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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되다

비수기라는 의미의 전환

by 강현숙

장사에 있어서 생각만 바꾸면 비수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소위 성수기라고 말하는 시기에는 그 자체로 바쁘고 매출이 많기 때문에 다른 상품이나 거래처를 확장할 여유가 없다. 그러다 시즌이 끝나면 밀려오는 공허함에 힘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비수기를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비수기를 비수기라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선택한 해초류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극명하게 갈라진다. 소비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성수기, 비수기가 나뉘는 게 아니고 계절에 따라 아예 물건을 생산하던가 생산자체가 되지 않던가 하기 때문이다. 10 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생산되는 해초류는 그나마도 극성수기는 3개월에 지나지 않는다. 극성수기 앞뒤로 준비와 마무리하는 시간을 더한다 해도 1년 중 7개월은 손 놓고 있어야 한다. 처음엔 나도 황당했다. 5개월 일하고 7개월을 놀아야 한다니 그러고도 먹고살 거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가 않았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결국 시작은 했는데 7월에 개업하고 10 월까지 가게를 비워두고 있을 수가 없어서 생선을 팔았다. 그런데 생선도 역시 10 월까지는 비수기라고 했다. 그래도 아주 없는 해초류보다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먹지는 않아도 간간히 사러 오기에 알뜰하게만 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만큼 판다. 그러나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것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다. 굶어 죽지 않는 방법은 여러 가지로 있을 테니까 말이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 주변의 남들이 하는 것은 모두 돈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것도 따라 해 보고 저것도 따라 해 본다. 내가 그랬다. 해초류 장사를 한다고 개업을 하고서 아직 철이 안되어 팔 것이 없자 남들 파는 생선을 팔아보았다. 또 생선을 팔다 보니 이웃한 가게의 어패류가 잘 팔리는 것처럼 보여 다시 어패류를 추가했다. 그러다 해초류의 철이 되어 불과 3개월 만에 해초류, 생선류, 어패류까지 일만 잔뜩 벌려 놓은 것이다. 그것도 해초류는 새벽에 팔고 생선과 어패류는 낮에 팔아야 했으므로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잘 때 잠을 자는 기본적인 것조차도 포기하고 살아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된 피로는 어느 것도 전문가가 되지 못하여 해초류 장사도 흐지부지, 생선장사도 흐지부지, 어패류는 파는 것보다 아예 버리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생선 팔면서 조개도 팔고, 생선과 조개 팔면서 해초류도 팔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3년을 버티었다. 그런데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이왕이면 전문가에게서 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해초류를 전문으로 해보겠다고 와서는 내 품목의 전문성을 키우기보다는 남들 하는 거 좋아 보여 따라 하기 바빴음을 3년이 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것도 저것도 원하는 만큼 되지 않은 상황에 스트레스는 극을 치닫고 있었다. 3년 차가 끝날 때까지도 미리 싼 물건 사놓았다가 제철이 되었을 때 팔면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물건은 손님들이 찾을 때 구해서 팔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내가 구한 물건은 비싸고 제때 공급도 안되었다. 손님층은 다른 곳에 품절되어 구하지 못하거나 다른 곳 어디에서 파는지를 모르는 사람들만 와서는 소량으로만 사갔다. 그러니 돈이 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3년 차 해초류 성수기가 끝나고 좀 쉬고 오겠다고 떠났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냉동매생이 저장 좀 할까? 지금 사면 저장비 빼준다는데 " 그 말에 나는 '이 양반이 또 어딜 가서 돈 쓸 일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에 짜증을 내며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팔리려면 아직 7개월이나 남은 물건을 목돈 주고 구해다 창고에 쌓아놓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호통을 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돌아온 남편은 산지에 갔다가 매생이 생산자를 만났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그해 우리가 판 매생이의 절반가격밖에 안 하더라는 것이다. "물건이 다르겠지"하며 남편의 입을 막아놓고는 그래도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이 되어 유통업자에게 받아서 박스당 10프로도 안 되는 마진만 보고 팔았었는데 우리가 받는 가격의 절반이면 잘하면 50프로의 마진도 챙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 한번 해보고 싶어졌다.


큰 마음먹고 시간을 내어 남편을 따라 매생이 산지로 갔다. 남편이 만났다는 사람은 젊은 생산자였다. 그가 보여준 저장 매생이는 낱개 포장이 되어있고 무게도 평균적인 매생이 무게보다 더 나 갔다. 가격이 싸고 좋은 물건이 그곳에 있었다. 그해 가을에 팔 만큼을 주문해 선불을 주고 영업용 차로 올려달라는 미친 짓을 하고 말았다. 가을이 되어 생굴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굴이 나올 때부터 매생이의 판매가 시작된다. 그해 냉동매생이 시세는 전년도 보다 비쌌다. 저장된 양이 많지 않은 것이 이유라고 했다. 안 그래도 싸게 산 매생이가 가격이 더 올라 버렸으니 마진이 좋은 것은 당연했다. 예상했던 50프로는 아니었지만 비싸다는 소리 한번 듣지 않고 만족할만한 수입을 얻으며 저장했던 물량을 다 팔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해초류 시즌이 되어 정신없이 장사를 하고 다시 봄이 되었다.

곳곳에서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날렸다. 작년의 그 미친 짓을 또 하려고 마음은 이미 들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취급하는 품목들 전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5월 첫 주부터 남편과 함께 바닷가를 여행하며 각 품목별로 생산지를 찾아가 생산자들을 만났다. 해초류마다의 특성들을 공부하고 저장된 해초류들을 수소문했다. 저장제품의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돌아다닌 보람은 있어서 여름에 팔 수 있는 염장제품들도 찾을 수 있었다. 한여름에는 김장철을 대비하여 김장부재료인 청각을 말리느라 어민들이 분주했다. 건청각도 해마다 유통업자를 통해 1톤씩이나 팔았었는데 산지에서 바로 사놓으니 훨씬 싼값에 살 수 있었다. 저장비용과 관리 때문에 신경 쓰던 생산자들은 저장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갖가지 부대비용을 빼주면서라도 미리 팔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점점 똑같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겨울장사가 끝나면 팔 것이 없어 밤낮을 매달리며 되지도 않는 생선과 조개를 판다고 생고생을 하던 시간들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그 시간에 좋은 물건 찾아 성수기를 대비하고 쉬면서 체력도 단련하는 일은 성수기 장사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새벽에만 장사하는 해초류 전문가로만 살아도 그 이상의 수입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수기는 장사가 안되어 돈이 벌어지지 않는 시기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내게 어느 때부터 비수기는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시기, 성수기의 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비수기를 활용해 내가 팔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고 싸게 사는 방법을 알아내며 나는 서서히 해초류의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해초류의 5대(그 분야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인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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