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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주문의 유리함

모자라도 넘쳐도 안 되는 물량조절

by 강현숙


경매사와 대판 싸우고 난 다음부터 주변 상인들은 누가 나서서 내게 불편한 기색을 직접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 뒤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잘못 건드리면 시끄러워- 라며 쑥덕거리기는 하는 것 같은데 내 앞에서는 웃으며 인사를 하거나 눈인사라도 하면서 지나갔다.


새로 생긴 웅덩이이라고 웅덩이구실을 못하리라 생각했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제스처였는지도 모르겠다.

야채부류에서 담당했던 해초류를 처음 수산부류에서 판매하겠다고 법인이 판매자를 구하려고 할 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가게에서 찾아오는 손님으로 충분한 유지가 된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고 황무지 개간 같은 그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일을 개척해 소득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사촌이 땅을 산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 가게에 손님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려 했고, 해초류를 경쟁상인에게서 구해다 팔면서 내 장사에 어느 정도라도 타격을 주려했다.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나의 주력품목에 대한 깊은 상식을 갖추고 최상의 품질로 합리적인 가격을 맞추는 전략이 필요했다.


물건이 좋으면 구매자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좋다고 느끼면 가격은 조금 비싼 것 정도는 문제 삼지 않는다. 해초류 판매 단위는 1관씩이었고, 도매가는 상품과 중품의 차이가 1관에 500 원에서 1000 원 정도이다. 그 정도 금액은 소매하면서 충분히 마진율 조정이 가능하니 팔다가 상태 안 좋아 버리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구매자들은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팔기 위해 받는 물건도 좋아야 했다. 싼 물건을 시키지 않았다. 좋은 거,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으로 원하는 값 다 주고 물건을 받아 팔았다. 조금이라도 더 싱싱하고 깨끗한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 산지를 찾아다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품목별로 저장 환경과 최적의 환경에서 며칠씩 선도를 유지하는지도 파악했다. 해초류에 대해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명실상부한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 없이했다.


그렇게 확보한 물건도 팔다가 남아 조금이라도 선도가 떨어지면 모두 갖다 버렸다. 그 결과로 우리 물건은 하자가 안 난다는 소문이 소문을 타며 수고한 보람은 곧바로 나타났다.


소개가 이어졌다. 새로 온 손님들은 처음엔 조금 비싸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두 번 팔아보고서는 가격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싸게 준다는 문자를 받고 경쟁상인에게서 한두 번 사갔던 상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게로 다시 왔다. 그들은 믿어도 좋을 찐 단골손님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 거래처 대부분 사장님들은 그거 얼마요?라고 묻지 않는다. 물건도 보지 않는다. 대신 -그거 몇 개, 저거 몇 개 주세요-라고 한다. 그리고 계산서를 보내면 이의가 없다. 내 물건에 대한 가격을 인정해 준다는 말이다. 손님마다 특성까지 파악해서 원하는 물건을 알아서 챙겨주니 무조건 날 믿어주는 상태가 된 것이다. 심지어 새벽에 좀 늦게 오시는 분들이 물건이 매진되어 가져가지 못한 상황이 한두 번 반복되니 전날 오후부터 다음날 필요량을 주문했다. 지금도 새벽 2시면 그날 장사의 윤곽을 모두 파악할 수가 있다.


거래처에서 미리 주문을 해주면 물량 맞추기가 훨씬 쉬워진다. 선도를 다투는 생물판매에서 가장 좋은 건 준비한 물량과 팔릴 물량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지만 그러기는 신이 아닌 이상 쉽지 않다. 부족하거나 남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남는 것은 버려져 손해를 발생시키고 모자라는 것은 고객을 단골로 유지하는데 치명적일 수가 있다. 고객이 원할 때 언제라도 원하는 물건을 차질 없이 공급해 주어야 나를 믿고 계속 거래를 해주는 것이기에 그렇다.




나의 손해를 줄이고 고객이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전략의 하나가 물량조절이다. 그리 중요한 물량조절을 위해 조절가능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팔린 양을 예상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신의 한 수를 흉내내기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선주문을 받으면 유리한 것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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