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부지의 높낮이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시각적인 측면에서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입니다. 즉, 부지의 높고 낮음에 따라 내부에서의 조망은 크게 차이가 있고, 외부에서는 건축물이 높게 또는 낮게 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당이 있고 담장이 설치된 경우라면 말입니다. 이제 이것을 내적인 측면과 외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내적인 측면, 즉 내부에서 외부로의 시각에 관한 문제입니다. 부지를 높게 조성하면 안에서 밖으로 보이는 조망이 좀 더 높게 형성되어 넓은 시야를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과한 나머지 산 중턱에 올라서거나, 산기슭에 기대어 성채 같은 축대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부지를 조성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잠시 머물러 심신을 쉬고자 하는 별장이라면 아주 좋은 조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생활인으로 살아갈 보금자리로서의 조건은 아닙니다. 득도하고자 하는 수행자가 아닌 이상 자칫 우울증을 앓을 수도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저곳, 저곳에 가고 싶다. 언젠가는······, 그러나 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그 원인입니다. 설사 영주 부석사 안양루에서 내다뵈는 것과 같은 그런 수려한 풍광과 조망을 갖춘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수평선이 내다보이는 바닷가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불야성 같은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천루 같은 건축물들에서도 우리는 종종 뭔가 모를 불안함을 느낍니다. 40대 후반 어느 날,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낮은 집터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지가 너무 낮으면 시야가 막혀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나 갑갑하고 위축된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만약 마당과 연접한 도로가 있다면, 그 마당은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곧 도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눈 안에 담겨야 할 마당을 잃어버리는 큰 손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막고자 담장을 설치하게 되면, 그 시야는 담장 안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이 모두가 최악의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기 좋은 집’은 멋진 풍광이나 가슴 후련해질 만큼 웅대한 조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사방이 둘러쳐진 요새 같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트이지도, 너무 막히지도, 너무 요란스럽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 느낌은 아늑하고, 따뜻하며, 기운은 맑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 그런 땅이 쉽게 나타나겠는지요. 승려 도선의 비보설(裨補說)에 따르면, 비보란 지덕을 도와 지나친 것을 누르고 모자라는 것은 보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꼭 그의 풍수학적 주장을 언급하지 않더라고 이런 보완성은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로 모자람을 채워주고 넘침을 다독이는 것, 이것은 가정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서로가 행복해지는 조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땅 또한 이렇듯 채우고 누름으로 보완되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습니다. 물론 부지를 조금 높게 조성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높게 조성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커다란 바위들로 높이 축대를 쌓아 올려 지은, 그야말로 요새 같은 집들은 보기만 해도 흉물스럽습니다. 그 안에 살고 있을 집주인까지 그렇게 느껴지곤 하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요.
이런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이제는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남습니다. 즉, 안정감의 문제입니다. 부지가 높아지면 자칫 위에 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필자는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시선의 높낮이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즉, 거실의 높낮이, 마당의 규모, 담장의 높낮이, 거실과 담장과의 거리 등을 상호 연관 지어 시각적인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아늑하고 안정감 있는 부지를 조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담장이란 꼭 목책이나 펜스 등의 인위적인 담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목이나 돌, 둔덕 등 종류를 불문하고 시각적으로 마당이란 공간이 한정될 수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런 마당이라는 개념의 공간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건축은 대체로 외부에서 보는 사람의 시선, 즉 건축물의 외관을 먼저 고려한 측면이 있고, 반면, 한옥 건축은 외부에서 보이는 건축물의 외관보다는 내부에서 밖으로의 조망, 즉 집안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우선 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리스-로마-유럽으로 이어지는 서양의 건축은 역사적으로 회당이나 신전, 교회, 성채, 궁성 등 공공적인 성격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외적 측면에서의 시각성이나 방어적 기능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서양건축에서 주거 건축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에 성행하였던 도시 내 저택인 팔라초(Palazzo)나 교외 지역의 별장 주택인 빌라(villa) 건축의 예를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시각은 방어적이며, 위계적이며, 장중하며, 주변의 자연환경을 압도하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집이란 이런 의미에서의 건축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가 되는 것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편의와 안식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외관 우선의 건축물은 현대에도 아무런 이견 없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디자인 모티브를 로마건축에서 가져오는 건축가들이 일군을 이루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물론, 서양건축은 누구나 인정하듯 우수한 건축술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치, 볼트, 돔 같은 건축기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현대문명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이런 건축이 주거 건축에서도 아무런 비판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그 건축물들을 볼 때면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나는 저 집을 우러러보고, 저 집은 나를 내려다보는구나.’
이런 시각적인 문제는 크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눈길을 우리의 한옥건축으로 돌려 한옥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전통 건축의 경우에도 궁궐이나 관아, 향교, 사찰 등의 공공건축에서는 그에 걸맞은 나름의 위엄과 위계를 갖추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왕조시대에 쓰이던 존칭의 유래가 모두 이런 건축적인 위계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건축적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중국의 진시황 이래 천자를 부르는 말로 사용되던 폐하(陛下)의 폐(陛)자는 ‘섬돌’을 뜻하는 것으로, 원래 황제(皇帝)를 직접 부르는 것을 피하여 섬돌 아래 서 있는 호위병을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제후(諸侯)의 경칭인 전하(殿下)나 왕세자 또는 황태손에게 쓰이는 저하(邸下), 한때 대통령에 대한 경칭으로 쓰여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처럼 되어버렸던 각하(閣下)라는 경칭 또한 위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이처럼 왕조시대 건축에서 기단을 높여 계단을 놓는다는 것은 곧 그곳에 있는 자의 위엄을 돋보이고자 함이지 건축적인 측면에서 실용성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재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집에 중층기단이나 계단을 설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지반 돋음도 할 수 없었지요.
이제 현대인들은 자신의 주거 건축에 이와 같은 제재를 받지는 않습니다. 얼마든지 기단을 높일 수도 있고, 계단을 여럿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겠는지요. 기단의 높이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이상은 아무런 실용성이 없을뿐더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크게 해칠 수 있으니, 부지면적과 건축물의 규모 등을 잘 고려해서 결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계단을 설치하고자 한다면 좀 더 많은 숙고를 해볼 문제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 계단입니다. 특히, 가족 구성원 중에 노약자가 있는 경우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건축주 본인 또한 언젠가 노년에 이를 테니 마찬가지겠군요.
궁궐 등의 공공건축이나 누정 건축을 논외로 한다면, 일반적으로 한옥건축은 사대부가의 주거용 건축이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대부가의 주거용 건축은 지역에 따라 나름의 형식을 갖추고 발달해 왔지만, 특히 마당이라는 개념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옥의 규모를 말할 때 마당의 개수를 먼저 들기도 하는데, 이는 마당을 단순히 집의 외부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집의 구성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당은 뭇 새들이 날아들고, 온갖 화초가 자라나며, 햇살이 가득히 내려앉기도 하고, 때로는 비바람과 눈보라가 휘몰아치기도 하는 외부공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의 마당은 분명 건축물 외부의 공간이지만, 전통 한옥건축에서는 시각적으로 거실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거실 안에 있는 사람이 마당을 자신이 앉아 있는 곳과 같은 공간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담장에 의한 공간의 구획에 있습니다.
전통 한옥건축에서는 각각의 건축물을 용도별로 엄격히 구분하여 짓습니다. 안채, 사랑채, 별당채 등이 그것인데, 이들 각각의 건축물은 담장이나 수목 등으로 공간이 구획되며, 그 영역마다 별도로 마당이 갖춰집니다. 따라서 마당은 각각의 건축물에 전속하는 공간이 되며, 시각적으로는 거실의 연장선에 놓이게 됩니다. 즉,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이 근경의 담장 안으로 한정됨으로써 시각적으로 거실과 마당이 같은 공간으로 느껴지고, 그 시선이 다시 담장을 넘을 때면 보다 넓은 영역을 시야에 넣을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 이것이 간과되면 그 집은 시각적으로 그만큼의 공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전통 한옥건축이 이처럼 담장 안의 시선과 담장 너머로의 시선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그 공간이 극도의 폐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유교적 관습에 따라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사랑채를 제외한 모든 공간은 외부인의 출입이 극히 제한될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시선 또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폐쇄적인 공간구조는 거주자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부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속박하기 마련입니다. 전통 한옥건축에서 마당과 담장의 개념이 크게 자리 잡은 이유는 바로 이런 폐쇄성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삶이 선인들이 살아온 그것과 크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주거공간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좋은 조망을 가지고자 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 한옥의 마당과 담장 개념은 현대건축에서도 반드시 접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일명 집장사라 불리는 전문건축업자가 지은 집, 즉, 경제성을 우선시 한 집의 경우에는 대체로 부지조성을 최소화하면서도 건축물의 높이는 높아집니다. 이렇게 되면 낮은 지반에 건축물을 지을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건축물의 외관이 낮아 보이므로 구매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즉, 건축물의 가치가 크게 하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축업자는 건축물의 바닥높이를 높입니다. 즉, 기단을 높여 지면과 거실 바닥과의 차가 최소 1.5미터 이상 차이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거실은 계단을 통해 올라서게 됩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 되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하면 앞에서 말한 서양건축의 경우처럼 최소한 건축물의 외관은 돋보이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이것은 구매자들이 쉽게 구매를 결정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런 방식으로 지어진 주택의 마당은 거실의 연장선으로서의 일차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고 맙니다. 물론, 서양의 저택건축과 같은 드넓은 정원이 마련된 부지 위에 건축된 경우라면 이런 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집은 일반적인 수준의 소박한 전원주택입니다. 계단설치로 인해 이동에 불편을 겪는 것은 또 다른 차후의 문제입니다.
그럼 일차적인 시선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부지는 높게 조성하되 건축물의 바닥높이, 즉, 거실 바닥과 지면의 차는 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변의 지형 조건과 인접 건축물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너무 튀거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부지를 조성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조성될 마당의 규모나 담장의 높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건축물 바닥의 높이는 60~80센티미터 정도면 무난할 것입니다. 흔히들 장마철에 습기가 거실로 유입될 수 있으니 거실 높이를 높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만, 필자의 경험으로 보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실의 높이가 낮으면, 거실에 앉은 사람은 마당 전체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와 시각적으로 거실의 연장에 놓이는 느낌을 받으므로 보다 넓은 공간적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담장 안의 영역은 마치 거실이 연장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당이 상당히 큰 경우라면, 거실 바닥의 높이는 좀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시선의 거리가 멀어지므로 그 각도 또한 완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실 바닥의 높이는 마당의 규모에 따라 조절되어야 합니다.
담장의 높이 또한 시각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담장이 너무 낮으면 외부로부터 받는 시선을 가릴 수 없고, 너무 높으면 거실에 앉은 사람의 외부로 향하는 시선이 가려집니다. 따라서 거실 바닥이나 소파에 올라앉으면 그 시선은 담장 중·상부에 놓여 마당 전체가 그 시야에 들어와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식탁에 앉으면 시선은 담장 끝에 놓여 일차적 시선과 이차적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되어야 하며, 일어선다면 일차적인 시선은 오히려 아래로 놓이고 담장 너머로 이차적인 시선이 확보되어 탁 트인 조망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안마당의 아늑한 안정감과 탁 트인 조망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담장 또한 마당의 규모나 거실과의 거리를 고려해서 높낮이를 가감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고려될 사항은 외적인 측면입니다. 즉,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시선에 관한 문제입니다. 인접도로나 인근 주민의 집에서 보았을 때, 그 느낌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내적인 측면, 즉, 내부에서의 좀 더 높은 조망을 얻기 위해 부지를 높게 조성하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부지를 높게 조성하면 좋은 조망을 얻겠지만, 반대로 외부에서의 시선은 위로 향하게 되어 집이 웅장하게 보여 주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인근 주택 등을 직접적으로 내려다보지 않는 정도의 수준에서 부지를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불가피하다면 건축물과 마당의 관계를 조절하여 최소한 거실에서 직접 인근 주택이나 도로 등이 내려다보이지는 않는 구조로 건축물을 배치해야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담장 안의 일차적인 영역, 즉, 시각적인 측면에서 거실의 연장선으로서의 마당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담장 밖이 거실에서 직접 내려다보이는 구조라면, 이미 담장 안의 일차적인 시선 영역은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