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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Sep 13. 2020

난리법석 김밥 싸기

집밥 프로젝트 7

김밥 싸 본 지가 언제였더라?


어제 시장을 못 가 오늘은 가려고 했더니 또 비가 추적추적.

언제 그치나, 창밖을 내다보고 또 내다봐도 그칠 줄을 모른다. 중국집에다 시켜 먹어야 하나 배민을 뒤적거리다가 5시쯤 빗줄기가 잦아들기에 냉큼 나섰다.

김밥을 좋아하지 않는데 별안간 먹고 싶었다.


'오늘 저녁엔 김밥을 해 까?'


김밥은 너무 어렵고 번거로워 애들 소풍 갈 때도 김밥보다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때가 많았다. 다른 애들은 김밥 싸오는데 혼자만 샌드위치라 싫어할 수도 있어, 다음 소풍 때 물었다.


"샌드위치 싫으면 김밥 싸줄까?"

"아니. 애들이 샌드위치라서 더 좋대. 김밥이랑 바꿔 먹재. 김밥은 질린다구. 나두 샌드위치가 더 맛있어."


나는 고구마, 감자, 에그 샌드위치보다 김밥이 만들기 더 난감하다. 예전에 엄마는 김밥도 공작 모양으로 예쁘게 잘도 하더구먼, 공작 모양은 고사하고 김밥을 싸는 것도 낑낑댄다. 어휴, 그냥 사 먹고 말지. 애들 소풍 때 몇 번 싸 본 뒤로 지금까지 김밥은 사 먹는 음식이었다.

그나저나 잘 먹지도 않던 김밥이 갑자기 왜 당기는지 모를 일이다. 시장 슈퍼에서 김밥 재료는 샀는데 시금치가 가는 곳마다 다 팔려서 아쉬웠다. 색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초록색이 빠졌으니 어쩌나. 깻잎이라도 살걸. 집에 와서 생각날 건 뭐람.



부랴부랴 밥부터 안쳤다.

김밥 10줄을 싸려면 5컵은 해야겠지?

밥에 넣을 단촛물도 만들어 놓고.

밥에 단촛물을 넣어 섞은 후 식힌다. 맛을 보니 너무 시지 않아 내 입맛에는 적당하다.

햄이랑 맛살도 기름 없이 뜨거운 팬에 살짝 구워 주었다.

 단촛물 :  물, 식초 3, 설탕 1, 소금 조금
10 스푼이 되게 끓인다.
좀 더 새콤하게 하려면 식초의 양을 조절한다.


오늘 김밥은 매운 어묵이 핵심이다. 다 하고 나니 좀 더 매콤하게 할걸, 아쉽다. 어묵만 먹었을 땐 매콤했는데 김밥에 너무 조금 넣어서 그런지 매운맛이 안 난다.

조림장은 바글바글 끓이다가 어묵을 넣고 뒤적여준다. 너무 오래 두면 타니 적당히.

그냥 밥반찬으로도 맛있다~^^

어묵 조림장 : 들기름 2, 매실 2, 고춧가루 2, 진간장 1, 다진 마늘 1, 후춧가루 약간, 꿀 1


계란은 10개를 풀었더니 넘 많은...;

두툼하게 계란말이를 해서 김밥 10개 분량만 썰어놓고, 나머지는 나랑 강아지랑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계란을 좋아하는 녀석은 김밥을 만드는 동안에 언제나 줄까, 발밑을 떠나지 않는다. 간식 그릇에 담아 줬더니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또 달라는 눈빛을 보낸다.


"없어. 그만 먹어."


말귀를 알아듣는지 녀석은 터벅터벅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중간중간에 사진 찍은 게 저장이 안 됐는지 없다. ㅠ

양 조절을 못해 밥을 너무 많이 넣은. 5컵 한 밥이 딱 맞아서 좋다 했더니, 아니었다.

계란, 단무지, 맛살, 어묵. 초록이가 없으니 색이 죽는구나. 어묵이라도 많이 넣을 것을.

손으로 대충 말아 8개 탑을 쌓았다. 오른쪽 두 개는 아들과 먹으려고 참기름 바른 것.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김밥이 먹음직스럽다.


마지막으로 라면을 끓였다. 라면엔 콩나물, 양파, 파, 다진 마늘, 계란이 들어간다. 김밥 썰으랴 라면 끓이랴 정신이 없다.


김밥 썬 사진이 없는 이유


김밥을 썰었더니 죄다 터지고 난리가 났다. 그 와중에 라면은  보글보글 끓는데...

아들이 방에서 나와 김밥 상태를 보더니.


"칼 줘. 내가 썰게."


자기가 봐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어? 나보다 잘하네."


가끔 터지기는 해도 써는 족족 옆구리 터지는 나보다 낫다.


"어머나, 얘. 라면 불어."


옆구리 터진 김밥과 퍼진 라면을 식탁에 차리고서 앉았더니 진이 다 빠진다.


"아이고야, 두 번 할 건 못 된다. 너무 힘들어."


7시 반. 평소보다 저녁도 늦은 데다 엉망인 김밥과 라면을 군말 없이 먹고 있는 아들에게 미안했다. 괜히 안 하던 짓을 해서는, 쯧쯧.

차마 엉망인 음식을 찍기도 민망해 완성 샷은 포기하고 터진 김밥을 주섬주섬 먹었다.


"김밥 맛은 어때? 먹을 만 해?"

"응. 밥맛이야."

"밥만 적게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만. 정신이 없어서 라면에 계란도 안 넣었네. 그래도 국물은 끝내주게 시원하다. ㅎㅎ"


김밥 두 줄로는 모자라다며 세 줄을 썬 아들과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맛이 있거나 말거나.


요리사는 달라


오전에 운동을 다녀왔지만, 저녁을 잔뜩 먹어 한 번 더 다녀왔다. 집에 오니 9시 반. 그새 딸내미가 퇴근했다.


"저녁 먹어야지?"

"응. 오늘 한 끼도 못 먹었어."

"한 끼도 못 먹고 어떻게 일을 하니? 김밥 싸놨어. 먹어."

"웬 김밥을 다 했대?"

"갑자기 먹고 싶어서. 근데 밥을 너무 많이 넣었어. 안에 재료도 한쪽으로 밀려서 써니까 다 터져."

"내가 썰게."


딸내미는 익숙하게 도마를 놓더니 김밥을 칼로 쓱쓱 썬다.


"어머. 넌 잘 써네."

"요리사잖아. 맨날 하는 게 이건데."


한쪽으로 밀리지도 터지지도 않은 김밥. 못 하면 장비 탓한다더니, 김밥이나 칼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잘 못 썬 거였다. 하얀 밥 중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재료들이 앙증맞다.


"라면도 있어."

"오, 그래?"


딸내미는 금방 라면을 끓여 김밥이랑 같이 먹는다. 김밥 한 줄로도 모자라서 반 줄을 더.

김밥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엄마라서 미안하고, 맛이 있든지 없든지 잘 먹는 아들 딸이 고맙다.

다음엔 잘하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까? 고구마 라떼를 만들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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