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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내가 아닌 널 위해 돌아가고 있네

난 회사도 없어짐

by 유 매니저

미국행이 결정이 나고 남편은 이미 미국으로 떠났다. 홀로 신혼집에서 생활하는 건 크게 나쁘지 않았다.

내가 당장 써야하는 짐만 빼고 이사짐을 보내니 을씨년스러웠지만 아파트에서 자취 생활을 하니 쾌적하고 좋았다. 신혼초에 다들 그렇겠지만 집안일로 트러블이 있었는데, 혼자 살기 때문에 그런 트러블이 날 일도 없었다. 직장에서도 잘 나가고 친구도 한국에 다 있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거기다 새로 옮긴 회사는 풀 재택도 가능했고, 오피스로 나가는 건 도보로 도어투 도어 지하철로 20분, 도보로 30분이면 가능했다.


남편은 미국에 먼저 도착하고 회사 업무적으로도 힘들고 정서적으로 외롭기도 했을 것 같다.


남편이 몸만 쏠랑 가고 나서 내가 혼자 처리할 큰 일이 몇 개 있었다.


-이사짐 보내기

-집 빼기

-차 팔기


물론 남편도 먼저 도착해서 집을 구하는 것처럼 큰 일을 혼자 하긴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좋아서 가는 것도 아니고 쟤 때문에 끌려가는 입장에서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너 때문에 가는 건데, 안 그래도 가기 싫은데, 내가 최대한 손 안 쓰게 깔끔하게 다 처리하고 가면 안 되나? 그것도 못하나? 나한테 미안하다면 그런 거라도 나서서 다 잘 처리해야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나보다 6개월 먼저 출발하였는데, 남편이 출발하기 직전에 난 이직까지 했다. 어차피 떠날 건데 왜 이직을 했냐고 묻는다면, 내 이직 시도는 남편이 발령나기 전에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새롭게 다니던 회사는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였고 풀 재택이 가능한 회사여서, 6개월 동안 성과를 만들고 회사에 말해서 미국 쪽으로 transfer를 하거나, 아니면 한국 시차에 맞춰서 재택으로 일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본사에서 한국 지사를 통째로 없애기로 했기 때문이다.


*참고 글:

https://brunch.co.kr/@amynote/14


웃긴 건 미국계 회사를 가면서 "내가 퍼포먼스가 안 나면 언제든 짤릴 수 있겠다"라고 각오했지만, 한국 지사 자체가 날라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회사가 없어지기로 결정되고 업계에 소문이 돌았다. 경쟁사의 헤드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았다. 관련 업계의 다른 회사의 포지션을 추천 받았다. 난 미국으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그런 오퍼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해고를 당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위로금도 챙겨줬다. 만얄 내가 앞서 계획한 대로 transfer나 한국 시차 맞춰서 풀재택하는 게 불가능했다면 내 발소 그만 두는 것이었을텐데, 그게 아니라서 위로금도 받을 수 있긴 해했다.


다닐 회사가 없어지니 원래 미국으로 가려고 예상한 날짜보다 1-2개월 일찍 가게 되었다. 외롭고 힘들게 타지 생활을 하던 남편에게는 좋은 소식이었을 테다. 곰곰히 생각하면 나에게도 좋게 돌아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선택지를 박탈 당한 것이고, 남편은 의도치 않은 이득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하다 내 회사까지 남편을 위해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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