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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May 17. 2024

어느 날부터 회사에 커피가 떨어진다면 잘 생각하세요

해고 통보 열여덟 번째 날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처음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거나 해고를 당하거나, 혹은 가장 많은 수의 일로 권고사직 권유를 받았을 때 느끼는 건 아마도 분노일 거다.


"데헷~ 노는 걸 들켜버렸네~ 이를 어쩐다~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딱 걸려버렸네!"


하고 말할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과연 몇이나 되려나. 거의 없을 거다.


이제 그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이 불안감, 그리고 우울감일 거고.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될 테고 준비되지 않은 퇴직은 사실 상당한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그나마 나는 (더듬어 생각해 보면 처음이지 싶은데...) 실업급여를 받게 되고, 다행스럽게도 먹보이긴 해도- 사람 아이 셋 만큼 먹지는 않는 세 아이, 그리고 온갖 사치를 세제나 휴지 같은 '생활용품'으로 푸는 내 성질 덕에 실업급여만으로도 충분히 한 달 살이가 가능할 것이 예상되지만, 그마저도 준비하지 못하고 반 강제로 자발적 퇴사 강요 권고사직당한 이들은 정말이지 너무 절망감에 빠져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건 오직 나한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이 사태 전 모든 징조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건 맞다. 마치 엄청난 허리케인이나 폭풍우가 오기 모든 새들이 낮게 날듯, 동물들의 이동이 많아지듯.. 지진 전에 땅이 묘하게 휘어 보인다던가 보이지 않던 건물 벽의 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던가 등의 징조 말이다.


우리 회사는 놀랍게도 간식비 제한도, 식비 제한도 없던 회사였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퇴근 시간이 되면 밥 먹고 가~라는 게 인사인 회사였다. 집에 가면 식사 타임을 놓칠 시간, 어차피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야식을 시키거나 해야 하니 차라리 먹고 퇴근해라 라는 이전 상급자의 배려였다.

간식도 마찬가지로 크게 종류나 금액의 제한을 두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너무 약삭빠르게 한 봉당 3,000원 이상 하는 단백질 과자 시켜주세요 이러는 건 약간의 제재(+눈총)를 가하긴 했지만, 실상 우리 부서만 해도 두 개의 냉장고에 음료를 종류별로 꽉꽉 들여다 놔도 크게 못 하게 하진 않았다. 물론 다른 층에서 근무하는 내부 직원들이 우리 부서 냉장고를 털어갈 것까지도 감안한 것이긴 했지만서도.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간식비에 대한 바운더리가 정해지고 인당 금액이 할당되기 시작했다. 세상 먹는 것 가지고 아끼는 건 너무 궁상 맞고 쪼잔하다라고 말했지만...

누가 결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결정이 내려온 건 사실. 그마저도 중앙 통제가 이루어지면서 모든 층에서 간식은 사라지고 1층 휴게실에 모든 간식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들어오자마자 거의 메뚜기떼에게 털리듯 털려나가고 있지만.


그 뒤로도 점심 먹으러 갈 거면 사무실 전등은 물론, 컴퓨터도 끄고 가라는 공지나 간식이 들어오면 한 번에 가져가지 말라는 공지도 연달아서 올라왔다. 식사 후 백다방과 같은 저가 커피를 법인카드로 마시는 것도 안 된다는 공지도 함께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실 진짜 떨어지면 안 되는 것, 드디어 커피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반 회사들처럼 500ml짜리 페트병 커피가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도저히 아까워서 안 되겠는지, 언젠가 커피 머신이 그 자리를 대신해 차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원두가 떨어진다는 거였다.


사실 내가 몇 달 전 분노한 건 따로 있었는데,

퇴근길에 쓱 쳐다본 1층 휴게실 안에는 개발자 몇이 삼삼오오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대략 퇴근시간 이후 한 시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왜 식사를 안 하시고 컵라면을 드시냐 물었더니 서로 눈치를 살피다 개발자 한 명 왈, 21시까지 근무하지 않고 갈 거라 저녁 식사를 가지 못하고 그나마 누구나 손댈 수 있는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한다는 답변이었다. 그때 시간이 대략 19시 50분. 그러니까 한 시간 10분까지 더 근무하기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21시 전에 가려는데, 그전에 가면 밥을 먹으면 안 되니 야근을 하고서도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한다는 그 말에 나는 뭔가 모를 부아가 치밀었다.


자고로 먹는 거 아끼는 게 제일 쪼잔한 거다. 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커피가 떨어진다면, 그건 커피로 끝나지 않을 거다라는 것도 어쩌면 진실이기도 할테지.





작은 가게들도 사실 매커니즘은 똑같이 돌아간다. 장사가 안 되면 전기료, 가스비 등등 공과금에 대해서 줄일 수 있는 것들을 줄이고 식재료비나 식비에 들어가는 비용들부터 손을 댄다. 그 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그 다음에는 알바생이나 직원들을 자른다. 그렇게 혼자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안 되면 폐업하게 되는 순서.

큰 회사들도 비슷하다.


하지만 작은 구멍가게가 아니라 성장하고자 하는 회사이므로, 볼륨을 키우기 위해 용쓰고 있는 회사이니까 전기세 몇 십만원, 간식비 몇 십만원에 직원들의 목을 조르는 게 맞는 거냐 항변하는 거다. 낭비하는 걸 그냥 두라는 게 아니라, 그저 작은 간식 봉지 하나, 페트병 커피 하나 가지고 반나절은 집중하며 업무하는 직원들의 목까지 조르지 말아달라는 거다.


낭비되는 것을 관리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말 큰 것들을 보았으면 하는 거다.

사람, 별 거 없다. 되게 작은 것들에 감동하고 배려받고 나를 지켜준다고 느끼는 거다. 회사에서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거기에서 자신의 삶의 목표나 보람을 찾으며 내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회사가 적어도 나에게 등을 돌리진 않을 거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역량을 다 해 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회사 운영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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