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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가 망할 징조들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났다

by 강현숙

웅덩이이든 연못이든 심지어 바다일지라도 물이 더러워지면 개구리도 물고기도 떠나게 된다.

그처럼 손님도 떠나는 때가 있다. 그때는 바로 주인이 게을러지거나 적당히즘이 난무하거나 -나 아니면 물건 못 살걸-이라는 자만심이 자라날 때이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무엇이든 다 해내고 손님이 원하는 것도 무조건 다 들어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어느 날 교만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먹고살만하니 순수함이 사라지고 적당히 손님을 걸러내려는 건방진 마음이 생겨났다. 장사를 말아먹을 징조가 시작된 것이다.


장사를 시작하고 5년쯤 되었을 때였다. 한 거래처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건을 수집하다 보면 경쟁상인보다 싸게 받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비싸게 받는 것도 있다. 경쟁상인의 싸게 받은 물건이 비싼 내 물건보다 나쁘지 않을 때 상황은 최악이 되기도 한다. 그때가 그랬다. 난 최고 좋은 것으로 제값다주면서 물건을 구비했다 생각했는데 경쟁상인의 저렴한 물건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때 양다리를 걸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까 소위 양다리라는 것은 내쪽에 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하고 또 상대편의 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한다는 것이다. 입장 바꾸어 생각한다면 나라도 충분히 그럴 것이다. 이때는 얼른 대책을 세워 적어도 같은 물건이면 같은 가격에 팔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어느 정도 장사가 궤도에 올랐다 생각한 나는 기분 나쁘다는 생각만 했다. 급기야 내 물건의 싼 것도 주지 않겠다고 말해버렸다. 그야말로 한 개도 간신히 먹던 라면을 두 개씩 먹어도 되는 상황이라고 배가 부르다고 느꼈던 것이다. 좀 더 열심히 해서 쌀밥에 고기반찬 먹으며 살리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 손님은 나와는 거래가 완전히 끊어졌고 경쟁상인에게서 모든 물건을 구매해 가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몇몇 손님들도 가격만 차이가 나는 내 물건에 가볍게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이때도 귀 기울이지 않고 무시했다. 확인도 하지 않고 싸고 좋은 물건이 어딨 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불만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해 주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때는 내가 전문가이니 나를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다. 이때도 몇 분이 떠나버렸다. 대부분 손님들은 기분 나쁘면 말없이 떠나버린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너무 힘들어서 몇 분만 다른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떠들었다. 손님들은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저것이 배때지가 불렀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한가해지는 날이 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물랑이 많고 수금이 잘되는 곳만 신경 쓰고 별거 아니라 생각되던 몇 곳에서 주문이 오면 귀찮아했다. 그 귀찮은 마음은 어떻게든 상대편에게 전달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6천 원짜리 1박스만 달라는 손님이 귀찮아서 없다고 했다. 다음날 또 전화가 왔다. 6천 원짜리를 7천 원이라고 했다. 1박스 파는 게 귀찮으니 사려면 천 원을 더 주고 싫으면 다른 곳에서 사라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손님은 바로 알아차렸다. 다른 곳으로 갔다. 그렇게 또 몇 분의 손님을 보내고 나니 나에게 들리지 않는 소문이 돌았던 것 같다. 어느 날 놓치고 싶지 않았던 손님도 떠났다.


힘들어, 너무 바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네 하며 불평했던 말들이 쏙 들어갔다. 일이 줄어버리니 힘들 것도 없었고 너무 바쁠 일도 없으니 화장실 갈 시간은 넉넉했고 커피 마시며 노닥거릴 시간이 늘어나고 심지어 근무 중에 잠잘 시간까지 생겼다. 물론 매출은 뚝 떨어졌고 수입은 더욱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안 팔려서 남는 재고물량을 하루씩 묵혔다가 팔기까지 했다. 손님들은 물건이 안 좋다 했고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깜짝 놀라 후회를 했지만 다시 뒤돌리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거래했던 손님의 차량에 경쟁상인의 물건이 실릴 때마다 속이 쓰리고 아팠다. 이제라도 내 잘못을 인정하고 유지하고 있는 손님들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그나마 기회는 또 찾아올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다만 실수했다는 것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그간의 노력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한다면 잠시 느꼈던 이전의 만족함을 다시 느낄 수 있으리라. 하늘은 사람을 키울 때 어려움을 주고 견뎌내는지 주저앉고 마는지 시험을 해보고 견디지 못하면 보다 밑바닥 인생으로 살게 하고 견뎌내면 한층 더 큰사람으로 키워낸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때의 시련을 비록 내가 저질러서 겪은 것이었지만 하늘이 나를 키우기 위해 내려준 시험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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