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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가 생겼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by 강현숙

황무지를 초원으로 일구어내려면 물과 바람 햇볕이 딱 맞게 내려주어야 하듯 장사를 하는데 성공의 지름길이 되어주는 한 요소가 조력자의 유무일 것이다. 그 조력자는 잘하고, 열심히 하고, 성실할 때 생긴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소개를 해주거나 물건을 구매했을 때 -그 집 물건사서 밑졌어- 라거나 -뭐 그런 집을 소개해주고 그래-라는 말이 나오거나, 또는 자신이 샀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는 소개해주고 싶지도, 사고 싶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런 상인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아는 한분은 연간매출 100 억에 달하는 분이다. 그 위치까지 자수성가로 이루어오신 분이라 주변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그분을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처음 그분을 만난 건 그분의 구매담당자를 통해 내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자가 나서 모두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였다. 당장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 일을 마치고 많이 피곤하고 마무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 상태였지만 두말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갔다. 사무실에는 담당자 외에도 현장 실무진들이 모여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몰려와 나는 주눅이 들었다. 첫 대면이었지만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떻게 책임질 거요? 17개의 매장 전체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물건을 보냈기에 이런 일이 생겼다 말이요?"

"ㅠㅠ "

"어떻게 일구어온 사업인데 이깟 물미역 따위로 내 사업에 오점을 남긴단 말이요?" 하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안 일지만 그분은 항상 최고 좋은 물건만 구매한다 하셨다. 결재도 정해진 날짜에 정확히 하셨다. 단, 물건에 하자 나는 것은 참지 못하신다고 했다. 장사꾼에게 많이 팔고 결재가 정확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내 물건도 그분의 17개 매장에 당시 내 하루매출 절반이 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거래를 유지해야 했다.


그분의 매장에 거래를 하게 된 것도 우연히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새벽마다 변함없이 같은 시간에 나와 시장 곳곳을 돌며 누가 받아주든 말든 명함을 돌리고 다니는 나를 지켜보다가 어느 날 구매담당 에게 해초류는 내게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이기적으로 보여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도와주려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에 거래를 시작했다면 한마디로 모든 거래가 끊길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제 탓이 아니에요. 출하주로부터 그런 물건이 온 거예요. 분명 좋은 거 보내라고 했거든요. 제가 박스마다 모두 열어볼 수는 없잖아요? 새벽까지 분명 아무렇지도 않았다고요. 생물인데 하다 보면 하자가 날 수도 있지요.-라는 말들이 자꾸만 자꾸만 튀어나오려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완전 죄인취급하는 그분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장사는 간쓸개 다 빼버려야 할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며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꼼꼼하게 확인하고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 당장 거래가 끊긴다 해도 나는 마지막까지 거래를 유지하고 싶다는 태도를 보였다.


사실 생물 해초류는 산지에서 작업할 때 짙은 안개가 끼거나 이슬비라도 오면 거의 하자가 발생한다. 그날 새벽에 원산지인 서산 쪽에 안개가 많았었다. 하자날 확률을 계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취급하는 품목의 정확한 생태도 모른 체 막무가내로 열심히만 하던 때였다. 무식이 용감이라 장사꾼은 무조건 물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나는 몰랐지만 사실 그분은 그런 날에 하자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이미 나보다 10여 년은 먼저 취급했던 물건인데 모를 리가 없었다. 그날, 나를 그렇게 몰아친 것은 태도를 보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아서 내 장사에 도움 되라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배울 용기가 있었고 고객에게 끼친 손해를 책임질 배포도 있었음을 그분은 보았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날은 하자가 날 확률이 있다는 것을 미리 고지하고 거래처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하자가 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면 매출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남아서 버리더라도 손님들을 황당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내진심을 손님들은 알아주셨다. 그 후 손님들은 물건을 직접 보지 않고도 내가 괜찮다 하면 믿고 구매해 간다.


그날, 먹고사는 일이 참 힘들다 는 생각을 하며 속상하게 했던 그분은 지금도 내 1등 거래처이며 그분이 소개해준 몇몇 거래처가 모두 내 매출의 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신제품을 가져와 소개를 하고 샘플을 보내면 일단 큰 매장에 보내어 팔도록 한다. 재매출이 일어날지 말지는 차후의 일이다.

어느 순간 품목을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믿는 구석이 있어 힘 있게 추진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느낌, 그래서 겁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10년 동안 사업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있었고 그 분과 같은 또 다른 분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안다. 지치고 힘들고 막막해 주저앉고 싶을 때, 잘하고, 열심히 하고, 성실할 때 조력자는 생겨난다는 것을 상기하면 박차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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