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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Jan 31. 2024

책방 이야기 번외편) 쉬는 날도 불을 켜둡니다

책방을 운영하다보니 다른 가게나 매장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작은것이라도 예전처럼 무심히 지나치지 못한다. 쪽지 하나에 붙여둔 메모 하나에 눈길이 간다. 내가 직장인으로 살 때와는 사뭇다른 태도와 느낌이다. 사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아무리 '주인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해봐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월급받는 사람의 입장이요. 주어진 일만 해낼 것이요 라는 마음이 강했다. 말 잘듣는 직원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달라졌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지않는) 자영업의 신분이 된 것이다. 간호사로 일할때는 입기 싫었던 유니폼을 벗어던졌다. 대신 자영업이라는 옷을 입었다. 나는 틀에 정해져있는 걸 싫어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유니폼을 좋아하고 입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스튜어디스나 정말 매력적으로 유니폼을 입은 경우는 눈이 반짝이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니폼은 나에게 와닿지 않았다. 유니폼이 싫었던 게 아니라 간호사가 싫었던 게 아닐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


아이를 데리러가는 길에 잠시 정차하는 구간에서 보이는 옷가게가 있었다. 아침 등원시간에도 저녁 하원시간에도 늘 불이 켜져있었다. 운영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쪽이 보이도록 (진열되어 있는 옷이 보였다) 간접조명을 켜둔 것이다. 그러면 한번더 눈이 가게 되는거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의 책방위치가 바깥에서 보이는 구조는 아니다. 안쪽 골목길을 따라서 한참을 들어와야 간판을 올려다보아야 보이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간판과 조명을 켜둔다. 최고그림책방 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보이고 알리고 싶어서다. 오픈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도 그랬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간접조명은 쉬는날에도 계속 켜두고 싶다. 

책방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 중에 단 한명이라도 '최고그림책방'을 인지하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불이 켜져있다는 것은 나를 알리고 싶다는 이야기다. 여기 책방이 있어요! 여기 등대가 있어요! (그림책모임에서 나누었던 등대그림책도 같은 결의 이야기가 형성된다) 라고 외친다. 장사가 잘 되던 잘 되지 않던 매출이 있든 없든, 책방이라는 존재를 알리려고 나는 알음알음 노력한다.


나는 불이 켜져있던 옷가게를 방문했다. 내가 예상했던 스타일의 옷은 아니었지만, 매장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입고 지낸 옷 이야기부터, 잘나가는 옷, 할인행사가 들어간 옷, 인기있는 옷부터 내가 운영하는 최고그림책방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자녀들을 위한 성교육 이야기도 전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불이 켜져있어서 한번쯤 꼭 와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자영업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오늘 책방에 방문한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기쁨님은 (필명) 오랜만에 책방에 방문했다. 공저과정을 등록하고 매주 글쓰기를 배우면서 최근까지 원고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7년 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고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지, 생각해볼 겨를 없이 시간을 보낸 기쁨님은 이제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면접을 여러군데를 보고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함께 풀어냈다. 어느날은 펑펑 울었고 어느날은 정말 마음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줍는 일을 자원봉사하고 나무를 심는 일도 혼자서도 묵묵히 해내는 기쁨님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름답고 따듯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까지 속시원히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약점도 강점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보였다. 인생의 선택권을 내가 주도적으로 가지고 왔을 때의 기쁨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마음여행> 이라는 그림책을 집어드는 그녀의 모습에서 행복감이 살며시 묻어난다. 나를 있는그대로 바라봐주는 연습, 나를 있는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직장생활도, 프리랜서도, 자영업자의 삶도 주부로서의 삶도 우리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학창시절 방학기간 동안 동그란 틀안에서 생활계획표를 짤 때를 생각해보자. 잠자고 먹고 공부하거나 놀고 씻고 다시 잠을 잔다. 

각자 다른 인생의 사이클에서 매일의 루틴은 다를것이다. 가만히 멍때리는 시간, 깜깜한 새벽 노트북을 바라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 아이를 등원하는 폭풍같은 시간, 고요한 시간, 일하는 시간, 점심시간, 삼각김밥을 먹는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잠시 외출하는 시간 등등. 


내가 주도적으로 삶을 이끈다는 건 뭘까?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이것도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예전에는 하나를 시도할때까지 두려움이 매우 컸지만, 지금은 한번 해볼까? 시작하고 시도하고 도전해보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것 같다. 시도하고 고치고 보완하고 개선해나간다. 처음부터 완벽이라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검색해서 아는 것과 내가 실제로 해보면서 아는 것은 정말 다르다. '해봤어?' 라는 말에는 그사람의 진심이 들어가있다. 실제로 해본 사람들은 안다. 부딪히고 물어물어 배워가면서 몸으로 익힌 값어치와 가치를 안다.


그런사람들이 전문가가 되어간다. 몸소 체득하고 경험한 것들을 쉽게 사라지지않는다. 다 내 안에 남는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것들을 글로 적어내려가면 나만의 원고가 되고 메시지가 된다. 그 메시지가 다른사람들에게 또 전해진다. 


오늘 기쁨님이 글을 쓰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말을 한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책을 읽고 책을 쓰기시작하면서 불확실했던 나만의 메시지가 정제되고 모양을 갖추어나가기 시작했다. 막연히 꿈꾸는 책방이라는 꿈을 실현했고, 나만의 책방이 누군가의 꿈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경험과 이야기를 적어내려간다. 나에게는 흔히있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야기가 꿈이 되고 희망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쉬는 날에도 나의 책방은 불이 켜져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등불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길이 되고 싶다. 자박자박 걸어가는 눈길 위에 첫 발자국처럼, 최고그림책방은 많은 사람들에게 책의 즐거움을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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