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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Jan 17. 2021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

공격, 순응, 고립

  

  “공격, 순응, 고립”이라는 세 단어가 있다. 사람들 태도와 관련 있는 단어다.

  공격, “나아가 적을 친다”, “남을 비난하거나 반대하여 나선다”, “운동 경기나 오락 따위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한다.”

  순응, “환경이나 변화에 적응하여 익숙해지거나 체계, 명령 따위에 적응하여 따른다”, “생물체의 기능, 성질, 상태가 주어진 외부 조건의 지속적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감각 작용이 변화하는 일이다.”, “환경 변화에 따라 유기체의 형태, 구조, 기능이 환경 조건에 가장 알맞은 상태로 변하는 현상이다.”

  고립, “어떤 원인으로 어느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 막히거나 끊어지거나 하여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네이버)




  인간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어떤 순간에 어떻게 발휘하느냐, 다를 뿐이다. 물론 이 세 가지를 모두 뛰어넘어 초월한 태도를 가진 이도 있다.

  나는 어떠한가, 인정한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대표적인 한 가지 모습으로 살다가(대표적인 모습이 나이별로 달랐던 것 같다), 차츰 믹싱 된 태도를 뭉쳐 나만의 태도를 새로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젊은 이들이 말하는 애매한 인간이고 싶진 않았다. 열정이랄까, 정열이랄까, 이런 단어가 멀어지는 건 쇠퇴, 퇴보, 낡아감, 시들어감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 시절을 음미하리라곤 이 또한 상상하지 못한 바다. 중심을 지키며 현재를 살고 싶다. 애써 나를 합리화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카렌 호나이 박사가 주장한 ‘세상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를 알아본다.(이남희, 2016) 카렌 호나이 박사는 사람들이 살면서 반복하는 행동 패턴을 연구했다. 그가 연구한 세 가지 태도 중에서 공격적 태도부터 살펴본다.




  공격적 태도는 “사람들에게 맞서는 태도”다. 공격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세상은 맹수들이 싸우는 전쟁터와 같다. 이들에게는 사람들이 서로 이기려 하고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 그리하여 서로 협력해야 하거나 공감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투쟁해서 이겨야만 계속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속 불안이나 두려움을 잘 드러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안하거나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도리어 큰소리치며 허세 부리거나 (본마음과 달리) 일부러 더 악한 척도 한다. 즉, 공격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무서울 때 무섭다고 말하지 못하고, 힘들 때나 외로울 때, 위로받고 싶을 때도 내색하지 않는다. 자신 속 본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화내는 걸로 대신하고 괜한 트집을 잡아 상대를 공격해 벌린다. 이들은 무언가 자신이 잘못하면 남 탓할 채비부터 하는 사람이라 한다. 무섭게도 이들이 가장 원하는 건 다른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거다. “네 능력은 놀랍구나”, “넌, 능력이 뛰어나구나”와 같은 말을 듣고 싶어 하면 공격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 한다. 능력을 지향했던 나로서는 이러한 태도를 공격적이라기보다 적극적이라고 생각했다. 능동적으로 도전하고 노력하는 걸로 여겼다. 마이클 샌델의 주장도 비슷하다. 그는 능력에 따른 경제적 보상과 지위를 배분해야 하는 매력적인 이유를 말했다. 노력과 선도적 시도, 재능에 보상하는 경제체제는 기여도에 관계없이 똑같이 보상하는 체제나 정해진 사회 지위에 따라 보상하는 정실주의 체제보다 더 생산적일 것이라 말하였다. 오직 각자 능력대로만 보상하는 시스템이 공정성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성취만으로 사람들을 구별할 뿐, 다른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아서 능력위주로 보상하는 사회는 야망이라는 차원에서 매력적이라 하였다. 능력은 학력이나 출신을 배제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우리 운명이 우리 손안에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우리 성공은 우리가 하기 나름이고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라 우리 운명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능력주의(meritocracy)에는 숨겨진 어두운 면도 있다.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 것이다. 전적으로 각자가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으나 개인이 자신이 한 행동을 각자 책임지는 건 바람직하다. 그래서일까, 그 책임감 때문일까, 능력주의자들이  자신을 누르며 가장 억압하고 있는 건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어서일까.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의도를 불신하고 타인을 굴복시켜야만 자신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한국 남자들 대부분 공격적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고 한다. 순응적 태도를 가진 여자들이 이런 남자들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하고 갈등이 생겨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고 한다. 공격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냉혹하고, 타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목적만을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그걸 강하고 정직하고 현실주의적인 태도로 해석한다. 이들은 사랑받기보다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 한다.


  순응적 태도는 “다른 사람을 지향하는 태도”다. 자신을 약한 존재로 여겨 타인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의존하여 살려는 태도다.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태도라고 한다. 순응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주 관심사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다. 그런 반면에 타인의 요구나 반응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겉보기와는 달리 주변 사람들을 은근히 조종한다. 즉, 겉으론 순종하고 희생하는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뜻한 대로 타인을 조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타인의 욕구에 예민하여 타인이 기대하는 것을 미리 추측하고 그에 맞추어 살다가, 자신이 느끼는 진정한 감정을 외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타적이고 순종적이며 지나치리만치 이해심이 많아서 자신의 감정이나 판단은 뒤로 물러놓고 헌신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답받지 못하면 혼돈스러워지고 자신이 희생당했다는 생각에 피해 의식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지나치게 타인을 배려하다가 오히려 비위를 맞추는 꼴이 되어 자신만 손해를 봤다는 생각에 슬퍼하고 속상해한다. 안타깝게도 순응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밖에 모르는) 자기도취적 장애를 가진 이기적인 사람들에게서 정서적 착취를 당하기도 한다. 섭섭한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알아주고 배려해 주리라고 기대하며 ‘꾹꾹’ 참다가, 상대가 자기 이익만 챙기고 사라져 버리면 그제야 충격받고 당했다며 억울해한다. 순응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직접 드러내어(말하여) 요구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내밀하게 조종해서 얻으려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심, 야망, 권력을 지향하는 태도를 의식적으로는 경멸하지만 실제 무의식에서는 동경하고 있다. 이들은 혼자서는 잘 즐기지 못하고 자신은 아무 힘이 없다고 생각하여 타인에게 동조하고 의지한다. 혼자서 잘 다니지 못해 새로운 걸 배우거나 모임을 할 때도 원래 알던 사람들과 무리 지어 같이 간다. 대부분 다른 사람의 결정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보통 아버지, 남편, 아들 순으로 의지할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순응적인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 무력감이 깔려 있다고 한다.


  고립적 태도는 “인간관계를 회피하는 태도. 사람들에게서 물러나 있으려는 태도다.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혼란스럽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 일단 벗어나고 싶어 뒤로 물러난다. 누구에게서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상태가 ‘주된 모습이라면 그건 문제가 된다는구나. 인간관계에서 멀어져 혼자서 지내다 보면 자신에게서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더불어   자신이 누구인지   있다.

‘사람은 혼자일 때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사람 사이에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즉, 다른 사람을 제대로 관찰하고 인간관계를 세밀히 바라볼 때 그 모습이 바로 참다운 자기 자신이다. 인간관계를 등지고 사는 사람들은 다툼, 경쟁, 협력 등에서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하지 않으려고 의도하고 유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여 다른 사람들과 잘 화합하고 잘 지내는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아니다. 속내를 나눌 긴밀한 친구가 하나도 없는 고립된 사람이다. 고립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예약이나 약속을 꺼리고 망설인다. 오래 사용해야 하는 물건 구입도 부담스러워한다. 약속이든, 물건이든, 사람 관계든 그  어떤 것이든 오랜 기간에 걸쳐 무언가에 얽매이는 걸 참을 수 없어한다. 또한 누군가가 충고하면 간섭하지 말라며 반발하고 혼자서도 잘 지낸다고 하며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더 방어하고 저항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성찰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필요 없어.”, “나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하며 이를 증명해 보이려 한다면 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고립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든 소속되는 걸 거부하고 경쟁을 피하며 그냥 혼자서 자족감을 느낀다. 이들은 자신과 타인의 차이에 집착한다. 자신이 유난히 특별하고 뛰어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저절로 알아주길 바란다. 그래서 사랑과 미움, 둘 다 거리를 두고 살기 때문에 그 보상 심리로 지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공격, 순응, 고립”과 관련한 ‘세상을 대하는 세 가지 태도’는 우리(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중에서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가장 많이 표현하는 주된 행동 패턴이 있다. 자신이 인간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때 가장 편한지 느껴보면 그 태도가 바로 자신이 가진 주된 모습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태도만 고수한다면 서로 갈등이 빈번하게 생기고 심리적 장애도 발생할 수 있다.

 

  평상시 한 가지 태도만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순종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혼자서 취미 생활을 할 때, 가령 게임할 때나 편한 친구들과 놀 때 게임 상대나 친구들에게 갑자기 시비를 걸거나 욕을 하는 등 무의식 속에 감춰진 공격성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 있다. 한 가지 태도만을 표출하고 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 내면 속에 억누르고 있던 반대적 태도나 보완하고 싶은 태도가 엉뚱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늘 공격적인 태도만 보여 주는 사람은 자신이 피곤하거나 아플 때 그 상태(감정)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도움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요청하지 못해(자신을 제어하지도, 부탁하지도 못해) 오히려 박치기 이마를 내밀어 버린다. 그리하여 갑자기 시비 걸듯, 이유 없이 타인(부하직원이나 자식 등)을 혼내거나 놀랄 만큼 무섭게 화내버린다. 괜히 윽박지르거나 심한 욕도 일삼는다.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말과 행동으로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까지 불쾌지수를 급상승시킨다.

이처럼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태도 과부하에 걸린 것처럼 난데없는 말을 뱉어 버리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 같은 태도는 (각자 표출 정도와 빈도의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모두 나타내는 모습이다. 그때 그 시절엔 심했을지라도 지금은 순하다고 변명하지 말자, 과거도 자신의 모습이니까. 미비하든 강하든, 어떤 양상으로든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했던 태도가) 또다시 나타나서 갈등을 유발할 테니까.


  해결하자, 해결해 보자.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겠구나!’

  이제 자신의 행동 패턴을 의식하라.(=자신이 바라는 걸 알도록 해 보자.) 자신을 알면 스트레스가 줄고 갈등이 다양하게 발생해도, 그에 따른 문제가 더 이상 불어나지 않도록 대처(행동, 해결)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자. 자신을 존중하면서 타인에게 매너 있게 자신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자.

  그런 후, 자신이 가진 세 가지 태도를 점점,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기 맞춤형으로  상호 보완하자.

  이제, 우리 모두 파이팅하면 되겠구나!!!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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