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1) 애기풀꽃 산문
- 바람이 부르면 -
꽃가루가 세상을 평면으로
붓칠 해도 봄 산 길에 들면
이름을 아는 꽃들은
제 빛깔로 내게서
노래로 춤춘다
봄맞이 꽃다지 씀바귀 양지꽃
제비꽃 각시붓꽃 제비꽃 제비꽃
어느 구간에서 제비꽃에
도돌이표가 붙고 길이 숨을
바꿀 때까지 발자국은 방향도
놓아버린 채 제비꽃 장단에 물든다
제비꽃에 중독된 길에서
눈물에 빠진 나를 깨운 건
약속을 지키지 못 한
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땅에 엎드려 절을 하던
등 굽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일어선 자리에 앉아
복숭아꽃보다 더 서러운
자주색 꽃잎으로 은둔자가
쓴 이야기를 필사한다
당신은 당신이 그리워할
그런 모습이 있기는 하냐고,
나도 모르는 나로 사는 게
그게 사는 거냐고
바람에 대한 원망조차 잊은
애기풀꽃 품에서 빈 시간이 만든
나를 허문다, 숨 넘어가던 발자국에서
제비꽃 보라색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