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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Apr 07. 2024

나의 소울 플레이스, 한강

열네 번째 주, 힐링할 수 있는 공간




나에겐 정말 소중한 공간이 있다. 힐링이 필요할 때면 언제고 찾을 수 있는 곳. 이곳을 처음 만난 지도 벌써 몇십 년이 흘렀건만 한강은 여전히 새롭다.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강변에 자리 한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때의 한강은 아버지랑 캐치볼을 하고, 축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는 곳이었다. 잔디에 앉아 가족들과 도시락을 먹을 땐 방아깨비와 여치가 옆에서 뛰기도 했었고, 지금은 혐오의 아이콘이 돼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비둘기도 엄청 많았다. 편의점과 비교조차 불가한 자그마한 매점엔 없는 거 빼고는 다 있었다. 매점에서 먹을거리를 사면 잔디에 펼칠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양탄자 같은 걸 빌려주기도 했었으니까.








한강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던 건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다. 강 건너에서 넘어온 불빛을 조명 삼아 콘크리트 계단에 앉은 채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만큼이나 마음도 고요해졌다. 공상과 사색을 즐기던 나에게 '밤의 한강'은 완벽한 공간이었다. 가만히 앉아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면, 마구잡이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고 엉뚱한 잡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때 자유롭게 펼쳐낸 생각 덕분에 훗날 꿈을 찾아 헤매던 시간을 조금은 빨리 끝낼 수 있었다. 한강은 나에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을 주었다.








2021년 브런치스토리에 남겼던 사진 에세이, '내가 좋아하는 한강'을 열어보았다. 코로나 때 한강을 뛰고 걸으며 틈틈이 기록했던 사진들 속엔 방역 정책으로 넓은 공간에서조차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벤치에도 앉지 못할 때가 있었으며 심지어 뛸 때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아니 못했다.) 무엇을 먹을 때만 잠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던 당시엔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때 한강이 곁에 있었다. 마치 변치 않는 친구처럼. 원한다면 언제고 만날 수 있었고, 어쭙잖은 어떤 조언도 하지 않았으며 묵묵하게 그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줬던 친구였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한강에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 별일이 없다면 이 시간에 맞춰 한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쪽으로 향한다. 넘어가는 해가 강을 물들일 때, 이 묘한 장면을 보고 있자면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고 있단 생각이 들기도, 들러붙어 있던 걱정이 사라지기도, 잠시 잊고 있던 행복함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굽어진 강길을 따라 느긋하게 걷다 보면 약간의 각도 차이로도 오렌지 빛의 채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붉게 변한 강물에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사라진 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단 걸 알려준다.








어젯밤엔 한강을 달렸다. 봄이 되어 날이 따뜻해진 탓에 한강에 놀러 오는 사람도, 운동하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요즘엔 벚꽃이 마중 나오는 시기라 사진을 찍는 사람까지 더해져 보다 활기가 넘친다. 사람이 없는 한강은 쓸쓸하다. 물론 쓸쓸함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이곳에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한강에 공원이 존재하는 이유가 휴식을 위한 것인 만큼 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지친 마음을 회복했으면 좋겠고 행복 넘치는 미소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강이 나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 힐링이 될 수 있는 '소울 플레이스'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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