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심장 May 22. 2024

not handshake but handsholding

해고 통보 스물세 번째 날

원래는 근무 마지막 날 다음 주 금요일에 짜잔- 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내가 가진 포지션 대비 이런저런 업무들을 문어발 식으로 맡아오다 보니 이젠 그 업무들을 인수인계해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왜 갑자기 인수인계가 진행되느냐는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머뭇하다가... 어쩔 수 없이 솔직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급작스러운 '퇴밍아웃을'... 허허...


대부분 놀라워했고 의아해했고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그리고 당연한 절차로 다음 갈 곳을 정했는지를 물었다. 마치 내가 고양이 다섯을 키운다고 했을 때 세트로 넘어오는 질문으로 고양이 좋아하세요? 와 같은 이치다. 이 나이에, 대책도 없이 그러니까 몸 놓일 곳도 없이 무작정 퇴사한다고? 고개를 가로젓는 내 미소에 일부는 아, 하고 반응했고 일부는 대단하다,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 내 나이 40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글쎄, 모르겠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퇴사의 잔혹성과 참혹함에 대해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두 손을 휘저어가며 디테일을 살려 설명할 필요가 있으려나. 굳이 남겨진 그들의 머릿속에서 상상에 상상을 더해 마치 자신이 퇴사 통보를 받는 것처럼 느끼게 하여 파랗게 질리게 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게 하면 나의 원통함과 분함이 풀릴 수 있나.라고 본다면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나대로, 이들은 이들대로 must go on. 이 필요하며 move on. 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디테일한 설명 대신 그저 내가 생각의 결론을 내린 끝에 퇴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단 나의 판단으로 그만두게 된 것임을, 한 두 달 정도는 숨을 돌리며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참이라고 말하며 웃어주었다.


내가 내어 보인 미소가 그들의 불안함에 좀 위로가 되었으려나.

디테일하게는 알지 못해도 어느 정도 기간을 일한 사람들은 지금 회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일정 부분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손꼽히게 오래 이 회사에 머문 내가 그만둔다는 것이 그들의 불안감에 확신을 더해줄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 나의 퇴사가 그들의 불안함에 생명을 불어넣진 않길 바랐다.


내가 억울하고 서글프다 해서 다 같이 억울하고 서글픈 필요는 없다.
나에게 모질고 힘겨운 시간이 왔다고 해도 여기 남은 사람들은 평온하길 바라고 있다.




이야기의 끝에 대부분 밥 한 번 같이 먹어요!라고 말해주는데, 사실 그 말만큼 고마운 말이 또 없다. 내 개인적인 성향도 그리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또 어쩌다 같이 일을 하게 되면 서로 논쟁을 하거나 의견이 엇갈려서 부딪히거나 서운한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마지막 순간에 어~ 잘 가~ 하고 미련 없이 손 흔들기 보단, 그래도 아쉽다는 표정으로 밥 한 번 같이 먹어요, 점심 같이 먹어요 말해주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스쳐가는 인사말일 수도 있는 말에도 나는 감사하고 또 고맙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동료들도, 일 년 넘게 함께 해온 동료들도 나의 손을 흔들어 악수하기보다는 나의 손을 움켜쥐어주는 쪽으로 위로와 격려, 응원을 건네주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내가 회사 생활을 잘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건 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물론 퇴사 시점에 정리해 보는 퍼포먼스나 포트폴리오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이력들도 나의 회사 생활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수단일 순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얻기 힘들고 가치 있는 것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반응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건 내가 상대를 윽박지르거나 강요하거나 당당히 요구한다고 해서 얻어낼 수 있는 종류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직급이 있다고 해서 사원에게 그런 마음을 강요할 수 있는가라고 본다면, 불가능한 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악수를 건네면서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잘 지내시길 바랄게요!라고 인사해 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손을 맞잡으며 가시기 전에 밥 한 끼 같이 먹어요~라고 말해주는 동료에게 더 큰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퇴사 이후 다시 연락이 닿든, 닿지 않든지 간에 지금 이 순간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가장 명확해질 수 있는 건 회사가 늘어놓는 평가보다, 경력 증명서보다.. 나와 함께 한 동료들의 반응이 아닐까.

고마운 사람들. 참 고마운 사람들.

이전 18화 엄마의 이름으로 퇴사 전까지 성실 출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