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어?!

눈물 젖은 결정

by 유 매니저
누가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어?


남편이 말한 "남들은 미국 못 와서 난리인데..."라는 말에 내가 답한 말이었다.


24년 9월 7일 토요일

내가 미국에 온 날이다.

미국에 온지도 1년이 넘었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 때문에 오게 되었다. 사실 난 별로 미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커리어였다. 한국에 있으면 10년 가까이 되는 내 커리어가 꽤나 유의미하고, 여러 곳에서 데려가고 싶어하는 인재인데, 미국에 가면 그렇지 않을 거란 걸 오기 전부터 알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나의 시장 가치는 감가상각이 되어서 지금 받는 대우를 못 받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만약 미국에서 내 능력을 유지하거나 발전시킨다면 모르겠으나, 만약 그냥 가정주부를 하게 된다면 내 예측대로 될 수밖에 없다).


연애할 때 남편이 본인의 직무가 주재원을 가야 되는 자리라고 했고, 그 시점에 대해서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측대로 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빨리 발령이 났다. 남편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빨리 나오게 된 것이니 남편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 (특히 엄마가) "남편이 잘 되면 네가 잘 되는 거야"라고 말한다. 난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이다. 남편이 잘 되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남편이 돈을 잘 벌어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생활이 풍족해질 수 있음) 근본적으로 두 개체는 별개의 존재이다.


물론 남편이 잘 되는게 당연히 좋다. 하지만 남편"만" 잘되는 건 싫다. 남편이 잘 되는 게 나의 가능성과 나의 기회를 짓밟는 느낌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만약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휴직을 낼 수 있는 상황이고, 그 휴직이 크게 커리어 상에 중요치 않은 경우 / 또는 전문 면허증이 있어서 (변호사, 약사, 의사 등) 돌아 와서도 재취업이나 본인의 시장 가치에 크게 영향이 없는 경우) 걱정 없이 기쁘게 미국행에 올랐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영어를 못하진 않는다는 거였다.


어떤 사람들은 좋겠다고 하면서 부러워할 수 있겠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진짜 좋은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와서 나쁘지 않게 살고 있지만, 사실 난 한국에서도 나쁘지 않게 살았다. 내가 한국이 싫어서 해외 취업을 통해 상해로 떠났던 건 2018년이다. 각 나라마다 장단점이 있고 결국 그게 그거라는 걸 깨닫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산 건 2020년이었다. 난 해외에서 살 수 있지만 (이민도 가능한 사람이다) 굳이 안 해도 상관 없는 사람이다.


thread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미국에 사는 게 더 좋다, 아니다 한국에 사는 게 더 좋다 갑론을박한다. 1년 정도 살면서 느낀 건, 결국 개인에게 뭐가 더 맞느냐는 거다.


문화도 그렇고 기회도 그렇다. 미국 문화가 더 잘 맞는 사람이 있고, 한국 문화가 더 잘 맞는 사람이 있다. 가족이 중요한 사람인데, 한국에 가족들이 다 있다면 미국에서의 삶이 외롭고 힘들 수 있다. 기회도 그렇다. 미국에서는 기회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둘 다에서 없거나 둘 다에서 있거나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느 한 곳이 좀 나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내가 이끌어 나가는 내 위주의 인생이 아닌 타인에 의해 내 삶이 좌지우지 되는 삶이라는 게 싫다.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결혼은 이런 것이다. 자녀가 생기면 영향을 받게되는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난다.


인생은 길다. 지금은 결론적으로 내가 맞춰준 것이니나중에는 내 목소리에 힘을 주고 내 위주의 선택을 하게 되는 날을 오지 않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