스콘 등 각종 단 음식들과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을 말한다. 특히 영국 하면 스콘 아니겠는가? 밀크티를 한 입 마신 후 따뜻한 스콘을 잘라 딸기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발라서 한 입. 극락이 따로 없다.
영국은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나라가 한국이랑 똑같은 기온이어도 체감은 훨씬 춥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뼈가 시린 느낌이다. 그런 날이면 차가 그렇게 당긴다. 커피를 따뜻한 걸 시켜서 마셔도 되지만, 차랑은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밖은 세찬 비바람이 불고 빗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따뜻한 실내에 들어와 마시는 밀크티 한 잔은 정말 영국스러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3. 축구
차와 마찬가지로 영국 문화에서 축구를 빼면 설명이 안 된다. 영국은 축구가 탄생한 나라 아닌가. 축구종가의 국민들인 만큼 그들의 가지는 축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에서 축구를 보러 가면 구가대표팀의 경기가 아니면 경기장이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하지만 영국은 관중석을 못 채운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다들 축구에 진심이니까. 영국 사람들은 시즌 티켓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한 경기마다 티켓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즌이 시작할 때 시즌 티켓을 사면 당해연도 해당 구단의 모든 홈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어마무시한 인기를 구가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 사람들은 2부 리그나 3부 리그의 경기여도 경기장이 꽉꽉 들어찬다. 영국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있는 구단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고장에 있는 축구팀이라면 더 정이 가지 않을까. 그리고 프리미어리그에 속해있지 않는 팀들의 경기장에 가면 분위기가 더 격하고 시끄럽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도 보러 가는데, 아래 단계의 리그로 내려가면 정말 영국 로컬 시민들이 즐길 테니 더 재밌고 격렬한 응원전을 관람할 수 있다.
예외도 있지만, 영국에서 보통 축구 경기는 주말에 열린다. 주말이 되면 전국 어디에서나 사람들이 가족 혹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경기장으로 향한다. 모두가 저 멀리 보이는 경기장만 바라보고 걸어가는데, 그때부터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경기장에 들어서면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축구와 함께 희로애락을 즐긴다. 경기가 끝난 후 똑같은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매 주말 이와 같은 풍경들을 영국 어디선가 볼 수 있으니,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은 하루 종일이 모두 영국적인 시간이다.
티켓을 구하지 못해 축구장에 가지 못해도 상관없다. 영국에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남아있다. 펍에 가면 즐길 수 있다. 펍에 가면 수많은 종류의 맥주와 함께 큰 대형 스크린을 구비해 놓은 곳이 많다. 그건 십중팔구 스포츠 중계를 위해서 그렇다. 우리나라도 몇 년 전부터 도입이 되었지만, 영국은 진작부터 스포츠를 보려면 유료 채널을 결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꽤 비싸다. 특히 많은 경기를 시청하지 않고 가끔 보고 싶을 때는 그게 돈 아까울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보고 싶은 경기가 있을 때 펍에 가서 맥주 한 잔 시키고 경기를 보는 것이다. 펍에서도 역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축구에 진심인 민족이니까.
*영국 펍에서는 한국에 있는 안주 맛집들과는 달리 음식 맛은 크게 기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하다. 영국 어딜 가나 흔히 있는 햄버거, 피시앤칩스, 감자튀김 등을 판다.
지금까지 살펴본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3가지를 경험하고 나서 좋았던 건 정신이 쉬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쉴 때 피시방에 가서 게임도 많이 하고, 스마트폰도 많이 본다. 영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덜한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 영국 학생들을 보며 한국 학생들에 비해 얼굴이 밝고, 어딘가 여유로워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런 영국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은 디지털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들이 더 여유로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 가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혼자서 즐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가끔은 영국 라이프스타일을 즐겨보며 영국에서의 시간을 돌이켜보고, 잠시 여유도 가지고 할 것이다. 날 편안하게 해주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만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