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부지가 마련되었고, 직영 또는 도급계약 등의 방식으로 집을 짓기로 하였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집짓기에 들어서는 단계입니다. 대체로 이 단계에서 건축주는 설계업체를 찾아가 설계도 작성을 의뢰하게 됩니다. 당연한 절차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살기에 편안한 집, 내 취향에 맞는 집, 즉 ‘살기 좋은 집’을 지어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절차 없이 설계를 의뢰하면, 규격화된 설계도를 모방하는 수준의 설계도가 나오기 쉽습니다.
설계도는 건축부문의 설계와 토목부문으로 나뉘어 작성되는데, 대체로 건축부문의 설계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토목부문의 설계는 측량설계사무소에서 하게 됩니다. 토목부문의 설계에는 옹벽시공이나 담장의 설치, 지반의 고저나 기울기에 관한 것, 건축물의 배치, 주차장, 정화조 및 배수시설의 설치 등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는데, 이 부분은 부지의 활용도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전체적인 외관과 조망, 동선 등을 좌우하는 것이므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일명 집장사가 짓는 집은 이 부분이 종종 소홀히 다루어집니다. 내 집을 짓는 건축주는 좀 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부분입니다.
건축부문 설계의 경우에는 건축물의 규모나 형태, 구조재의 종류, 창호의 배치 등에 관한 사항이 포함됩니다. 토목부문의 설계가 부지의 활용도나 건축물의 전체적인 외관, 조망, 부지 내 동선 등을 좌우하는 것이라면, 건축부문의 설계는 실내의 공간 활용도 및 외관, 조망, 채광, 이동의 편리성 등을 좌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줄여 말씀드리면, 토목설계이든 건축설계이든 그 초점은 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에 맞춰져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살기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한 공간계획과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공간의 활용도에 대해 한 가지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파트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구상을 하면서도 여전히 아파트의 구조를 염두에 두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이런 구상은 단독주택 짓기에 있어 상당히 위험한 것입니다. 아파트는 내부공간의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건축 형태입니다. 한정된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므로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공간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경우든 모든 공간은 최 단거리의 동선을 구성해 거실로 이어져서 다시 외부로 통하게 되는, 하나의 출입문을 가진 ‘공간 집중형’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독주택은 구조적으로 주출입문, 뒷문, 거실 베란다 출입문 등 다수의 출입문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아파트의 경우와 비교해 동선이 길어짐은 물론이고, 여러 방향으로 갈라지거나 겹치기도 합니다. 즉, 아파트와 같은 내부공간의 효율적 활용보다는 외부공간을 아우르는 전체공간의 활용도에 주안점을 둔 ‘공간 분산형’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독주택은 공간 활용도 측면에서 그 출발점이 다르므로 공간계획 또한 달리 적용해야 합니다. 아파트와 같이 거실을 중심으로 한 ‘수축의 구조’가 아니라 각각의 거실이나 출입문, 마당이나 창고 등 외부구조물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펼침의 구조’로 공간을 계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건축주가 설계를 의뢰하면 토목 및 건축설계업체에서는 현장을 방문해 주변 경관이나 지형 등을 살피고, 건축주로부터 지반의 조성 등에 관한 사항이나 건축물의 방향, 구조 등에 대한 의견을 듣고 설계도를 작성합니다. 그러나 건축주는 대체로 건축비용의 절감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설계를 의뢰할 수밖에 없는데, 설계사의 입장으로는 그런 저가의 설계비용을 받고 건축주의 취향이나 생활의 편리성 등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 설계도를 작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측량설계사는 대체로 주차장의 위치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 배수시설 등은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의 정도를, 건축설계사는 어느 정도의 규모로, 주요 구조재료는 무엇으로, 지붕은 어느 형태로, 방은 몇 개로, 화장실은 어떻게 등, 개략적인 의견을 들어 설계도를 작성합니다. 이런 정도라면 결국 규격화된 설계도가 작성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고가의 설계비용이 요구되는 유명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한다면 이런 부분은 어느 정도 상쇄될 수도 있을 것이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살기 좋은 집’과는 거리가 있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주가 설계를 의뢰하면 건축 및 측량설계사는 우선 해당 토지가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토지인가, 건폐율의 적용면적은 얼마인가 등에 대해 검토를 하며, 앞서 말했듯 현장 방문에서 얻은 자료와 건축주의 의견 등을 종합해 설계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건축주는 그 설계서를 토대로 다시 수정의견을 내게 되고, 설계업체는 그 의견대로 설계도를 수정해 설계안을 확정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절차를 몇 차례 거치기도 하는데,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이런 과정이 되풀이되면 설계업체에서는 추가적인 설계비용을 요구하게 됩니다. 집을 지어보기도 전에 불필요한 추가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설계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설계의 수정 및 변경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시간을 절약하면서 번거로움을 없애고 설계비용까지 줄이는 방법입니다. 따라서 건축주는 설계를 의뢰하기 전에 먼저 치밀한 구상을 해야 합니다. 지반조성 및 건축물의 배치, 하수관거의 처리, 건축물의 규모 및 구조 등에 대해 구상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기초설계도를 작성해야 합니다. 설계도라고 해서 그리 세밀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방구에서 모눈종이를 사다가 그 위에 나름 구상한 건축물 및 부수시설의 배치사항과 각 거실의 배치 등에 대한 평면도를 작성하면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는 설계업체를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을만한 시공업자를 만나보는 것이 좋습니다. 건축주가 구상한 기초설계사항이 실제로 현장에서 구현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인지, 즉, 기술적인 측면에서 구현에 어려움은 없는지, 전기나 수도, 가스, 하수배관 등의 설치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건축물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단열이나 보온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불필요한 추가적 비용이 요구되지는 않는지 등에 대해 전문건축업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건축주의 취향이나 건축물을 짓게 된 계기, 의도 등에 대한 사항과 가족 구성원의 특성, 즉, 가족 구성원의 수나 성별, 나이, 장애, 학생, 노부모, 동거인의 존재 여부 등 모든 고려사항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전문가적 의견을 들어 기초설계에 반영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마련된 기초설계안을 가지고 측량 및 건축설계사무소를 찾게 되면 저렴한 비용으로 설계를 의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설계비용이나 현장에서의 공정 변경으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 발생을 줄일 수 있습니다.
가족의 구성이나 특성에 대해서도 격의 없는 의견교환이 필요합니다. 건축업체 사장님은 어느 집을 지으면서 겪었던 일을 소개했습니다. 건축주가 무슨 용도에 쓸 것인지조차 말하지 않으면서 구석진 곳에 무조건 방을 한 칸 더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창고인지, 다용도실인지, 드레스 룸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방을 내려면 그 용도에 맞게 시공해야 할 것인데, 난감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건축주로부터 어렵게 알게 된 사실은 둘째어머니가 쓸 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외에 또 다른 어머니가 한 분 계시니 숨기고 싶었던 것일 겁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나, 그렇게까지 꺼릴 일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건축업자는 단지 내 집을 지어주면 될 뿐, 나와 부대끼며 살아갈 이웃은 아니지 않는지요. 지나친 방어기제가 작동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필자 또한 딸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이와 같은 입장일 것입니다. 이는 곧 필자의 ‘살기 좋은 집짓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출 일이 아니지요. 사전적 의미로 장애는 심리적, 정신적, 지적, 인지적, 발달적 혹은 감각적으로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거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지칭하는 말입니다. 장애인 당사자는 이런 장애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조차도 영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가족 또한 그 부양의 문제로 같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이런 장애로 인한 활동의 한계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보다는 주변으로부터 받는 차별과 배제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과 가치조차 지키고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 이로 인해 장애인 당사자는 위축되어 집안으로 숨어들고, 그 가족은 주변의 시선과 차별을 의식해 장애의 사실을 숨기려고 합니다. 이런 심리는 위의 건축주가 숨기고 싶었던 사실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 이래 장애의 문제는 줄곧 개인이나 그 가족의 문제였습니다. 시대나 개별 사회의 문화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체로 장애는 터부와 차별의 대상이었습니다. 마녀사냥이나 집단학살과 같은 부끄러운 역사도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변의 장애에 대한 이해는 아직 그리 높지 못해서 여전히 장애는 개인의 문제이며,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 또한 그에 자유롭지 못합니다.
2014년 5월 20일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필자는 이 법 제정을 위해 3년여 의회 앞 광장에서 노숙을 일삼으며 활동을 해온 부모들의 언저리에서 그 활동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마음이야 그곳에 가 있었지만, 신분상 어쩔 수 없는 일이더군요. 어쩌다 잠시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의사당 정문 앞에 서보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1인에 지나지 않는 피켓시위에 무슨 효력 같은 것이 작용했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지요. 그저 마음뿐, 필자의 언저리 자리매김은 스스로에 대한 위안일 뿐이었습니다. 4월 29일 오후 4시 35분,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날, 어느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아이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것이 생겼다.’라고 말입니다.
필자 부부는 딸아이의 장래를 미리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장애아를 둔 부모들은 이런 걱정을 합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살겠지만, 우리가 없는 때가 되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지요. 당장 오늘의 현실만 우울해질 뿐이지요. 이것이 체념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보다 오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 부부의 생각입니다. 미래는 준비해야 할 것이지, 미리 걱정하고 눈물 흘리거나 체념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딸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특별히 불행하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세상 그 누구든 각자 살아가는 조건이 조금 다를 뿐이지, 그 삶의 본질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어떤 조건에서든 현실을 인정하고 집중한다면 현재 또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깁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것이지 앞서 걱정할 대상이 아니며, 또 그렇게 준비된 미래는 유의미한 결과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몇 해 전 언젠가 아내가 나이 지긋하신 어느 주유소 주유원으로부터 네 잎 클로버를 받았다며 인증-샷을 찍어왔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았던 탓인지, 다음날 필자는 길옆에서 다섯 잎 클로버를 찾아냈습니다. 네 잎 클로버를 만날 확률은 1만분의 1, 꽃말은 행운, 다섯 잎 클로버를 만날 확률은 1천만분의 1, 꽃말은 재물운 또는 불행이라고 합니다. 다섯 잎 클로버에 재물운과 불행이라는 상반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마도 갑작스러운 재물횡재가 자칫 불행을 부를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필자 부부에게는 행운이든, 재물운이든, 또는 불행이든,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뭇사람들이 클로버 잎 수에 따라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 행운, 재물운, 기적, 불행 등의 꽃말을 붙여 놓았지만, 사실 잎 수가 많고 적음은 단지 돌연변이의 한 결과일 뿐일 것입니다. 따라서 클로버의 잎 수도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다만 우리의 부질없는, 희귀한 것에 대한 경이감이며, 그에 기댄 막연한 기대심리일 뿐이겠지요.
이 경우를 우리네 인생에 겹쳐보면, 행운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도 돌연변이의 한 현상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현상, 그 결과는 좋은 일, 아니면 나쁜 일이고, 그것은 곧 행운이거나 불행이 될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돌연변이 현상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즉, 돌발적인 변이현상입니다.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우리가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미는 붙이기 나름입니다. 다섯 잎 클로버에 부여된 재물운과 불행과 같은 이중적인 의미처럼 말입니다. 장애를 불행이라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이 불행이겠지만, 행운이나 복, 선물 등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런 귀중함이 아니겠는지요.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필자 부부는 딸아이의 장애로 인해 좀 더 철이 들어 살아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선물이었다고 여깁니다. 내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느 가정이나 한가지쯤은 어려움을 안고 살기 마련 아닌지요. 다만, 그 구성원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대응하느냐, 또 어떻게 갈무리하느냐에 따라 그들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 ‘살기 좋은 집짓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진행이 되면 집을 절반은 지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허가부서에 건축허가 신청을 해야 하지만, 이는 설계를 의뢰받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괄 대행할 수 있으므로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요구하는 대로 절차를 지켜 서류를 준비하고 비용을 내면 됩니다. 또한 개발행위허가, 농지전용허가 등은 건축허가에 의제 처리되므로 별도의 절차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개발행위허가를 득하면 지반공사 및 터파기공사를 할 수 있고, 이후 건축허가를 득하게 되면 본격적인 집짓기 공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후에 필요한 작업, 즉, 임시전기 설치신청이나 상수도 설치신청, 형질변경부담금 납부(채권 및 면허세 포함), 원상복구이행보증보험 가입, 임시전기설치보증금 납부(한전), 계량기설치비 납부(한전), 통신선 이전설치 신청(KT), 산재고용보험료 납부 등의 사항 또한 시공업체의 조언을 받아 그때그때 처리하면 됩니다. 만약 지목이 임야라면 별도의 산지전용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복잡한 행정적 절차까지 건축주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는 설계사무소나 전문건축업자 등에게서 얼마든지 조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적인 처리사항은 이상과 같이 간략하게만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