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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Jan 03. 2022

밤밤언덕(6)

7

“김상희.. 엄마 이름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명훈은 실로 오랜만에 엄마의 이름을 불러본다. 아니, 애초에 아들이 엄마의 이름을 불러볼 일이 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란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네 아줌마, 누구네 남편, 그리고 누구네 엄마로 말이다. 명훈은 교도소에서 출감하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며, TV에서만 보던 갖가지 것들을 손수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일들은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막연하게 세상에 나가면 이런 이런 일들을 해 봐야지 꿈을 꿔 본 것뿐이다. 실제로 이루지 못하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다. 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보다 명훈이 정말로 해 보고 싶은 일들은 참 사소한 것들이었다. 낮에는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밤에는 환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싶었다. 주말에는 산에 올라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었고, 저녁에는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고 싶었다. 명훈은 실제로 자신의 소원들을 하나하나씩 이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들 상우와 함께 하고자 계획했던 일들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말이다. 그리고 명훈에게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었다. 그것은 엄마의 이름을 불러 보는 것이었다. 명훈은 10년이란 세월 동안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 누구도 자신을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았다. 교도소안에서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명훈은 그게 그렇게도 서럽게 느껴졌다. 일가친척이 많지 않은 데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탓에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을 살갑게 불러 준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박명훈.. 이름을 잊고 사는 게 어쩜 그리도 서러운지 명훈은 한동안 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 엄마의 이름을 불러 본 적이 있던가. 평생을 살면서 엄마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엄마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평생을 잊고 살았던 엄마의 이름, 지금 이렇게 말이다.


“상희, 김상희. 몰랐는데 엄마 이름 참 예쁘다.”


“갑자기 이름은 왜 부르고 그래. 이렇게 다 늙었는데 이름이 예뻐서 뭐 하누.”


“그래도 엄마도 오랜만에 엄마 이름 들으니까 좋지 않아요?”


상희는 씩 하고 웃는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이 마치 어린 시절의 응석받이 같은 느낌이다. 자신의 품에 꼭 안겨 있는 나이 든 아들의 응석이 왠지 싫지가 않다.


“그래, 좋구나. 좋아.”


상희의 웃는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인다. 명훈은 살며시 상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엄마의 주름이 10년의 세월을 실감 나게 하는 것 같아 갑자기 쓸쓸해졌다. 명훈은 상희 옆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친정집을 다녀오겠다는 아내 덕분에 엄마와 함께 잠을 잘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명훈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엄마, 내가 정말 사람을 죽였을까?”


“응?”


“10년 전에 말이에요. 정말, 내가 성추행을 했을까? 사람을 죽였을까? 난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상희는 누워있는 명훈의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명훈아, 갑자기 10년 전 얘기는 왜 하누, 그때 일은 그냥 잊어버리자. 응?”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일까? 내 안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정말 있는 걸까 해서.”


상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만 바라보다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명훈아, 내가 네 아비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얘기했던가?”


명훈은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얘기를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명훈이 넌, 너의 아버지를 쏙 빼닮았지. 너희 아버지도 너처럼 참 순수하셨거든. 암, 그렇고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그저 묵묵히 자기 일만 하셨단다. 내가 네 아버지 그 점에 반했어.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그런데 그 사람의 단점이랄까. 술을 마시면 항상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했어. 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도 그랬단다. 네 고모 결혼하는 날이었거든. 술을 마시면 스스로도 주체가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술을 끊고 살았었는데 그날은 날이 날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던 게지.”


명훈은 그동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상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정말 알 수가 없지 뭐냐. 함께 있었던 주변 사람들 말로는 거하게 취하신 네 아버지가 이내 종적이 묘연했다는데. 이튿날 경찰에서 말하길, 읍내 대로변에서 차에 치여 돌아가신 네 아버지를 발견했다는 게야. 경찰은 나에게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 그냥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밖에는.. 옛날이라 불빛이 많지 않아 어두워서 그랬다는데 나로서는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너희 아버지를 떠나보냈지. 어떻게든 진상을 밝혀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어. 그렇게 평생을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살았지 뭐냐?”


“그럼, 가해자는요?”


“가해자는 무슨. 경찰들은 애초에 가해자를 찾을 생각도 없었어. 그래서 내가 경찰 놈들을 믿지 못하는 거란다. 명훈아, 너도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다. 넌 절대로 경찰이 말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야. 암. 내가 알고 돌아가신 너의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실 거야.”


명훈은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아버지의 헛된 죽음이 무능한 경찰 탓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10년 전 명훈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도 경찰의 무능함 때문이라고 강변하셨다. 그러나 명훈의 기분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 역시 술에 취하면 자신처럼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얘기가 명훈의 비수를 찔렀다. 나와 똑같았구나. 나 역시 음주 때문에 인생에 다시없을 과오를 겪었던 것 아닌가. 물론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신 스스로의 잘못이지만 그 때문에 잠재된 나의 인성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속 걱정거리가 정말이었다는 확신이 들어 괴로웠다. 술을 마셔 기억을 못 한다고 한들 내가 박명훈이 아닌 게 아니잖은가.      


8

고난과 행복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더없이 행복하다 느끼는 누군가에게는 남들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작은 상처만으로도 엄청난 시련을 느끼고, 하루하루의 삶이 고달픈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줄기 작은 희망마저도 무한한 행복으로 느껴진다. 내가 그러했다. 난 행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살았다. 부모에 대한 사랑도, 가족에 대한 애틋함도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얘기였다. 내적인 문제는 자연히 대외적으로도 스스로를 위축시켰다. 물론 이 역시 핑계일 수도 있다. 못난 자신을 탓해야지, 무슨 핑곗거리가 그렇게도 많은가. 그러나 마음가짐이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런 나에게 소희는 둘도 없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하루 종일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휴일에 해야 할 일들이 내게도 생겼어.’ 언젠가 들은 적 있는 흘러간 가요의 노랫말이 생각났다.


“상우야,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소희가 멀리서 달려오며 나를 반겼다.


“아냐, 괜찮아. 왜 뛰어왔어? 그러다 넘어질라.”


20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정말 괜찮았다. 지금 나에겐 소희를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설렘이 주는 행복이니까.

오늘은 소희와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남들의 눈을 피해서 데이트를 즐기기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 신분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주말에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우리는 종종 도서관을 함께 다니게 되었다. 모범생인 소희는 아무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고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우연히 도서관에서 마주친 것뿐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기에 일석이조였다. 나도 소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실, 여자친구가 생기면 남들처럼 놀이공원도 가고 자전거도 타고, 별도 보고 바다도 보러 가고 싶었다. 꿈속에 그렸던 로망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의식하며 도서관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가 않았다. 슬쩍 소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희는 이미 독서 삼매경에 빠져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소희에게 조금이나마 더 잘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노라 다짐했다. 나중에 대학에 진학해서도 남자가 모양 빠지게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고지식한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보다. 내가 공부를 하겠노라 다짐한 것이 어떤 사람이 되고자 꿈을 꾸었기 때문도 아니고 가족들의 바람 때문도 아니었다. 오직 여자친구와 함께 하고픈 일념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소희의 손을 잡았다. 소희도 싫지 않은 모양이다.


“아, 이제 겨울인가 봐. 많이 춥지?”


소희는 내 어깨에 바싹 달라붙었다. 추운 날씨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소희의 집 앞이 가까워 오자 가는 시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고마워, 상우야. 오늘도 덕분에 잘 왔어.”


“아냐, 고맙긴. 춥다. 어서 들어가.”


그때였다. 소희의 집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누군가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소희 왔어?”


“아.. 네, 아빠.”


소희는 흠칫 놀라며 맞잡고 있던 나의 손을 뿌리쳤다. 나 역시 깜짝 놀라 잠시 할 말을 잊고 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소희 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상..”


내가 소개를 마치기도 전에 소희가 갑자기 나의 말을 가로채 버렸다.


“아빠, 여기는 같은 반 친구예요. 저한테 줄 책이 있어서 전해주러 왔거든요.”


소희가 손짓을 하자 나는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왼손에 들고 있던 소희의 가방을 급히 건네주었다.


“그래? 밤이 늦었는데 참 고마운 친구구나.”


“아빠, 얼른 들어가요. 추워요.”


소희는 황급히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 눈짓을 했다. 소희가 집안에 들어가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소희는 내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내 이름을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소희가 비밀연애를 고집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에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다 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 때문에.. 치기 어린 생각이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동안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원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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