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였다. 전북 군산시립도서관에서 저녁 7시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갑자기 시작된 강풍과 눈으로 온 도시가 눈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도서관 강의 일정은 이미 오래전에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어떻게해서든 독자들과의 만남을 진행해야 했다. 전날까지도 고민에 고민들 거듭했다. 길이 얼고 미끄러울수도 있다는 점, 둘째 아이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점, 눈이 더 올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어떤 교통수단이 좋을 지 말이다. 남편의 걱정도 있었다. 경기도 김포에서 전라도 군산까지 가는 기차편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용산에서 군산까지 타고가는 기차편이 있긴 했지만, 오고가는 시간과 함께 동행해야할 아이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했다. 마침내 나는 원래대로 차를 끌고 전북군산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강의를 매번 하면 할수록 새로운 만남과 인연이 이어진다. 책방을 열고 책을 통해 다양한 인연을 만나는 것처럼, 강의도 마찬가지다. 매일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던 방문간호사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도 나는 처음일 것이고, 나 역시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상에 점점 적응해가고 있었다.
내가 책방을 열려고 생각하기 훨씬 이전부터 롤모델로 생각한 곳이 있었는데, 서울 선릉역에 위치한 최안아 책방이다. 선릉역 근처에 방문간호업무를 수행하면서 당시에도 유명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던 최인아 책방을 방문해보았다. 고급스러운 주택외관에 (아마도 살고 있던 주택을 개조한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안으로 입장하면 어마어마한 장서들과 인테리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최인아 책방은 최인아 작가님이 직접 고른 책들과 쓴 글귀들이 책방 곳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도 만약 책방을 운영하게 되면 이런식으로 손글씨를 적어두고, 오는 분들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할수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하지못하는 것 중에 하나다. )
최인아 책방이 나의 책방의 롤모델이었다면, 강사의 롤모델은 김창옥 이었다. 김창옥 강사는 그의 말투나 진심어린 조언이 특히 가슴을 울렸다. 우리주변에 흔히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고충을 들어주면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잠시 뜸을 들이는 듯한 여유있는 모습도 그의 강의모습에서 찾아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강의를 한동안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위안을 받고, 나역시 김창옥 강사처럼 진심이 느껴지는 강의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그가 나눈 일화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강사'라는 직업에 관한 것이었다. 지방 강의를 가게 되면 호텔에 놓여있는 샴푸나 소모성 물품들을 아까워서 처음에는 챙겨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싼 호텔 숙박비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그런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그런 습관이 없어졌다는 말을 전하면서 아, 강사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구나! 라는 걸 느낄 수도 있었다. 또 하나는 강사라는 직업 자체가 장거리운전을 많이 할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사실이었다. 김창옥 강사님도 하루에 2,3개씩 강연일정을 소화하면서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날뻔한 상황(사고가 실제로 났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에 직면했다는 전했다. 그의 일화나 에피소드 이야기를 접하면서 아, 그럴 수 있겠구나! 당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실제로 내가 요즘 강사라는 자리에서 장거리운전을 종종 하면서 그가 말한 강사라는 운명에 대해 많은 것은 느끼고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눈이 사람의 키높이만큼 쌓인 도로위를 달리면서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아이에게 전할 수는 없기에 눈이 이미 푹풍우처럼 쌓였던 길을 안전을 기하며 달릴 수 밖에 없었다. 강사라는 직종은 프리랜서 이기도 하고, 한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전국에서 수많은 강사가 존재하고, 매일 그들의 작고 큰 행사나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코로나 지나고 주춤했던 강의나 강연이 요즘들어 다시금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책방을 열었고, 성교육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서울경기지역을 물론,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까지 다양한 지역의 도서관과 문화센터, 유치원, 학교를 찾아다니며 강의를 펼치고 있다. 강의를 한번 진행하는 데 준비할 것들도 많고, 온 에너지를 쏟아붓게 된다. 강의하는 데 있어서 적당히는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강의에 참석해준 그들의 빛나는 눈을 대할 때 나는 매번 진심을 전하게 되고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긴 여운이 남는다.
어제처럼 저녁시간에 진행한 2시간의 강의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림책을 통해 부모와 아이들에게 실제로 성교육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강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다. 특히 어제 강의에 참석한 청중 중에 간호사로 근무한 분도 2분이 있었는데, 강의가 끝난 후 나에게 다가와 '멋지게 지금의 일은 소화해 내고 있는 나'를 칭찬해주기도 했다. 성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간호사들이 점점더 많아지고 커리어와 경력을 살려 성교육메신저로 활동해나가면 좋겠다는 야심찬 꿈을 가져보기도 한다. 그들의 함께 지역별 맞춤별 성교육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내가 간호사였기 때문에 간호사의 일상을 잘 알고 간호사가 가진 강점과 매력, 의료적인 정보와 지식들을 주변에 더욱 나누고 전하게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강의하는 책방지기는 앞으로도 나의 인생에 함께할 것이다. 그림책이 나의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것처럼 강의도 마찬가지다. 나의 역할이고 사명이자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으로만 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물음과 질문들이 강의가 끝나고 나면 상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들은 묻고 알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아이를 키우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들에 스스로 답을 찾아내기로 바라며, 부부관계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알고 표현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성교육 강의를 할 때마다 모두 알고 있지만 또 잘 모르기도 하는 동의, 경계, 주체성이 그러하다. 사진을 올릴 때에도 상대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부모와 자녀사이에는 건강한 경계가 지켜져야 한다. 강의에 참여한 분들에게 '지금 이 순간부터' 가정에서도 방문에 "똑똑 노크하세요"를 써 붙이고 오케이할 때 방에 들어간다는 것이 습관들일 수 있도록 알려준다. 단순히 알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노크하세요 메시지 하나를 보고 실제 똑똑 노크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책방과 강의를 병행하면 다양한기회와 인연이란 끈이 생긴다. 책방이라는 작지만 단단한 끈을 유지하는것도 앞으로의 그림책인생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그림책을 만나고 주문하고 그림책을 보여주고 추천할 것이다. 강의를 시작하기전 그림책을 연다는 건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하는 일종의 주문과도 같은것이다. 이제는 책방과 강연장소를 넘어서 김포지역 내 그림책진열을 하고있는 카페에서도 부모를 위한 성교육 소규모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 달에 한번이라도 정기적인 모임을 진행해보려고 한다. 그림책을 함께 나누면서 말이다.
그림책은 나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바라보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림책을 읽어내려간다. 그림책은 나의 인생에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그림책과 함께하는 책방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