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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파도를 타는 법

인간 탐구 도감

by 이롬 Mar 22. 2025
Schrödinger's catSchrödinger's cat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가 열리기 전까지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의 확률적 상황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고실험입니다. 일상적 논리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삶도 이러한 측면이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 끼어 꼼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선택의 순간 앞에서 양가적인 감정을 경험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질서와 구조를 부여하여 확실한 상황으로 나아가려고 하면서도, 선택으로 인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쉽게 결정짓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국에는 이 양가적인 감정의 크기가 같아져, 그 경계에 갇혀버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이 열리기 전의 상자 속에서 끊임없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여러 갈래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현대인의 실존적 선택의 고통>

 사르트르는 인간은 “피투성으로 태어나 기투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정해진 본질이나 목적 없이 태어나(피투)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함(기투)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절대적 자유 아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이를 ‘자유라는 형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분화되고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선택의 기회가 많아졌으며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넘쳐납니다. 급기야는 선택의 자유에 압도당하여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는 ‘결정장애’ 현상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인간이 지닌 실존적 고통에 대한 사르트르의 관점이 극대화되어 표출되고 있는 듯합니다.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켈리는 “무엇을 좋은 삶을 위한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판단력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다시 말해서 다른 행동이 아닌 바로 이 행동을 선택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라고 지적하며, 이러한 경향이 현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여기게 만든다고 합니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숀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38p) 삶의 기준과 방향을 잃은 현대인은 선택의 부담 속에서 방황하며, 이는 곧 무기력과 허무주의로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황의 근저에는 인간이 끊임없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재고와 미래의 예측>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의 98%는 과거와 미래를 위한 사고에 할애한다고 합니다.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각 선택지를 선택했을 때의 미래를 예측하려고 합니다. 이과를 간다면? 문과를 간다면? 지금 다니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면? 모든 소속을 버리고 작가의 길을 간다면? 이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이 지역의 아파트를 산다면? 또한 수많은 선택들의 결과가 합쳐져 만들어진 현재의 상황에서는 과거의 선택에 대해 재고합니다. 재수를 했더라면? 유학을 갔더라면? 다른 회사에 취업했더라면?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이런 미래의 예측들과 과거의 재고 속에서 끊임없이 폭풍 계산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은 선택하지 않은 것을 시뮬레이션해보면서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하여 후회라는 능력을 장착했다’고 설명합니다. 김영하 작가는 『영하의 인생사용법 - 위안』에서 이런 실용적인 해석보다도 다음의 앤드루 H 밀러의 견해에 더욱 주목합니다.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래에 나쁜 결과와 마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전략적 고려보다 우선하고, 살지 않은 삶에 대한 고찰은 그런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찾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앤드루 H 밀러, 『우연한 생』, 29p)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계산 공식이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은 현대인들은 더욱 결정장애에 빠집니다. 현대인은 태어나 자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성찰, 인생의 의미에 대해 진정으로 탐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에 공허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저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앉아 골고루 음식을 먹으며,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배우며, 사회의 규범에 맞게 삶을 수용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삶의 과정 속에서 쏟아지는 선택지들을 삶의 의미에 대한 공식도 모른 채 이 공식에 넣어보고 저 공식에 넣어봅니다. 그렇게 얻은 n개의 답 속에서 우리는 선택을 지연시키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며 심지어 타인에게 결정을 미루기도 합니다. 

Mr. NobodyMr. Nobody

<n개의 선택의 의미>

 2009년 개봉한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의 SF영화 『미스터 노바디』는 이 선택의 순간, 열린 가능성의 순간들을 보여줍니다. 갈림길을 상징하는 기찻길, ‘CHANCE’라는 단어가 쓰여있는 벽을 배경으로 9살의 니모 노바디는 이혼한 엄마를 따라갈 것인지 아빠를 따라갈 것인지의 선택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각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서로 다른 현실들을 만들어내는지를 병행 구조로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인생 중 하나인 2092년의 118살 노인 ‘미스터 노바디’는 유전학 공학으로 불멸의 삶을 살게 된 신인류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입니다. ‘미스터 노바디’라는 이름은 그가 어떤 정체성도 없고 여러 가능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그를 인터뷰하는 기자는 서로 다른 인생들을 회상하듯 이야기하는 그에게 묻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모두 모순이에요. 어떤 게 진짜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삶들이 다 진짜야” 그의 말은 곧 ‘각기 다른 선택들이 결국 각각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치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선택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여러 갈래의 길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인생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슈뢰딩거의 박스 속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택이라는 행위의 의미>

 우리의 인생에서는 수많은 선택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옵니다. 거대한 선택의 파도 속에 있는 나는 ‘자기 자신’을 찾고자 헤매는 ‘미스터 노바디’와도 같습니다. 파도를 타는 법을 모른다면 선택이라는 파도가 두렵고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윈드보트를 가지고 바다로 나가 바람의 흐름을 읽고 파도를 타는 법을 익힌다면, 파도는 마땅히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됩니다. 선택에 따라 도착한 종착지에만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잉태한 파도 자체를 타는 과정 속에서도 인생의 묘미가 존재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가” 이러한 고민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이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탐구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선택의 파도를 타는 법입니다. 선택의 순간 앞에서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잉태하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들에 압도당하기보다 이들을 이용하고 제어할 수 있을 때 현재를 더욱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파도는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고통을 기쁨으로 전환하는 기지를 발휘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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