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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와 5회 분량 작업

웹소설 작업 과정/투고

by 날자 이조영

초반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대사와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드라마 대본으로 같이 작업해 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드라마는 좀 더 직관적인 장르여서 글의 흐름을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소설로 쓰기 전 콘티 작업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이전에도 콘티 작업을 하긴 했는데, 이때는 편당 콘티 작업이었다면, 드라마 대본은 그보다 좀 더 구체적이다.

글로는 재미있었던 장면도 드라마로 썼을 땐 재미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땐 그 장면을 다시 고민하고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불필요한 장면이거나 분량을 채우기 위한 억지 스토리라는 걸.


또한 순서가 잘못되어 구성상 문제가 있는 것도 발견한다. 이번에 드라마 대본과 같이 작업하면서 시간은 몇 배로 들지만, 많은 오류를 찾아낼 수 있어서 좋다.

역시 글은 다각도로 써봐야 한다.


카카오 페이지나 네이버 시리즈 같은 연재 플랫폼에 통과되려면 기획서와 함께 최소 5회까지의 분량을 보낸다.

드라마 1회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계속 볼지 안 볼지 정하듯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초반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기획서는 재미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재미없는 경우도 있고, 기획서는 별로였는데 뜻밖에도 내용이 재미있을 때도 있다. 물론 기획서보다는 소설 자체가 더 재미있어야겠지만, 사실 기획서가 재미있으면 소설도 재미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5회까지는 어떻게든 눈길을 끌어야 하고, 그때 인물들과 내용이 입체적이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출판사에서 꼭 기획서를 요구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획서를 꼭 같이 보낸다. 기획서 만으로 계약을 한 적도 있었고, 내용이 좀 별로여도 기획서가 괜찮으면 수정은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믿고 계약한 적도 있었다. 사실 기획서가 탄탄하면 글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건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므로 내 말이 정석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렇더라도 소설을 쓰기 전 기획서를 습작처럼 쓰면 기획 능력도 생긴다. 지금은 좀 미비해도 기획서들을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좀 더 발전했을 때 보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비교점이 있어서 좋다.

기획서가 있으면 편집자도 내 글을 컨택할 때 한결 편할 것이다.


요즘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드라마화하는 경향이 많으니, 기획서를 쓰는 습관을 잘 들이면 드라마 제작사에서 기획서를 요구할 때도 편리하다.


편집자에게 맡기는 작가들도 봤는데, 내 입장에서는 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제 글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글이다. 의도는 같더라도, 작가가 하는 것과 편집자가 하는 표현이 다를 수 있으므로 기획서는 꼭 작가 스스로 써보길 권한다.


기획서 작성법


기획서 작성법

1. 제목
2. 장르
3. 기획의도
4. 로그 라인(설정, 컨셉) :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함.
5. 작품 소개
6. 관전 포인트 셋!
7. 등장인물
8. 줄거리


주로 드라마 기획서를 쓸 때 많이 사용하는 작성법이다. 드라마는 여기에 인물관계도가 하나 더 들어간다.

웹소설 기획서도 이렇게 하면 작가 스스로 작품을 구상할 때 구체화, 시각화하기에 좋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 글을 컨택하는 편집자들에게 어필하기도 좋다.

작가가 좋은 출판사, 좋은 편집자를 만나고 싶어 하듯, 그들도 같은 입장이라는 걸 잊지 말자.

내 글에 대해 정성껏, 친절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사업보고서 하나를 쓸 때도 온갖 정성과 고민을 해서 보여주지 않는가.

내 작품을 팔기 위해선 내용뿐 아니라 포장도 보기 좋게 해야 하는 것이다.


로그 라인은 굳이 웹소설이나 드라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모든 글의 기본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어떤 이야기인지 한 줄로 표현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장황하거나 한마디로 정리가 안 되는 글은 독자들에게 내놓지 않는 게 좋다. 글을 구상할 때 로그 라인을 명확하게 정하고 시작하면, 아무리 긴 이야기를 써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ex) 내 소설 ‘꽃과 총’은 100년 전 일제강점기로 타임슬립 했던 여자가 비밀결사대라는 독립군으로 활약하다가, 현대로 다시 돌아와 ‘현대판 비밀결사대’의 대원이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관전 포인트 셋! 이 부분은 웹소설에서는 꼭 넣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글을 구상할 때 독자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등을 제시한다.

길고 긴 호흡의 웹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이 부분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다짐 같은 거다.


그러면 글을 쓸 때도 여기에 포인트를 맞춰서 쓰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무리하지 않는다. 또는 방향을 잃었을 때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평소 드라마 관련 업무를 하고 있기에 기획서와 대본을 많이 보는 편이다. 그때 중점적으로 보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관전 포인트다.

꼭 세 개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나는 기본 세 개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생각 정리하기, 말하기, 상상력 키우기에도 유용하다.


위의 기획서 작성법은 글쓰기 수업 때 꼭 하고 있다.

글뿐만 아니라 생각 정리가 잘 안 되는 분들이나 말을 잘 못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정리해서 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굳이 소설을 쓰지 않더라도 기획서 작성법으로 연습만 해도 된다.


나는 소설 기획서 쓰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때 상상력과 창의력이 마구 쏟아지는 걸 느낀다. 뇌가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다.

에세이는 자기 이야기가 많아 어느 선까지 보여줘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감정 표현이나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가 머뭇거려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소설을 써보자.

기획서 작성만 하고 있어도 현실을 떠나 판타지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 안에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때 무궁무진한 표현력과 함께 감정 해소가 된다.




기획서와 5회 분량은 일러스트 표지 컨셉서와 함께 다음 주까지 편집자에게 보내기로 했으니 또 한 주 열심히 달려보자.

이게 통과되면 바로 카카오와 네이버로 보낼 수 있다. 미진하면 될 때까지 수정을 거친다. 단번에 통과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초반에 너무 진 빼지 않으려면 초고 때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그래야 피드백을 해주기도 좋고, 피드백 후 수정도 어렵지 않다.


웹소설 작업일지는 처음 쓰는 거라 어떨지 의문이었는데, 작업 과정을 더 세세히, 꼼꼼히, 열심히 하게 되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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