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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Jun 29. 2020

사분면 위 사람들

P = f(A·M·R)

무모한 도전? 과감한 실천?


내 전공의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하기 위해 도전했었다.


다른 전공인 내가 빅데이터를 베이스로 경영학 공부를 했었다.


처음으로 부딪친 건 약어였다.

‘저게 뭐지. 원래 단어 그대로 말하면 안 되나.’

강의 시간 내내, 강의 시간마다 눈이 동그래져 마음속으로 갈망하며 외쳤었다.

‘약어를 쓰지 말아 주세요.’


<빅데이터의 세계 원리와 응용>, 첫 강의였다.




Fall semester, 첫 강의 날이다

수강생이 많다.
타전공 박사과정에
다른 전공 트랙 MBA에

다행히 연대, 서강대는 수강신청을 막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수강생이 많다.

우리 전공생들만 교수님을 독차지할 줄 알았는데
인기가 대단하구나 싶었다.

그보다도 경영학 약어가 나를 괴롭힌다.
원론 강의지만 난 경영학 전공이 아니다.


처음으로 부딪친...


많은 영약자를 사용하셨다.
‘대부분 경영학 전공생들이구나.’
모르는 약자를 재빠르게 노트에 적으며 으흐 웃음 지었다.
경영학 전공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알고 있을 단어일 텐데 나처럼 타 전공생들은 못 알아듣는 거겠지, 하며 또 한 번 으흐 웃었다.
 introduction인걸 뭐... 애써 태연한 척한다.
syllabus를 다시 꼼꼼히 훑어볼까나.

‘이게 뭐지.’ 여기도.
하지만 교수님께서 친절하셔서 희망을 가져 본다.

현재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challenger이다. 나를 향한 파이팅은 한껏 실천할 수 있는 마법이다.


_첫 강의를 듣고 와서 적었던 메모다. 낙서장은 내 보물 창고였구나!




첫 강의는 수강생이 너무 많았다.

마지막 강의는 경영대학만 들을 수 있어 한눈에 쑥 훑어 몇 명이 셀 수 있을 정도다. 좋다!


인원수에 반비례하여 강의 내용이 흡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느끼고 얻을 것이 많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마지막 강의로구나!




<Leadership Workshop>, 마지막 강의였다.


소그룹 강의여서 교수님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아 강의를 들었다.

그래서인가.

우리의 이해도와 개인적인 심리 상태까지 빨리 파악하셨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빛은 단연 포착하셨고, 그럴 때는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전에 바로 쉽고 자세한 설명을 더 해 주셨다.


그날도 그러했다.

 

느긋한 미소를 지으시고 성직자 같은(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듯한, 선지자 같은) 목소리로 강의하시다가 칠판으로 걸어가신다.


칠판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셨다.

가로로 직선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그러고 나서, 세로로도 직선을 위에서 아래로 쭉 내리셨다.


내게 익숙한 걸 그리시네. 무얼 설명하시려는 걸까.


가로축 직선(x축) 끝에는 commitment라고 적으셨고, 세로축 직선(y축) 끝에는 competency(=competence)라고 적으셨다.


"이런 거 아시죠? 이게 뭐였죠?"

아시는데 물으시는 건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서 물으시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도 대답이 없다.


정적을 깨고 내가 대답한다. "사분면요."


"맞아요, 사분면이군요. 사분면에서 나뉜 네 곳은 네 부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으흐, ’네 부류의 사람’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칠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놀랐을 때 눈을 크게 뜨지 말랬는데, 크게 뜨면 큰 눈이 더 커져서 무섭다며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을 의미한다는 말에 놀라서 크게 뜨고야 말았다.


사분면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신 후에, 우리들이 CEO라면 어떤 사분면의 사람을 고용하겠냐고 물으셨다.


이번에도 나를 처음으로 지목하셨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미 질문은 던져졌다. 어쩔 수 없다. 즉시 떠오르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제4 사분면의 사람요.” 선택한 이유도 연달아 물으셔서 이 또한 준비할 시간 없이 바로 대답해야 했다.


"역량(능력, 실력)은 제가 채우거나 기술로 채우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경영할 회사라면 헌신적인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잘 못하는, 제 체력으로는 할 수 없는, 그런 부족한 걸 채워 줄 사람을 고용할 것 같아요."

난 경영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근무해 본 경험도 없다. 이번 질문은 정말 나중에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에 이어,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K는 제2사분의 사람을 선택했다. K자신은 회사에 헌신적이고 동료와도 잘 지내는 편인데, 자신이 디자인한 걸 상사가 썩 내켜하지 않으며 다시 해 오라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K자신이 업무 실력이 없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매번 좌절하고 난관에 부딪혀서 그 이유로 실력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은행에서 근무하는 J는 제1 사분면의 사람을 선택했다. J가 근무하는 조직은 실력은 물론이고 상사와 동료, 모든 직원 간의 헌신과 관계 형성을 잘해야 직장 생활이 원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분분이 발표했지만 제3 사분면을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력이 없으면서 회사에 헌신하지도 않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는, 제3 사분면의 사람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제3 사분면의 사람은 왜 선택하지 않았는지 잠시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런 후, 제3 사분면의 사람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으며 어느 회사에든 그분들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고 말하셨다. 제3 사분면의 사람은 물론이고 나머지 세 사분면에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사회나 기업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셨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제3 사분면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일지 각자 생각해 보라고도 말하셨다. 우리의 고개가 한 사람씩 숙여지자 칠판에 힌트를 천천히 적으셨다.


사분면 위에 P = f(A·M·R)을 적으셨다. ‘이 함수식은 뭐지?’하며 한눈팔고 있다 보니, 사분면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본질적 공포 -> 건강한 변화의 동기

i.e. 건강한 공포 -> 인정하기


느낌은 오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 모르는 거다.


제3 사분면의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하여 사회나 기업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세세히 또는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짧게든 길게든 분명 설명해 주셨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 당시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사분면 위에 적혀 있던 함수식도 무슨 의미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모든 사람이 필요한 존재라는 건 알겠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건 알겠다.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아쉽게도 힌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마지막 강의도, 마지막 학기도 끝나 버렸다.


이것이 인생인가... 싶다. 흐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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