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실루엣

by 은파

하린은 병원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박지훈의 수술이 끝난 지 12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린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녀는 지훈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동시에 그가 깨어났을 때 알게 될 진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정하린 씨."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하린은 고개를 돌렸다. 이민준이 커피 두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이거 마시세요."

민준이 커피를 건넸다.

하린은 감사의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받았다.

"고마워요, 형사님."

두 사람은 잠시 침묵 속에서 커피를 마셨다.

"현우라는 사람에 대해 뭔가 알아냈습니까?"

하린이 물었다.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입니다. 박소연의 학창 시절 친구들을 모두 조사하고 있어요. 곧 드러날 겁니다."

하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없어요. 박지훈이 깨어나기 전에 우리가 무언가를 찾아내야 해요."

그때 하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윤지우였다.

"지우야, 무슨 일이야?"

"하린아, 큰일 났어."

지우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들렸다.

"방금 강태우 검사님에게서 경찰서로 연락이 왔었어. 박지훈의 정신병원 기록이 조작되었다고."

하린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응, 박지훈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는 거기 없었다는 거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의 병원 기록을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어."

하린은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알겠어, 지우야. 고마워."

하린이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입니까?"

민준이 물었다.

하린은 상황을 설명했다. 민준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이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네요,"

민준이 말했다.

"누군가가 박지훈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뜻이에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우리가 찾는 진짜 범인일 수 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었다.

"정하린 씨,"

민준이 말했다.

"우리는 박소연의 과거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죽음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니까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박소연이 다녔던 고등학교를 방문해 보는 게 어떨까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곳에 남아있는 선생님들이 있을 거예요. 그들이 기억하는 것들이 진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지금 당장 가봅시다."

두 사람은 서둘러 병원을 나왔다. 차에 오르자, 민준이 말했다.

"정하린 씨,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당신의 '능력'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당신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린은 놀란 표정으로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의 차가운 표정 뒤에 숨겨진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워요. 형사님,"

하린이 말했다.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이 사건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겠습니다."

차는 서울 외곽의 한 고등학교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학교는 한창 수업 중이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 여러 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서울경찰청 소속 이민준 형사입니다."

민준이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분은 정하린 프로파일러입니다. 10년 전 이 학교에 다녔던 박소연 학생에 관해 몇 가지 여쭤보러 왔습니다. 바쁘시더라도 협조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순간 술렁임이 일었다. 그중 검은 뿔테 안경을 한 중년의 여성 선생님이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저는 김미숙입니다. 당시 박소연 학생의 담임이었어요."

하린의 눈이 커졌다.

"정말 운이 좋네요. 선생님,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김미숙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조용한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박소연 학생에 대해 어떤 기억이 있으신가요?"

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미숙 선생님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소연이···. 그 아이는 정말 밝고 착한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 학기 때 갑자기 변했습니다."

"어떻게 변했나요?"

민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린이가 점점 우울해졌어요.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기 전날, 제게 왔어요."

하린은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나눴나요?"

갑자기 김미숙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 아이가 말했어요. '선생님, 저 잘못했어요. 하지만 이제 모든 걸 바로잡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더 물어볼 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어쩌면···."

하린은 김미숙 선생님의 손을 잡았다. 그때 후회의 감정이 격하게 하린에게 밀려들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민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박소연 학생의 친한 친구들을 기억하시나요?"

김미숙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김지은, 이유진, 그리고 서현우···. 이 네 명이 항상 붙어 다녔어요."

하린과 민준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현우···. 드디어 '현우'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서현우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하린이 다급하게 물었다.

김미숙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현우는···. 조용하지만 정말 똑똑한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가끔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어요.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하린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이 모든 이야기에서 무언가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려 노력했다.

"선생님,"

하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그 당시 학교에서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소연이의 변화와 관련이 있을 만한···."

김미숙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그즈음에 한 선생님이 갑자기 사직하셨어요. 과학 선생님이었는데···."

"그게 누구였죠?"

민준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름이···. 강태식 선생님이었어요. 하지만 왜 사직하셨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하린은 민준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에서 같은 의문이 보였다. 이 강태식이라는 선생님이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린이 말했다.

"큰 도움이 되었어요."

두 사람은 학교를 나왔다. 차에 오르자, 민준이 말했다.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이 두 명이군요. 서현우와 강태식."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저는 이 두 사람이 박소연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그때 하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네, 여보세요?"

"정하린 씨, 박지훈 씨가 깨어났습니다."

하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녀는 민준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두 사람은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의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

민준이 재촉하듯 물었다.

"아직 약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의식은 명료해요. 면회는 가능합니다."

하린과 민준은 박지훈의 병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창백한 얼굴의 박지훈이 누워 있었다.

"박지훈 씨."

하린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후회가 서려 있었다.

"당신들은···. 경찰이군요."

지훈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또렷했다.

민준이 앞으로 나섰다.

"네, 저는 서울경찰청 소속 이민준 형사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정하린 프로파일러입니다."

지훈은 잠시 하린을 바라보았다.

"당신···.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서요?"

하린은 깜짝 놀라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지훈은 희미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사람의 감정을 읽는 프로파일러라고."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기 능력이 이렇게까지 알려져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박지훈 씨,"

민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에게 물어볼 게 많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당신이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랬습니다."

하린과 민준은 너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그가 이렇게 쉽게 자백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정의였어요."

하린은 지훈에게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어떤 정의였길래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야 했나요?"

지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고하다고요? 그들은···. 절대 무고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소연이를 죽인 살인자들이에요."

하린과 민준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민준이 물었다.

지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전, 소연이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 그들이···. 그들이 소연이를 죽였어요."

하린은 놀란 가슴을 안고 숨을 들이켰다.

"그들이라는 건···. 피해자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지훈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김지은···. 그리고···. 그들 모두가 소연이를 죽였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민준이 중얼거렸다.

지훈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소연이가 제게 전화했어요. 울면서 말하더군요. '오빠, 나 무서워. 하지만 이제 모든 걸 바로잡을 거야.' 그리고 얼마 후에 소연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죠."

하린은 지훈의 손을 잡았다.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깊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후회···.

"처음에는 저도 소연이가 자살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년 전, 우연히 현우를 만났죠. 그가 술에 취해 모든 걸 실토했어요. 소연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자세히 말해주세요."

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연이가···. 강태식 선생님과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소연이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강태식이 소연이를 협박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랬어요."

하린과 민준은 충격에 빠졌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지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소연이가 이 사실을 같은 동아리 모임에서 털어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들은···. 강태식을 찾아갔죠. 하지만 일이 커져 버렸어요. 말다툼 끝에 강태식이 사고로 죽고 말았대요."

"그래서 소연이가···."

하린이 중얼거렸다.

"네,"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이는 경찰에 자수하자고 했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소연이를 죽이기로 한 거죠. 물론 현우는 끝까지 그걸 막으려 했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병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린은 지훈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래서 복수를 결심하셨군요."

민준이 말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저는 바보였어요. 복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통만 낳았죠."

하린은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박지훈 씨,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지훈은 하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이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거짓은 없어야 해요."

민준이 앞으로 나섰다.

"박지훈 씨, 정식으로 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민준이 물었다.

"서현우···. 그를 조심하세요. 그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어요. 그리고 그는 아직 뭔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하린과 민준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 앞에는 새로운 과제가 놓여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하린이 말했다.

"우리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두 사람은 병실을 나왔다. 밖에는 이미 다른 형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하린이 민준에게 물었다.

민준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서현우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강태식의 죽음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해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소연의 부모님께도 진실을 알려야 해요. 그들도 정확한 사실을 알 권리가 있습니다."

민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동의했다.

"네, 하린 씨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더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만 합니다."

두 사람은 병원을 나와 차에 올랐다. 하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그들은 10년 전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비밀과 고통이 드러날 것이다.

"형사님,"

하린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 사건을 해결하면···. 모든 게 끝날까요?"

민준은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진실이 밝혀지면 새로운 상처가 생길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죠."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번 사건이 끝나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가 남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해야만 합니다,"

하린이 말했다.

"모두의 진실을 위해서."

민준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었다.

하린은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박소연,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고, 정의를 실현하겠습니다.'

차는 천천히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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