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방을 꿈꾸었던 결정적 계기들이 있었다. 카페를 방문했는데 일하는 엄마 곁에 아이가 조물조물 클레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방문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양압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방문해서 교육을 주로 했는데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고객과의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일찍 도착한 날에는 종종 가까운 카페를 방문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엄마의 곁에서 거의 매일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다행히 방문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고객과의 약속시간을 정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은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장거리 외근이 있거나 회사에서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늘 자유로운 일탈을 꿈꾸었다.
현실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엄마가 책방을 하면 좋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내 사업장이라 눈치 안 보고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
맞다. 이 부분에 제일 크다. 내가 오너이고 내가 주인이다. 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그마한 책방이기에 늘 오고 가는 단골손님들이 생겨난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그림책방이라) 아이들이 주로 오는데, 함께 놀기도 한다. 유튜브를 함께 시청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기관에 다니지 않아도 이곳에서만큼은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생각보다 가정보육하는 가정도 종종 있다.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자주 아프다. 감기에 걸리고 폐렴까지 심해지기도 한다. 첫째도 그랬고 둘째 아이도 그랬다.
아이들이 아픈 날에는 더욱 속상했다. 내가 병원에서 장시간 일하고 있는 동안,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아이는 열이 오르고 해열제를 먹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자주 많이 일어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드밀었다.
보통 대여섯 살까지는 아이들은 잔병치레를 한다. 가벼운 감기에서부터 수족구병,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과 싸우고 또 이긴다. 면역이 생기는 5살 무렵까지는 아프면서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가 아픈 그 순간에 집에서 쉴 수 없음에 나는 한탄했고 속상했다. 죄책감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영업을 한다고 해서 아이가 아프다고 마음껏 쉴 수 있다거나 놀 수는 없다.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아이만 바라볼 수는 없다. 업종이나 분야에 따라서는 (일반 직장의 연차를 내거나 하기 어려운 경우에 비해서) 내 사업장 내에서는 병원 가기 위한 시간조절 정도는 가능하다.
2. 시간이 자유로운 편이라서 아이들의 일정에 가능한 참석할 수 있다
아이들의 졸업식이나 유치원 입학식 등 아이들의 일정에 가능한 맞출 수가 있다. 주 5일~주 6일제 병원, 회사를 경험하면서 연차나 반차를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 이 또한 직장이나 업무분야에 따라 굉장히 다르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의 오너도 대체인력을 둘 수 없는 상황이고 필요한 곳에 적합한 인력채용을 한다. 내가 직원을 고용한다고 생각했을 때, 내 사업장이 잘 굴러가도록 최소한의 인력을 두는 것이 맞다. 외래파트에서 근무하는 동안 외래직원 한 명이 개인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날에는 굉장히 긴장하게 된다.
담당파트별로 내과, 외과, 소아과 등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는데 공백으로 인해 갑자기 배치가 되는 날에는 (모든과를 아는 것이 아니기에)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과별 과장님의 사인을 놓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자유롭다는 건 (특히 책방 중에는 의외로 한적한 동네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그만큼 책임감이 따른다. 혹시나 무인으로 열어두었을 경우, 누가 책을 훔쳐가지는 않을까?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프리랜서라는 직군 또한 시간은 내가 조절하면서 사용할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일만큼 수입이 들어오게 된다. 수입이 많이 필요하다면 일의 양을 늘려야만 할 것이고, 아이들과 자신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일의 양을 줄여야 한다. 마치 시소 타기처럼 나의 시간과 수입의 배분을 왔다 갔다 조절하는 것 같다.
지금의 책방을 운영하면서 개인적인 일이 있거나, 근근이 필요한 것들을 사기 위해 외출이 필요한 날은 책방운영시간 내에는 '무인책방' 팻말을 걸어두고 자리를 비운다.
일률적으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정해지는 일정에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연차를 내기 위해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과의 일정을 챙기면서 대신 밤중에라도 책 쓰기 일정을 챙긴다든지, 함께 책 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원고를 들여다본다. 내가 원하는 시간을 챙기고 그 대신 24시간 동안 일의 연속성은 유지하는 것이다.
3. 책과 문구류를 저렴이 들여올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문방구가 참 많았다. 뽑기나 다양한 게임도 즐비했다. 문방구가 유일한 간식창고였고 놀이터였다. 방방이도 재미있게 탔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은 한 번쯤 꿈꾸었을 문방구 사장, 나 역시 문방구에서 사장으로 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책방을 차리고 도매서점계약을 하면서 문방구잡화 도매계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품질이다. 옷 하나를 사도 한번 입고 버리게 되는 옷이 아니라, 두고두고 만지면 기분 좋은 품질이 유지되는 옷이 좋다.
문구류도 그렇다. 내가 사용하는 볼펜이나 노트, 아이템은 품질이 좋아야 오래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펜 하나를 고를 때에도 꼼꼼히 따져보게 된다. 다행히 내가 거래하는 b2b업체는 종류도 다양하고 품질도 좋은 편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텀블러, 학용품은 물론이고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이 존재했다. 책방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선물도 눈에 들어온다. 가끔 책방에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이벤트를 연다. 아이들이 찾아오는 경우를 위해 신비아파트 부릉이 같은 작고 귀여운 장난감도 준비해 둔다.
도매서점에서만 파는 게 아닌 탁상달력도 제법 구비해 둔다. 알게 모르게 필요한 달력은 한두 개쯤은 더 챙기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 크리스마스 시즌에 필요한 종이봉투, 책방운영에 필요한 물건, 팔면 좋을 것 같은 물건들을 입고한다.
사업자를 내면서 여러 군데 도매업체를 알게 되었는데, 정말 실망한 곳도 많았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들을 들여왔는데 실이 풀어지거나 품질이 정말 아니다 싶은 곳도 있었다.
아이들 옷도 관심이 간다. 소매업체로 넘어오기 이전의 가격이라서 한 번쯤은 책방 한구석에 아이들 옷매장을 작게라도 차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양말, 내복, 모자, 장갑 등 시즌별로 몇 개씩 구비해 두는 것도 좋겠다.
엄마가 책방 하는 가장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게 아닐까? 늘 책이 함께하고 보든 안 보든 책향기를 맡을 수 있고, 엄마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곳에 아이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것. 학업으로 지친 아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그런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 잠시 쉬어가고, 지친 마음을 잠시 달래어주고 '괜찮아 쉬어가도 돼'라고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책방이 되고 싶다.
책이 좋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으면서 책도 함께 쓰게 되었다. 책방을 열면서 책방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나둘 적어 내려 간다. 누군가 책방하나쯤 차려볼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넌지시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결단하고 실행하기까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방한칸을 책으로 채우고 사업자를 내면 그게 바로 나만의 책방이 된다. 그곳에서 책모임도 하고 책도 한 개 두 개 팔아보면 그게 바로 나만의 책방이 된다. 나도 그렇게 시작했다. 아주 작은 거부터 시작해 보면 된다. 책은 언제나 그렇듯 늘 필요하고 우리의 곁에 있으니까. 그런 책과 함께 하는 오늘이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