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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역설 02화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by 은파

오후 2시 30분. 회사 옆 카페의 작은 세미나실에서 마이크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또렷한 내 목소리가 좁은 공간 안에 맑게 울려 퍼졌다. 오늘은 월례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제목은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감정 관리의 기술.’ 30명 남짓한 직장인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해야 했다.

노트북을 열고 마지막으로 강연 자료를 점검했다. 슬라이드마다 밝은 색감과 긍정적인 문구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긍정의 힘을 믿어보세요!’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모든 문장이 어김없이 느낌표로 끝나 있었다. 마치 그렇게 외쳐야만 진실이 되는 것처럼, 감정을 밀어붙이는 문장들이었다.

강연장에는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부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인들이었다. 피로에 절어 있는 얼굴들 사이로, 어딘가 기대에 찬 눈빛이 번져 있었다. 마치 이 한 시간이 그들의 삶을 바꿔줄지도 모른다는 그 믿음이 내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거울 앞에 선 나는 표정을 점검했다. 메이크업은 정돈되어 있었고, 얼굴은 밝고 생기 있어 보였다. 표정도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연기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그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오늘도 또 거짓말을 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곧 30명의 청중 앞에 서서, 나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을 해야 했다. 감정 관리는 어렵지 않다고, 긍정적인 사고가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행복은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감정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었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현실은 단 한 줄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요즘은 행복이란 감정이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려둔 강연 예고 게시물에 ‘좋아요’와 댓글이 수십 개나 달려 있었다.

“이현 선생님, 강연 항상 도움 돼요!”

“오늘도 힘내세요!”

“선생님 덕분에 긍정적으로 살고 있어요!”

모두 고맙고 따뜻한 말들이었지만, 화면 속 문장들이 나를 찌르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나를 감정 관리의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며, 어떤 어려움도 웃음으로 넘기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그와 정반대였다. 매일 밤, 잠들기 전이면 어김없이 하루를 반성했고, 끝없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 자신을 몰아넣었다. 후회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자책 끝에 눈을 감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또다시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얼굴에 붙인 채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훈련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 올랐다. 조명이 따뜻하게 얼굴을 비췄고, 마이크를 쥔 손은 익숙하게 여유를 품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이렇게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감정 관리 전문가 이현입니다.”

목소리에는 활기가 깃들어 있었고, 표정은 생기 있어 보였으며, 말의 톤과 손짓 하나까지도 계산되어 있었다. 완벽한 연기였다. 사람들은 내 말을 조용히 따라왔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여러분, 혹시 오늘 아침에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어떤 말을 했나요? ‘오늘도 힘든 하루가 시작되겠구나’,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그런 생각을 하진 않으셨나요?”

몇몇 청중이 작게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들 자신의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 역시 매일 아침 같은 생각을 하며 일어났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할 수 없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하루를 망치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보세요.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요.”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들은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내 말을 믿고 있었다. 바로 그 믿음이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나는 이 순간에도, 내가 믿지 않는 말을 타인의 삶을 바꾸는 문장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정 관리의 첫 번째 단계는 자기 암시입니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주세요.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할 거야’—이런 말들로 자신을 격려해 보세요.”

나는 그런 자기 암시를 매일 반복해 왔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말할수록 허무해졌다.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자리에서 그 방법이 유효하다고 말해야 했다. 그게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었고, 내가 지켜야 할 태도였다.

“자, 여러분. 지금 바로 옆 사람과 함께 연습해 볼까요? 서로를 바라보며 말해주세요.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강연장 안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사람들은 쑥스러운 듯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 말들이 강연장 구석구석에서 반복되었다. 그러나 내 귀에는 그 문장이 형식적인 주문처럼 들렸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고, 감정도 실리지 않았다. 준비된 문장이었다. 말하기 위해 외운 문장, 믿기 위해 반복하는 문장이었다.

강연이 진행될수록 나는 점점 더 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치 무대 위에 선 배우처럼 청중의 반응을 살피며, 더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고, 손짓과 몸짓은 점점 과장되었다. 목소리에는 확신이 실려 있었지만, 그 확신은 전부 가짜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입을 통해 나올 때마다, 나는 그 속이 얼마나 텅 비어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청중들의 표정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강연 초반만 해도 회의적인 눈빛을 보이던 이들이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 말을 진심으로 믿기 시작한 것 같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말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 순수한 믿음이 오히려 내 가슴을 더욱 조이기 시작했다. 내가 믿지 못하는 말들을 다른 사람들은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숨이 막힐 정도로 아프게 느껴졌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화면에는 ‘감정 조절의 5단계’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각 단계를 설명해 나갔다. 감정 인식하기, 감정 받아들이기, 감정 분석하기, 감정 전환하기, 감정 활용하기. 보기에는 그럴듯했고, 구조는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단계도 제대로 실천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감정 받아들이기’를 말할 때는, 입술이 마르고 목이 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부정적인 감정도 삶의 일부라고, 억지로 밀어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슬픔과 분노, 실망과 좌절을 밀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를 악물고 억지로 웃었고, 속이 울컥할 때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면서, 이 순간에도 받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강연장 뒤쪽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보냈다. 중년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무척 단단했다. 최근 이혼을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어떻게 해야 그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지 지금 이 자리에서 답을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런 구체적이고 절실한 질문 앞에 서면 언제나 무력해졌다. 감정이란 이론서에 적힌 단계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며, 누군가의 상처는 슬라이드 한 장으로 덮을 수 없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무대의 강연자였고, 이 분위기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따뜻하고 희망적인 말,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언어가 필요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평소보다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혼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지금의 아픔이 결국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 거라고,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했다. 말은 따뜻하게 들렸고, 사람들에게는 위로처럼 전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인지 실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혼을 겪어본 적도 없고,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체험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말해야 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위로하는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내 말이 진심으로 닿지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도 청중들은 박수를 보냈다. 마치 내가 훌륭한 대답을 한 것처럼, 감탄에 찬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시간이 흘러 강연은 마지막에 다다랐다. 마지막 슬라이드를 띄웠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화면 가득히 커다란 글씨가 떠올랐고, 그 아래에는 밝게 웃는 사람들의 사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고, 구김살 하나 없는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사진들 역시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을. 카메라 앞에서 만들어진 웃음이라는 것을.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신을 믿으라고,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믿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누군가를 탓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고,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 마음을 감춘 채, 누군가에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강연이 끝나자 강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몇몇은 눈가를 훔쳤고, 어떤 이는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박수를 받으며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 박수는 내게 점점 더 공허하게 들렸다. 거짓말 위에 쌓인 진심. 가짜에 대한 진심 어린 반응. 그 불균형이 내게 깊은 죄책감을 안겼다.

강연장을 빠져나가기 전, 몇몇 청중이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오늘로 인해 삶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고, 다음 강연도 꼭 듣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응원합니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잊지 마세요, 당신은 괜찮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할수록 미안함이 가슴 깊숙이 밀려들었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정답을 아는 사람처럼, 그들에게는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나는 해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 불과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떠나고 나자, 강연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사람도, 박수도, 기대의 눈빛도 사라진 공간에, 나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마이크를 끄고, 프로젝터를 정리하고, 슬라이드를 닫고, 자료를 가방에 넣었다. 손은 익숙하게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에는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감정도 없었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정해진 동작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에 너무 익숙해진 대신, 정작 나 자신은 감정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감정 관리 전문가가 아니라, 감정을 제거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강연장을 나와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구석이 필요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하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곧 소셜미디어 라이브 방송을 시작해야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는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었다. '이현 선생님과 함께하는 힐링 토크'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방송으로, 실시간 시청자는 천 명 정도였다.

나는 카메라 앱을 켜고 전면 카메라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다. 강연으로 인한 피로가 살짝 묻어있었다. 화장을 고치고, 입꼬리를 다듬고, 눈매에 힘을 실었다. 밝고 생기 있는 얼굴로 다시 태어났다. 또 하나의 연기가 시작될 준비가 끝났다.

라이브 방송 버튼을 눌렀다. ‘방송 시작’이라는 문구가 떴고, 곧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댓글 창에는 인사말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어떠셨어요?”

“항상 감사해요.”

모든 댓글이 따뜻했고, 다정했다. 나는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오늘 강연이 있었다고 말했고, 많은 분과 만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모든 말은 긍정의 뉘앙스로 포장했다. ‘피곤하다’라는 말은 ‘충만하다’로 바꾸었고, ‘힘들다’는 ‘보람찼다’로 대체했다.

댓글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대부분은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댓글 하나가 있었다. 한 시청자가 직장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며, 자신감이 무너졌고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썼다. 동료들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다며, 어떻게 다시 긍정적인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느냐고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그 댓글을 읽자, 복잡한 감정이 가슴을 찔렀다. 나 역시 똑같은 경험이 있었다. 몇 달 전, 회사에서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망쳤다. 수치심과 자책감은 오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출근조차 힘들었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도 버거웠다. 그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다.

하지만 라이브 방송 중에 그런 ‘진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대신 교과서적인 답변을 꺼냈다.

“실수는 성장의 기회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자각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그 실수 하나로 몇 달을 괴로워하며 지냈다. 말뿐인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시청자 수는 점점 늘어났다. 댓글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내 말에 공감한다고 했고,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 반응을 볼수록 내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내가 쏟아낸 말들이 거짓이었음에도, 누군가에게는 진짜 위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설명되지 않았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위안이 되는 세상. 그것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시청자가 질문을 남겼다. 선생님은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보이는데, 혹시 힘들거나 우울한 순간은 없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 질문을 읽는 순간, 심장이 두세 번 빠르게 뛰었다.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던 질문이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내 얼굴이 화면에 잠시 굳어 있다가 곧 다시 익숙한 미소를 띠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도 가끔은 힘들 때가 있다고, 그럴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며, 감사할 일을 떠올리거나 운동, 독서 같은 건전한 취미로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모두 거짓이었다. 힘들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한 적 없었고, 감사할 일은커녕 자책할 일만 떠올렸다. 운동도, 독서도, 위로가 된 적 없었다. 대신 침대에 누워 온종일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를 비교하고 깎아내렸다. 그것이 진짜 나의 모습이었다.

라이브는 계속되었다. 연애, 가족, 진로, 인간관계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모두 절실한 사연이었다. 나는 그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해야만 했다. 하지만 내 말은 공허했고, 해답이라기보다는 외운 문장에 가까웠다. 정작 나는 내 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연애에 관한 질문이 나왔을 때는 더욱 힘겨웠다. 한 시청자가 연인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며, 진심을 나누는 방법을 물었다. 나는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고 했고, 솔직한 감정 표현의 중요성과 배려를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도윤과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했고, 불안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도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괜찮은 얼굴만 보여주려 애썼고, 그 탓에 관계는 점점 공허해졌다. 애정이 아니라 체면으로 지탱되는 관계의 허상 속에 우리는 갇혀 있었다.

방송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밝은 미소와 함께 방송이 종료되었다. 화면이 꺼지자, 카페의 소음이 다시 귀를 채웠다. 나는 천천히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셨다. 입안에 퍼지는 쓴맛이 지금 내 기분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방금 나는 한 시간 동안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진실은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결국, 아름다운 거짓말을 원하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오늘 하루를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오전에는 회사에서 완벽한 직장인으로, 오후에는 감정 관리 전문가로, 그리고 방금까지는 온라인 속 힐링 멘토로 연기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서로 다른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낸 셈이었다. 그런데 문득, 진짜 '나'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노을빛이 건물 틈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조차 나는 무감각했다. 스마트폰을 켰다. 조금 전 라이브 방송에 대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었다. 댓글과 메시지가 줄을 이었고, 대부분은 고마움과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반응을 보면 볼수록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늘 밝고 긍정적이어야 했고, 어떤 어려움도 웃음으로 넘겨야 했으며, 남들의 문제에는 정확한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점점 숨 막히게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조용한 원룸이 나를 맞이했다. 비로소 아무도 없는 이 공간에서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어깨는 툭하고 떨어졌고, 얼굴에서는 억지웃음이 스르르 사라졌다. 거울 앞에 서자 피로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얼굴이 비쳤다. 이것이 진짜 내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 얼굴을, 이 감정을,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었다.

화장을 지우며 오늘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강연장에서 했던 말, 라이브 방송에서 했던 조언들 모두가 하나같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정작 나조차 믿지 못하는 말들을, 나는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씁쓸하게 만들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떨까. 나처럼 매일 연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면, 진짜 나만 이상한 걸까. 혹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진짜로 행복하고 긍정적인 걸까. 나만 가짜인 걸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리 없었다.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무표정한 사람들, 회사에서 마주친 동료들, 강연장에 앉아 있던 청중들, 그리고 내 방송을 보던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어쩌면 나처럼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 연기가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을 뿐일지도 모른다.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 내가 쏟아낸 말 중 과연 진심에서 나온 말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한 말들은 대부분 상황에 맞춘 문장이었다. 누군가가 듣고 싶어 할 법한 말, 그 자리에 어울릴 말, 내가 지닌 이미지에 부합하는 말뿐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어떤 제약도 없고, 누구도 듣지 않으며, 아무런 결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진심을 감추며 살아온 탓에, 이제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스마트폰으로 도윤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강연은 잘 마쳤는지, 힘들지는 않았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메시지를 바라보며 잠시 멈칫했다. 정말로 힘들었다고, 오늘 하루가 모두 거짓말 같았다고, 이제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도윤이 걱정할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나약하게 보일까 봐 두려웠다.

결국 나는 평소처럼 답장했다. 강연은 잘 끝났고, 사람들의 반응도 좋아서 뿌듯했다고,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고. 또 하나의 거짓말이었다.

곧 도윤의 답장이 도착했다. ‘역시 이현이다’, ‘늘 긍정적이라 보기 좋다’, ‘자신도 그런 마음을 배우고 싶다.’

그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도윤조차 나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보여주지 않았다. 언제나 괜찮은 모습, 완벽한 모습, 강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써왔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도윤은 어떨까. 그도 나에게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이상적인 모습만을 내보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서로가 만들어낸 '이상형'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진짜 사랑은, 진짜 자신을 내보일 수 있을 때 가능한 건데······ 우리가 하는 건 과연 사랑일까.

나는 천천히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진실을 말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버렸고, 거짓을 계속하기엔 이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진실을 꺼내는 순간,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기대도,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도, 도윤과의 관계마저도. 그 모든 것이, 거짓으로 유지된 현실이었다.

새벽 두 시를 넘겼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웃느라 굳어진 얼굴 근육이 욱신거렸다. 입꼬리엔 작은 경련이 느껴졌다. 너무 많이 웃었다. 아니, 웃는 척을 했다. 내 몸은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을 구별하고 있었다. 진짜 웃음은 온몸이 따뜻해지지만, 오늘 하루 내 웃음은 내내 차갑게만 움직였다.

천장에 난 작은 균열을 멍하니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삶을 되짚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기 시작한 걸까. 언제부터 ‘진짜 나’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다 보니,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항상 밝고 재미있는 아이여야 했고, 선생님들에게 사랑받으려면 모범적이고 긍정적인 학생이 되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연기를 배워가기 시작했다. 화가 나도 웃었고, 슬퍼도 괜찮다고 말했으며, 힘들어도 멀쩡한 척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더 좋아하고, 더 칭찬하며,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진짜 감정을 드러낼 때보다, 만들어낸 표정과 말투로 대할 때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27분. 또 한 시간 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이런 밤이 잦았다. 낮에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느라 긴장하고, 밤이 되면 그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진짜 내가 드러날까 봐, 어느 순간 가면이 벗겨질까 봐 나는 늘 경계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메이크업을 지운 민낯이 거울 속에 비쳤다. 거기에 있는 얼굴이, 진짜 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도윤에게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이 얼굴을 내보일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서 마셨다. 한 모금 넘기고 나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들이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저 수많은 불빛 너머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중에서 나처럼 진짜 모습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상상해 본다. 만약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가면을 벗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모두가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까. 아니면 오히려 조금은 더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우리는 진짜 모습을 본 뒤에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감추는 데 익숙했고, 타인의 가면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진짜 모습은 너무 생경하고, 너무 불편하며, 때로는 위험했다. 그래서 모두가 서로의 가면을 보며 안심하는 삶을 택한 것 같았다.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베개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 같은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 샤워를 하고, 화장하고,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할 것이다. 그리고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 또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회사에서는 성실한 직장인으로, 후배들 앞에서는 밝은 선배로, 사람들 앞에서는 긍정적인 멘토로, 도윤 앞에서는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로. 나는 모든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수행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또 이렇게 혼자 진짜 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가면을 쓰고 하루를 견뎌야 할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아니면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가면이 결국 내 얼굴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런데 꿈속에서도 나는 웃고 있었다. 끝없이 웃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서인지도 모른 채, 왜 웃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습관처럼, 기계처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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