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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머리오리 Jan 29. 2021

£ 2-7. 마당은 거실의 연장이어야 합니다

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건축은 폐쇄성이 강합니다. 온통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되어 있음은 물론, 내외를 구분하는 법도에 따라 안채와 별채, 사랑채, 행랑채 등 집안 각각의 건축물 사이까지도 담장으로 구획하거나 출입 동선을 달리하게 하여 공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폐쇄성은 물리력에 대한 방어라기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큽니다.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집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선인들은 이런 문제를 마당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훌륭하게 해소했습니다. 안채, 별채, 사랑채 등 각각의 건축물에 마당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당은 시각적으로 거실의 연장이어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서양의 건축은 외부로부터의 물리력에 대한 방어적 측면이 크며, 타인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들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한옥건축의 시선이 건물 안에서 근경의 마당으로 향한 후 다시 담장 너머의 원경으로 향하는 것이라 한다면, 서양의 건축은 외부에서 원경의 건축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의 차이는 각각 마당과 정원이라는 공간개념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정작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은 이런 고민이 없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건축이나 서양건축이나 양자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나, 생각건대,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이런 마당개념만큼은 현대의 주택건축에서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당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즉,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시각이냐 또는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시각이냐에 따라 그 느낌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필자는 전자를 권합니다. 그것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집, 즉 ‘살기 좋은 집’이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경우 멋진 집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전통 한옥건축에서 마당은 시각적으로는 폐쇄적인 구조를 하고 있지만, 동선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각각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당은 오랜 세월 폐쇄성 강한 주거공간을 내적으로 극복해내고자 했던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삶은 이런 폐쇄성을 벗어나 유연한 공간구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지 내 각 부분으로부터 연결되는 각각의 동선이 유기적이어야 함은 물론, 시각적인 측면까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마당의 크기와 형태, 담장의 높이, 담장과 건물과의 거리, 출입문의 배치 등에서 세심한 구상이 필요합니다.


마당을 꾸미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텃밭이나 꽃밭, 장독대 등의 위치 및 형태, 수목의 종류와 식재 위치, 꽃의 종류 등도 미리 머릿속에 그려두어야 합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 계절을 시샘하는 꽃들을 심고, 텃밭을 일궈 푸성귀를 가꾸며, 넉넉한 활엽수를 심어 뭇 새들을 불러 모으고, 몇 그루 유실수라도 심어 제철 과일을 먹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한 일일까요. 하지만 멋진 마당을 꿈꾸며 값비싸고 사시사철 늘 푸른 나무들로 장식하지는 않기를 권합니다. 마당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없으면 그만한 손실이 또 어디 있겠는지요. 특히, 향나무는 시골에서는 금물입니다. 향나무는 사과나 배 등의 유실수에 병해충의 중간숙주가 되므로 주변의 과수농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상록수보다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수종으로, 날카로운 침엽수보다는 넉넉함이 묻어나는 활엽수가 좋겠습니다. 여기에 두어 가지 덧붙일 말씀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텃밭의 규모입니다. 텃밭의 규모는 절대로 욕심을 낼 부분이 아닙니다. 마당 안의 텃밭은 쟁기로 가꿀 수밖에 없는데, 그 규모가 크면 큰 고역이 됩니다. 욕심은 여유로운 삶을 잃게 합니다. 33제곱미터 이내면 족할 것입니다. 작아 보여도 이 정도면 푸성귀는 넘치게 거둘 수 있습니다.


둘째는, 관상수나 유실수의 수고(키)입니다. 옛말에 ‘울타리 안에 있는 나무가 지붕보다 높이 크면 행세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그저 옛날 어두운 시절에 살았던 분들이 믿었던 미신쯤으로 여길 일은 아닙니다. 나무가 크면 그 아래는 그늘이 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습기가 차고 각종 벌레가 생깁니다. 당연한 이치로 건축물에도 피해가 오고,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병이 오기 십상이지요. 유실수든 관상수든 나무를 선택할 때는 수고(키)가 높고 그늘이 많이 지는 수종의 선택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또 마당 안에 심는 나무는 될수록 집과는 멀리 떨어진 담장 쪽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옛날 선비들은 고고한 선비의 기개를 흠모하여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소나무 등을 사랑채 주변에 심어두고 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삶은 그 옛날 사랑채에 홀로 앉아 음풍농월하던 그 선비들과 같지 않거니와, 그와 같은 기개를 품고 살아갈 이유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넉넉하고 자연스러운 삶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이유로 수종의 선택 또한 넉넉함이 느껴질 수 있는 품종으로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필자는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마당 한가운데 파초를 심었습니다. 파초는 중국 남방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원나라 지배기에 사대부들에 의해 도입되었고, 예로부터 후덕함과 새 지식을 상징한다고 하여 사대부들이 뜰 아래 심어두고 수신의 도리로 삼았다고 합니다. 일본 하이쿠의 성인이라 불리는 마쓰오 바쇼는 평생 파초를 사랑하여 자신의 이름을 바쇼(파초)라 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필자가 파초에 이런 정도의 큰 의미를 두고서 심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파초의 그 고요함과 넉넉함이 좋아 가까이 두고 벗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파초’라는 식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초허 김동명의 시를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실물을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필자가 나고 자란 곳은 파초가 자라기에는 너무 추운 지역이었으니까요. 따뜻한 마을에 자리를 잡으니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파초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사 오던 해, 앞마당에 파초 한그루를 심고자 했지만, 이사비용 등으로 지출이 많아서 한 푼이 아쉬웠던 터라, 뒤로 미루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감당 못 할 정도로 고가의 수종도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꽤 사정이 어렵긴 했던가 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두어 해 지난 어느 늦은 가을날, 김장거리를 사러 마트에 다녀온다던 아내가 용달차를 한 대 앞세우고 돌아왔습니다. 용달차에는 커다란 파초가 실려 있었습니다. 자칭 ‘저지르기 좋아하는’ 아내 덕에 그동안 필자가 그렸던 마당 모습을 비로소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림  2-7-1 】파초가 있는 마당


셋째는, 꽃밭에 심는 꽃들의 종류입니다. 매년 봄마다 새로 파종하거나 옮겨 심어야 하는 꽃은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두 해 그렇게 해보는 것이야 재미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나, 여러 해 지나다 보면 그것도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원생활은 잔손이 많이 가는 생활입니다. 될수록 일을 줄여두어야 삶이 여유롭게 됩니다. 다년생 화초류나 겨울을 날 수 있는 구근류, 관목류 등이 좋겠습니다.


넷째는, 꽃밭 잡초 관리입니다. 잡초 제거에 너무 힘을 쏟으면 이 또한 여유롭지 못한 삶의 한 원인이 됩니다. 꽃 위로 넘쳐나지 않은 정도로만 관리해도 좋습니다. 한가지 경험적 팁이라면, 꽃밭의 토양이 기름질수록 잡초는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평소 토양관리를 잘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가끔 이른 아침에 아내와 함께 마당에 나와 걷곤 합니다. 대체로 집안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는 동선입니다. 앞마당으로 나와 꽃밭이나 나무들을 돌아본 다음 텃밭으로, 뒷마당으로, 다시 앞마당으로 돌아 나오는 막힘없는 동선입니다. 아내는 꽃을 아주 좋아합니다. 걷는 내내 허리를 굽혀가며 화단에 핀 꽃이나 이곳저곳 틈을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 제비꽃들을 보며 감탄합니다. 좋아하는 꽃들을 직접 사다가 심거나 이곳저곳 자리를 잡아 화분을 가져다 놓기도 하지요. 아내와는 달리 필자는 머리를 들어 나뭇가지들을 살펴보며 걷습니다. 화사하게 피는 꽃보다는 아주 조금씩 모습을 바꾸는 나무의 모습에 더 마음이 끌리기 때문입니다. 수시로 나뭇가지를 잘라 수형을 잡아주고, 벌레가 끼이지는 않았는지, 병해는 없는지를 살핍니다. 묘하게도 이렇게 서로 다른 관심이 마당을 좀 더 풍성하게 합니다. 꽃을 잘 모르는 필자, 나무를 잘 모르는 아내, 그러나 이처럼 모자람이 보완되어 풍성한 마당을 가꿉니다.


우리네 삶 또한 이와 같은 이치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로 인해 친구가 되고, 인생의 반려자가 되기도 합니다. 쾌활한 성격, 힘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 신속한 판단, 끊고 맺음의 확실함, 굴하지 않음, 거침없음, 차분한 성격, 무리하지 않음, 서두르지 않음, 여지를 둔 표현, 물러설 줄 아는 지혜, 온화한 말씨와 깊은 배려심 등, 모두가 장점이지요. 그러나 함께 살다 보면, 종종 상대가 가진 그 장점들은 심각한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상대에게 자신이 무시되고, 휘둘리며, 배려받지 못한다는 기분이 들거나, 답답하고, 옥죄여지며, 간섭받는다는 기분이 드는 것 말입니다. 그럼 애초 그렇게 끌리던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것은 혹시 상대를 자신에 맞추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즉, 상대에게서 자신이 모자라는 부분만을 취해 혼자 덕을 보고자 한 그 마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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