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은 출근 인파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광고판을 바라봤고, 그 중심엔 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 흠잡을 데 없는 피부, 계산된 미소가 멈춘 화면 위로 또렷하게 떠올랐다. 행복해 보였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얼굴 같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표정을 믿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감에 휩싸였다. 광고 속 여자는 건강기능식품을 들고 있었고, ‘행복한 아침을 시작하세요’라는 형광색 문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웃음은 지나칠 만큼 완벽하게 느껴졌다. 잔주름 하나 없는 피부, 흐트러지지 않은 머리카락, 각도까지 계산된 것 같은 입꼬리.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복제된 웃음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열차가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광고가 바뀌었다. 커피잔을 든 남자가 웃고 있었고, 서로를 껴안은 가족이 웃고 있었으며, 연인은 손을 맞잡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그 웃음들은 밝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으며, 의심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다. 세상이 웃음으로 가득 찬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 속 지하철 안은 달랐다. 광고 속 인물들처럼 웃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표정을 짓는 사람조차 없었다. 마치 모든 감정을 지워낸 듯, 무표정이라는 가면을 얼굴 위에 얹은 사람들뿐이었다. 그 얼굴들에서는 절망이나 슬픔 같은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도 똑같은 무표정이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표정을 지우고 살아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화장을 하며 거울 앞에 설 때만 해도 나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 얼굴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감정이라는 전원을 스스로 꺼버린 듯, 내 안의 무언가가 차갑게 식어갔다.
옆자리에 앉은 중년 여성이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안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거움이 담겨 있었다. 오랜 피로가 축적된 듯했고, 무엇인가에 실망하고 체념한 기색이 느껴졌다. 어쩌면 지나간 선택에 대한 후회가 스며 있었을 수도 있었고,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낡은 가방을 꼭 쥐고 있었고, 발밑에는 검은 구두 한 켤레가 조용히 놓여 있었다.
또 하나의 광고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선택’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웃음의 이면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그는 어쩌면 성공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혹은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언젠가 자신도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그런 감정들을 애써 지워낸 채, ‘성공’이라는 단어 하나에만 매달려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도 떠올랐다.
열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열차에 올랐다.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쳐 보였고,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무거워 보였으며, 깊은 곳에서부터 텅 빈 기색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표정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감정을 눌러 담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같은 종류의 침묵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버린 침묵이었다.
나는 문득,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연습하던 웃음을 떠올렸다. 그렇게 해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언제부터 내 안에 뿌리내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처럼 여겨왔다. 마치 웃지 않으면 존재할 자격이 없고, 행복해 보이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웃어야 한다. 밝게 보여야 한다. 문제없어 보여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진심으로 웃고 싶었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웃음을 지었던 기억조차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나는 매일 웃는 연습을 반복했지만, 정작 웃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 사실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웃음을 그렇게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웃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씩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하철이 또 하나의 역에 멈추었다. 승강장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질서 있게 객차 안으로 올라탔다. 새로 탄 이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금세 이 차가운 공기 속에 섞여 들었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꺼냈고, 누군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으며, 또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잠든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설명하기 힘든 기시감에 휩싸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이라기보다, 매일 아침 반복해서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같은 시간, 같은 노선, 그리고 익숙해진 얼굴들. 물론 매번 똑같은 사람들이 탑승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들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피로의 결이 닮아 있었고, 표정 없는 얼굴도 그랬으며, 말하지 않는 방식마저도 같아 보였다.
그때 문득 하나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미술 시간이었다. 자화상을 그리던 날, 선생님이 손거울을 나눠주며 자신을 직접 그려보라고 했던 날이었다. 나는 거울 속 나를 오래 들여다보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지금처럼 생각했었다. ‘이게 정말 내 얼굴일까?’ 거울에 비친 인물은 분명 나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의 얼굴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내 뒤를 지나가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이현아, 좀 더 밝게 그려봐. 웃는 얼굴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자화상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종이 위에 그려진 웃는 얼굴은 거울 속 나와 전혀 닮지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웃고 있지 않았고, 종이 위의 얼굴은 애써 만들어낸 표정이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진짜 얼굴과 보여주는 얼굴이 서로 멀어지기 시작한 순간은, 그 어린 시절부터였다고 느껴졌다.
지하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콘크리트로 가득 찬 건물들, 아스팔트 도로, 구름이 잔뜩 끼인 하늘. 모든 것이 색을 잃은 듯 칙칙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풍경이 내 마음엔 더 깊이 와닿았다. 광고판 속 화려한 색감보다 오히려 회색빛이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그 색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맞은편 좌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소셜미디어 피드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눈부신 여행지 사진, 정갈하게 놓인 음식 사진, 연인과의 다정한 일상, 피트니스 센터에서 찍은 운동 사진까지.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미지 속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광고 속 인물처럼, 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 화려한 사진들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눌려 있는 듯,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마치 타인의 행복을 확인하며 자신의 불행을 되새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나 역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 스마트폰을 켜고, 다른 사람들의 웃는 얼굴과 반짝이는 일상을 스쳐본 뒤, 내 하루와 비교하며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비교는 습관처럼 나를 조용히 옥죄고 있었고, 나는 자발적으로 그 감정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연기를 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셜미디어 속에서도, 광고판 속에서도, 그리고 이 지하철 안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배역을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행복한 사람인 척했고, 누군가는 성공한 사람인 척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아무 문제 없는 사람인 척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매일 ‘괜찮은 사람’이라는 역할을 맡은 배우처럼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연기가 진짜보다 더 중요해졌을까. 언제부터 내면의 감정보다 바깥에 드러내는 표정이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 걸까. 슬프면 슬프다고, 화가 나면 화났다고, 외롭다고 느끼면 그대로 말하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워진 걸까. 그렇게 말하는 일이 정말 잘못된 일이라도 되는 걸까.
나는 어젯밤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도윤과 전화 통화를 했었다.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별일 없었어.”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혼이 났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는 틀어졌으며, 결국 당분간 야근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는 읽기만 하고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모든 것이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도윤이 걱정할까 봐서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문제 많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찮다’라는 말이 얼마나 편리한 거짓말인지, 그제야 실감했다. 상대방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편하게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말-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마법 같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너무 자주 쓰다 보니, 이제는 내가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닌지도 모호해져 버렸다.
그때 지하철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차 안에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응, 잘 지내지. 회사 일이 좀 바빠서······ 아니야, 괜찮아. 별일 없어.”
또다시 같은 말이었다. 괜찮다고 말하고, 별일 없다고 말하는 그 익숙한 표현.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똑같은 대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하나의 대본 위에서 돌아가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우리가 모두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누군가 “오늘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힘들었어”, “외로웠어”, “불안했어”라고 답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솔직해지지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무거워질까. 모두의 진짜 감정들이 한꺼번에 드러났을 때, 우리는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열차가 또 하나의 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여러 명 탔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 역시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아니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린 얼굴들은 이미 무표정의 기술을 익힌 듯 보였다.
아이들이 어른들처럼 표정을 감추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였을까. 웃음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애써 만들어야 하는 표현이 되어버린 순간은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한 고등학생이 친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며 작게 웃었다. 그 짧은 웃음소리는 지하철 안을 가득 메운 정적을 단숨에 깨뜨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듣는 낯선 소리에 놀란 듯,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 학생을 바라보았고, 곧 조용히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제자리로 고개를 내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심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이 이제는 보기 드문 일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갑작스레 웃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마치 이상한 것을 목격한 듯 반응한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사회에서 ‘웃음’이라는 감정조차 공공장소에서는 자제해야 할 무언가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배꼽을 잡고 웃던 장면들이 흐릿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별것도 아닌 일에 터져 나왔던 웃음들, 그 시절은 참 쉽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칠판 글씨가 삐뚤어졌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두가 킥킥댔고, 급식 시간에 친구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기만 해도 교실 전체가 들썩였다. 어떤 날은 그저 아무 이유도 없이 웃었다. 웃는다는 것이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던 시절이었다. 웃음을 참아야 할 이유도, 감춰야 할 이유도 없었던 때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웃음에도 조건이 생기기 시작했다. 적절한 순간, 적절한 크기, 적절한 상황이 필요해졌고, 웃음은 점점 조절되어야 하는 감정이 되어갔다. 크게 웃으면 시끄럽다고 주의를 받아야 했고, 혼자 웃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았다. 심지어 슬픈 자리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을 때는 주변의 눈치를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어느새 나는 웃는 법을 잊게 되었다.
나는 내 웃음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상사의 농담에 맞장구치며 웃던 날들,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사회생활의 피곤함을 나누며 함께 웃었던 기억, 도윤과 데이트 중 건네던 형식적인 미소까지. 그 모든 웃음은 진심이라기보다는 상황에 맞춘 반응이었다. 상대방이 기대하는 장면에서 내가 지어야 하는 표정,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회적 행동이었다. 내가 정말로 웃고 싶어서 웃은 순간은 거의 없었다. 웃어야 하니까 웃었고, 웃지 않으면 어색해질까 봐 웃었으며, 웃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웃었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웃고 싶었던 순간이 과연 있었을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던 기억이 대체 언제였는지, 한참을 떠올려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의 시간을 아무리 되짚어도, ‘그때 나는 진심으로 웃었어’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내 모든 웃음은 어딘가 연극 같았고, 준비된 반응 같았다. 그것은 타인을 위한 연기이자, 결국에는 나 자신까지 속이는 행위였다.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언제나 웃으려고 애쓰는 분이었다.
“힘들어도 웃어야 해.”
그 말은 어머니의 삶을 지탱하는 일종의 철학처럼 보였다. 어렵고 벅찬 날에도, 아버지와 격한 말다툼을 하고 난 후에도, 언니가 사라졌던 그날 이후에도 어머니는 어떻게든 미소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항상 이상하게 느껴졌다. 눈은 웃지 않았고, 입술만 억지로 올려붙인 듯 어색한 표정이었다. 웃음의 틀만 남은, 감정 없는 움직임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슬프면 왜 울지 못하는지, 화가 나면 왜 화를 내지 못하는지, 무서울 땐 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물음을 던졌고, 어머니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래야 살 수 있어. 그래야 사람들이 널 좋아해.”
그 말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고, 나도 어느새 그 말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하철은 어느새 한강 위를 지나고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강물 위로 잿빛 하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고,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그 회색빛은 유난히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과하지 않았고, 꾸미려 하지도 않았으며, 어떤 거짓도 담고 있지 않은 색이었다. 강물은 소리 없이 제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감정을 흉내 내지도 않고 그저 존재하고 있었다.
지하철 안 광고판이 다시 또 다른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한 가족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밝게 웃고 있었다. ‘행복한 가정의 비밀’이라는 문구가 화면 아래에 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가족이 정말 존재할까, 아니면 그들 역시 카메라 앞에서만 그런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일까. 어쩌면, 그 웃음도 또 하나의 연기였을지 모른다.
지하철이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곧 회사에 도착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다시 하루 종일 웃으며 지내야 했다. 동료들에게 “좋은 아침이에요”라고 말하며 웃어야 했고, 상사가 던지는 농담에 맞장구를 치며 웃어야 했으며, 점심시간에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직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벌써 얼굴 근육이 지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방 안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했다. 파운데이션은 고르게 발려 있었고, 립스틱도 번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눈가의 메이크업도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완벽하게 꾸며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흠 하나 없이 매끄러운, 조각된 인형의 얼굴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해보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눈가에 미소가 번지도록 각도를 조절했다. 조금 더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표정을 다듬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웃음은 어색했다. 마치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 발음을 흉내 내듯, 나도 모르게 어긋나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거울을 조용히 가방에 넣고 나서,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하철은 마지막 커브를 돌며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이제 정말 도착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일정을 확인했다. 오전 회의, 점심 약속, 오후 프레젠테이션, 저녁 회식까지.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마다 웃어야 했다.
지하철이 마침내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같은 발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미리 입력된 명령어를 따라 움직이는 프로그램처럼 보였다. 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가방을 메고, 스마트폰을 다시 손에 쥐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움직임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오늘 하루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어쩌면 퇴근할 때까지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웃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 중에 진짜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전부 상황에 맞춰야 하는 웃음이고, 상대방이 기대하는 웃음이며, 사회가 요구하는 웃음일 것이다. 나는 그 웃음들 뒤에 숨어서, 진짜 내 감정을 감춘 채 하루를 조용히 견디게 될 것이다.
지상으로 올라오자, 아침 햇살이 얼굴을 스쳤다. 햇살은 분명 따뜻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차가운 기운에 싸여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걷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나와 비슷한 표정이 어렴풋이 떠올라 있었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 똑같은 하루가 또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회사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저기에서 또 하루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나는 하루. 하지만 그 웃음들은 모두 껍데기처럼 느껴졌다. 속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더 이상 의미도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회사 건물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거울 없이 웃는 연습을 해보았다. 오늘도 완벽한 연기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섰다. 회사 로비는 이미 출근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표정하지만, 어딘가 긴장된 기운이 감돌았다. 곧 각자의 사무실로 흩어져 하루 종일 연기를 시작할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배역을 준비하는 배우처럼 보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주변 사람들을 살폈다. 한 남성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흐릿했다. 화면에는 경제 관련 기사들이 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읽고 있다기보다 그저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시간을 죽이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얼굴이었다. 또 다른 여성은 작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이미 완벽하게 메이크업이 되어있었지만, 그녀는 눈가를 다시 정리하고 립스틱을 덧바르며 조금 더 완벽한 얼굴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에 대비하고 있었다. 하루라는 전장에 나서기 전, 각자의 무기를 점검하는 전사의 얼굴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공간 안에 여럿이 함께 섰지만,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만의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층수 버튼을 누른 뒤에는 천장이나 바닥을 응시하며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이 짧은 정적이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 전에 허락된 마지막 고요처럼 느껴졌다.
12층에 도착하자 나는 조용히 내렸다. 복도를 걸으며 몸가짐을 정돈했다. 어깨를 펴고, 표정을 매만졌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제 ‘괜찮은 사람’ 이현이 되어야 했다. 사무실 문을 열며 환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몇몇 동료들이 고개를 들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들 역시 준비된 웃음을 얼굴에 걸치고 있었다.
“아, 이현 씨! 좋은 아침이에요!”
하루의 첫 번째 연기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대사를 알고 있었고, 익숙한 장면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이메일함에는 어젯밤 늦게 도착한 메시지들이 쌓여 있었다. 대부분은 급한 업무 요청이었고, 몇 개는 이미 마감이 임박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하나씩 메일을 열어보았다.
잠시 후, 옆자리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어제 야근하느라 힘들었죠? 괜찮으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거짓말이었다. 어젯밤 나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왔고, 집에 도착한 뒤에도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새벽 2시까지 뒤척였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일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면 안 되는 분위기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조직에서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먼저 지는 사람이었고, 무너지기 시작한 사람은 쉽게 부서질 수 있었다.
커피가 절실하다고 느낀 나는 사무실 한쪽의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신입사원 민수를 만났다. 입사한 지 한 달 남짓 된, 아직 스물여섯의 어린 청년이었다. 민수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웃는 법을 이제 막 배운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미숙한 웃음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응, 민수 씨. 회사 생활은 어때? 적응은 잘 되고 있어?”
“네! 정말 재미있어요. 배울 게 많아서 좋아요!”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씁쓸한 감정을 삼켰다. 민수도 벌써 연기를 시작했구나. 회사 생활이 정말 재미있을 리 없을 텐데. 모든 것이 낯설고, 부담은 무겁고, 체력도 감정도 아직 서툴 텐데. 그런데도 민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선배들이 도와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에서조차 나의 연기를 느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아요. 힘든 거 없어요!”
또 그 말이었다. 괜찮다는 말. 민수도 이미 그 말을 배워가고 있었다. 사회생활의 첫 번째 규칙은,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문제가 있어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바로 연기의 시작이라는 걸, 나도 민수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민수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예전 생각이 떠올랐다. 나 역시 신입사원일 때 그랬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괜찮다”, “재미있다”, “많이 배우고 있다”라는 말만 반복했었다. 그렇게 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던 동기들은 하나둘씩 조용히 회사를 떠났다.
오전 회의 시간이 되어 회의실에 들어섰다. 부장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일정은 빠듯했고, 요구사항은 까다로웠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팀원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장이 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진심으로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금 팀의 여건상 무리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하나씩, 순서대로 익숙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도전적이지만 해볼 만합니다.”
“팀워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회의실은 잠시 무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정확히 읊어내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부장의 얼굴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표정이 또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운 부분들이 있겠지만, 차근차근해 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예요.”
부장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팀원들도 그 말에 고개를 맞춰 움직이며 공감하는 제스처를 보냈다. 모두가 원하는 대답이었다.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무리인데. 야근은 분명 계속될 거고, 이번 주말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
회의가 끝난 후 자리에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동료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이현 씨는 정말 도전적이에요. 그런 모습이 늘 부러워요.”
나는 또 웃었다.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내 목소리는 평온하게 들렸지만, 속마음은 그와 정반대였다. 나는 본래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보여야 한다고 믿어왔을 뿐이었다. 모든 것은 연기였다. 익숙하게, 정확하게, 자동으로 작동하는 연기였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또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며 웃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조용히 가방에서 작은 거울을 꺼냈다. 화장이 번지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웃는 표정이 자연스럽게 보이는지 살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에서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 가면을 언제까지 쓰고 살아야 할까. 진짜 나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꺼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거울을 다시 가방에 넣으며 생각했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흘러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나는 하루. 하지만 그 수많은 웃음 중 진짜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모든 웃음은 거짓이고, 모든 표정은 연기이며, 모든 대화는 가면을 쓴 채 나누는 말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웃고 있지 않았고, 행복해 보였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그런 역설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나의 삶이었고, 그것이 이 시대의 생존 방식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