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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심장 May 27. 2024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다시 근무할 생각이라뇨

해고 통보 스물여덟 번째 날

지난주 금요일 마지막 급여가 들어왔다. 아침에 운전하는데 금액이 앱 알림으로 뜨는데 낯선 금액. 음? 했는데 연차수당이겠거니. 금액은..  한 달 치 급여만큼. 몸부림을 치면서 버틴 보람이 있나 싶었다. (뜻밖의 금융 치료?)


그래도 가까웠던, 그러니까 접점에 있던 분들에게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체적인 인사야 할지, 안 할지 아직 고민이긴 한데... 유난인가? 싶어서 관두려고 하다가도 워낙 회사에 오래 있다 보니(라고는 하지만 고작 3년 차...) 그래도 건너 건너 인사하고 지낸 사람들이 꽤 되고 아주 최근에 들어온 몇 직원들 빼고는 그래도 대부분 아는 얼굴이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긴 하다.


요즘 갑자기 점심과 저녁 사이에 무언가를 주워 먹는 시간이 꽤 많아졌다. 그러니까 평소에 군것질이나 간식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요즘에는 그 중간 시간을 못 견디겠다. 거기에 단 것이 어찌나 당기는지... 인지 못한 채로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 인지했다. 그리고 배도 부르다. 그런데도 1시간을 못 되어서 무언가를 찾아 입에 넣는다. 배가 안 부른 걸 먹고 싶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배도 부르다. 그런 나에게 x-남친은 꽤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마음이 허한 겁니다. 속이 빈 거죠. 그래서 그래요.


나는 그의 말이 맞다고 인정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어쩌다 보니 기획팀에 있는 W 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자세하겐 못 쓴다. 두 가지 이유인데, 너무 자세하게 쓰면 우리 회사인 게 뽀록(!) 날 것도 같고 또 다른 이유는 너무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무슨...

회사 안에서 권력이 머물다가 떠나가는, 그래서 밀려나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그럴 수 있겠다고 그냥 치부하기엔.. 처음 입사 때부터 마지막까지 뭐 하는 건가 싶은 상황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냥 크르릉, 크릉 정도로 끝나면야 그럴 수 있다 싶지만, 실제로 그 사이에서 다치고 퇴사까지 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니 그게 문제였다.


여하튼 이야기 끝에 내가 나가게 되어 아쉽다는 W 팀장에게 일단 쫌 쉬고요- 아우, 고단해. 그리고 기획 쪽으로 좀 경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곳을 천천히 찾아봐야죠. 근간이야 운영이긴 한데, 제가 관심이 있어서 재직자 과정으로 기획을 좀 공부했거든요. 했더니 눈 반짝 +_+

부서이동 생각이 있냐, 묻는 거다. 하...


요는 어차피 자기네 부서에서 기획자를 추가 채용할 건데, 이 사업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알고 히스토리를 꿰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요 직전, 신규 기능 적용에 대해 개발팀, 디자인팀과 함께 기획을 내놓아 진행한 일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기획 팀장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획에 대해 제로 베이스도 아니고 우리 사업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내가 적격이라는 것.

자신이 대표에게 이야기해 볼 테니 부서이동을 통해 일을 같이 할래? 서로 윈윈 아녀?라는 W 팀장에게 나는 찌그러진 웃음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돔황챠... 살랴줘....


그는 내내 아깝다면서, 정말 생각이 있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생각만 있으면 자신이 대표를 설득해 보겠다며. 자신이 진작 알았다면 진짜 빨리 이야기하는 건데 이제 정확한 이유를 알아서 이야기할 틈이 없었으니, 그럼 한 달 정도 쉬고 재입사 생각은 없냐고. 하. 하. 하.



최선을 다 한다. 최선을 다했다 생각할 때 다시 한번 검토하고 부족하면 다시 뛴다.
그래야 정말 그 모든 것들이 끝났을 때 후회를 남기지 않고 미련도 남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것도, 사랑도 그리 해왔고 당연히 일도 그렇게 해왔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아마 재입사하면 장점도 있을 거다. 어차피 내 나이에 본업 베이스를 깔면서 기획일을 배워갈 수 있는 곳은 없을 거다. 일단 내 시장에서 40대 후반의 후배 기획자를 핸들링하려 드는 30대 시니어 기획자는 없을 거고. 일단 나이가 많은 건 죄악이다. 적어도 이 필드에선 아닌 척 하지만(연령 상관없음, 성별 상관없음) 20대, 30대가 아니면 철저히 밀어내려 드는, 그러니까 20대의 젊은 분위기가 복지이자 장점이 되는 이 씬에서 40대 후반의 새로운 도전자는 달갑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이곳에 돌아와 기획을 배우는 건 내겐 꽤 메리트가 될 거다. 물론 돌아오면 직급도, 연봉도 깎이겠지만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사람 애만큼 먹진 않는 애 셋과 티슈, 세제로 쇼핑 스트레스를 푸는 아줌마에겐)


하지만 이미 나는 충분히 검토했다. 우리 회사의 미래에 대해, 수익모델에 대해, 향해가는 방향과 그 방향을 이끌기 위한 임원진들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나를.

나는 이곳에서 길을 잃었고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길을 찾진 못한 것 같다. 지금도 시스템이 받쳐주지 못해 세상 수공업을 하고 있는 회사에 대해 더 이상의 기대나 설렘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린 끝난 사이이다. 마치 헤어지기 직전, 이젠 뒤돌아 앉은 뒷모습도, 삐뚤게 내려놓은 수저도, 비가 오면 뻗쳐대던 머리카락 조차도.. 전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치는 순간들이 이젠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순간들로 돌변한 것 같은 사이.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계속되는 싸움들.


이제 되돌리는 건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이제 그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잡았던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월요일이다. 내일은 마지막 화요일이 될 테고, 모레는 마지막 수요일일 거다. 5, 4, 3...으로 카운트 다운이 들어가는 기분은 설레면서도 또 긴장이 된다.

아니 솔직하자. 설레지도 긴장되지도 않는다. 그냥, 이거고 저거고 빨리 끝내고 그냥 다음날 출근에 대한 긴장감 없이 얼마간은 좀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완전히 지쳤다. tired가 아니라 exhausted인 상태다.


미련도 후회도 없다. 나는 정말 수고했고 정말 열심히 했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굴리면서 지난 시간들을 더듬어봐도 크게 걸리는 건 없다. 그래서 이젠 내 길을 가고 싶다.


H녀 부캐님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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