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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의 기생충 '관념'

인간 탐구 도감

by 이롬 Mar 28. 2025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재편집이미지 출처 : PINTEREST 재편집


  ‘관념’은 개인의 경험, 교육, 문화적 배경에 따라 형성되며,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거나 진화하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게 ‘관념’이 형성되는 모습은 마치 뇌의 풍경 속에서 기생충이 고요하게 자리 잡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미약한 속삭임처럼 들려오지만, 그들은 점차 뇌의 구석구석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점차 그들은 신경망의 복잡한 길을 타고 뻗어 나가면서, 다른 생각들과 연결되고 결합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때로는 희미한 직감으로, 때로는 명확한 신념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숙주의 기억, 감정, 욕망과 판단에 스며듭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의 사고를 형성하는 토양이 되고, 어느 순간 우리는 그 관념들이 만들어 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관념들은 숙주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생충처럼 우리의 사고와 의지와 감정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개개인의 ‘관념’들은 더 나아가 하나의 체계적 신념이나 세계관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데올로기’는 개인이나 집단이 세상을 바라보는 특정한 방식이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을 미칩니다.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특성상,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갈등과 집단주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도 없이 많은 갈등과 전쟁 속에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에 따르면 기록된 3,421년의 역사 중 평화로운 시기는 268년, 즉 7.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구조는 인간이 가진 본성의 필연적 결과로 보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 ‘편파성’, ’ 집단편향’과 같은 ‘관념’들을 장착하고 있으며, ’ 맹목적 집단주의’로 빠질 위험을 내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관념’이 집단 내에서 어떻게 강화되고 확대되며 사회적 충돌을 일으키는지 메커니즘을 성찰하고자 합니다.


기생충Ⅰ. 소속감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은 협력관계를 이룸으로써 우리 종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왔습니다. 무리를 이루고 어딘가 소속되어 있을 때 외부로부터 보호를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소속감’이라는 관념은 마치 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천창 너머로 보이는 다락방처럼 아늑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나를 주변으로 나의 가족, 나의 동네, 나의 일터, 나의 국가가 둘러싸고 안정감을 제공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며 숙주가 자신을 더욱 강하게 신뢰하도록 합니다. 이는 나 자신과 분리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일체화된 감각을 선사합니다. 토드 로즈는 『집단착각』에서 “자기 인식이란 우리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함께 우리가 속한 귀속집단에의 감각이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_92p라고 설명합니다. 


기생충Ⅱ. 편파성

 그러나 ‘소속감’이라는 관념의 기생충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파성’이라는 관념입니다. ‘우리’라는 영역을 확립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들’을 정의하며 경계선을 긋습니다. ‘소속감’이 자라면 외부 집단에 대하여 배척하는 ‘편파성’도 함께 자라나는 부작용을 수반합니다. 인간은 자신과 가까운 집단에게 쉽게 공감하는 반면, 외부 집단에 대해서는 덜 공감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외부 집단에 대한 의식과 배척은 ‘소속감’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속감’은 종종 변이를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연대감에서 출발하지만, 점차 집단의 이익을 절대화하는 형태로 진화하며 강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소속감은 ‘광신’이라는 새로운 관념으로 변이 하며, 숙주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집단 전체주의’의 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기생충Ⅲ. 특권 편향

 집단 전체주의가 가능했던 또 다른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가 바로 특권 편향입니다.  ‘특권편향’이라는 관념의 기생충은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숙주에게 손쉽게 길을 제시합니다. 권위 있는 목소리, 화려한 외양, 높은 지위와 같은 요소들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도록 숙주를 조종합니다. 마치 빛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처럼, 숙주는 권위자의 말에 의문 없이 복종하며 자신의 판단력을 서서히 잃어갑니다. ‘특권편향’ 역시 변이의 가능성을 지닙니다. 상황에 따라 합리적 신뢰의 형태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극단적 상황에서는 도덕적 판단마저 흐리게 하며 독재적 구조에 복무하는 모습으로 변모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권편향은 ‘복종’이라는 또 다른 기생관념과 결합하여, 숙주가 불합리한 명령에도 망설임 없이 따르도록 만듭니다. 

 스탠리 밀그램 실험(1960)은 이러한 복종 심리를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참가자들은 상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역할의 피험자에게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점점 강한 전기 충격을 가하도록 유도되었습니다. 그 결과, 참가자의 65%가 고통스러워하는 참가자의 모습에도 마지막 450 볼트 단계까지 처벌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윤리적, 도덕적 규칙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생충Ⅳ. 맹목적인 집단주의

 ‘소속감’과 ‘특권편향’이 합쳐질 때 ‘맹목적 집단주의’라는 괴물이 탄생합니다. 이 괴물은 숙주의 자아를 집단의 정체성에 완전히 종속시키며, 그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와 개인적 윤리는 서서히 마비됩니다. 자신의 집단에 의한 충성심은 점차 광신으로 변하고 외부의 관념을 가진 존재들은 배척의 대상이자 공격해야 할 적이 됩니다. 토드 로즈는 경각심을 잃은 집단이 얼마나 쉽게 맹목적인 숭배에 빠질 수 있는지 지적합니다. 

“자신의 부족에 순응하는 것이 자기 인식과 불과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 이런 종류의 정체성의 덫에 걸리고 나면 우리는 ‘우리와 다른’ 자들과 경계선을 긋고 그들을 배제하기 위한 이유를 찾아 나선다.“(토드 로즈 『집단착각』_116~117p)

 이러한 심리는 특정 이념에 몰입하는 과정을 거쳐 더욱 강화되며, 논리적 비판이나 합리적 사고보다 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신념이라는 이름의 기생충에 완전히 잠식된 인간들은 사실의 검증도, 윤리적 성찰도 없이 집단의 광기에 휩쓸립니다.


기생충 길들이기.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자각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과 ‘편파성’을 지니며, 권위에 따르며, 집단 정체성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가 ‘맹목적인 집단주의’로 이어질 때, 사회는 폭력과 극단으로 치닫는 위험성을 안게 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논리를 보편적인 진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은 태어난 환경과 소속된 집단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척과 적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기생충들의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 숙주는 저항할 힘을 얻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관념’이 자신의 사고를 어떻게 조종하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기생충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관념들이 공존하는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킬 때, 단일 종의 독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토드 로즈는 이런 집단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집단에 속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의 복잡도를 높이면 정체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토드 로즈 『집단착각』_240p) 

 다양한 환경에 노출시킴으로써 사회적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단일 집단 내 흑백 논리의 저주에 빠지지 않는 길입니다. 단일화된 사고방식에 갇히지 않고 다각적인 시각을 통해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면 비판적 자각과 자문을 할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집니다. 다양한 관념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인간의 인식과 사고에 더 큰 유연성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더 넓은 시각과 깊은 이해는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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