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외도
글쓰기 외도를 하며 매우 불편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시를 잘 쓰던 시인이 갑자기 감을 잡지 못한 채 다른 장르 글을 쓰며 자신의 매력을 갉아먹듯 말이다. 물론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시도 잘 쓰고 수필이나 소설 등 다른 장르 글까지 잘 쓰는 시인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전자에 해당한다. 글을 잘 쓰다가, 매일 한 편씩 행복하게 글을 잘 쓰다가 욕심을 내었나 보다. 아직은 진짜 글을 더 잘 쓸 수 없는 단계인데, 더 잘 쓰고 싶어서 오만했다. 시간 없이는 쌓이는 건 없다는 걸 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면서 어리석은 판단으로 헤매었다.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며 점점 지나가는 매시간이 너무나 소중한데 말이다.
글쓰기 외도로 글쓰기가 예전보다 퇴보했는데도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도 여전히 하고 있다. 정보는 많이 얻었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건 글이었다. 글 자체였다.
내가 무언가에 홀린 걸까. 브런치에서 글 쓰는 것에 분명 만족하고 있었다. 나무랄 게 없었다. 그런데 왜, 딴 길로 접어들었을까.
같이 공부하고 있는 분들 중에는 보석 같은 분들도 계시지만 막상 수업에 참여해 보니 이 프로그램 일정과 내용, 대충 가르치는 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수업하실 정도면 분명 실력 있는 분이실 텐데 말이다. 내가 아는 지인은 가르치는 분이 참 유명한 분이라고 말했다. 유명한 것과 사람 자체는 연관성이 없는 걸까. 이 프로그램에서는 왜 유명하게 된 경력을 발휘하시지 않는 걸까. 너무 노쇠하셔서 일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 과정을 얼른 마무리하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싶어 서두른다. 빨리 헤어 나오고 싶어서다.
그래도 같이 공부하는 분들은 좋으셔서 그만두고 싶어도 견뎠는지 모르겠다. 가장 피곤한 토요일 오전에 흥이 없는 수업을 들으며 나는 격주로 강의 요약을 했고 그 내용을 공유했다. 강의 요약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무언가를 하면서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이리 빈번히 든 것도 처음이리라. 이리 의욕 없이 흐르는 프로그램도 처음이리라.
내가 이런저런 탓을 하고 있지만 내 탓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내 탓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하나 들라면 초반기에 내가 박차고 나오지 못한 거다. 강의 요약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핑계겠지. 난 왜 떨치지 못하고 이 프로그램에 머물러 있었던 걸까.
잘 모르겠다.
문득 나에게 과찬의 피드백을 해 주신 분들이 생각난다. 내 초고를, 70쪽가량의 초고를 모두 자세히 읽으시고 나도 몰랐던 내 강점을 알게 해 주시고 글을 쓸 욕구를 불러일으켜 주셨던 분들이다. 그분들의 피드백대로 글을 가다듬고 싶었다. 그런데 강의에 치이고 과제에 시간을 뺏기고 거기에다 강의 요약에도 허덕이다 보니 쓰지 못했다. 전혀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돌아와야 한다, 브런치로. 브런치에 돌아와서 글을 써야 한다. 여기에서 내 글을 쓰고 싶다. 글을 성숙시키고 싶다.
“이제 브런치로 돌아오련다.”
이쯤에서도 글을 마무리하지 않고 서성이는 이유는 또 뭘까. 아직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걸까.
누군가 부당함에 저항했을 때 타인들은 대부분 침묵한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그 반항에 따라오는 혜택을 취하기 위해서다. 반면 나를 챙기는 말씀을 전체 톡에 남겨주신 분도 계시고 조율해 주신 분도 계셔서 감사하다. 또 어떤 분은 내가 개척자가 되어 주어 좀 더 섬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하셨다. 또한 공고했던 말과 달리 일부만 검토해 주시는 그런 동감할 수 없는 사항들에 대해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가르치는 분이 이미 원고를 제출한 네 사람 외에는 더 이상 원고를 제출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제 피드백을 해 주지 않겠다고 선포하셨다. 자신은 법적으로 원고를 꼭 검토할 의무는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와 같이 수업을 듣는 특정 선생님을 거론하며 그분께 피드백을 받으라고 하셨다. 이에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표하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이미 예전에 이런 경험을 했던 걸까. 난 처음이다. 강의하시는 분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수업을 하시는 것도, 자신이 해야 할 업무를 수강자에게 하라고 하는 것도. 같이 수업듣는 분들은 이미 이런 부당함에 익숙한 분들인가. 그래서 가르치는 분이 톡에서든 수업에서든 지시하고 강요하는 사항에 아무 리액션 없이 그냥 가만히 듣기만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거둔다.
나는 원래 글을 쓰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였을까. 항상 일기를 쓰며 살았고 뭔가 떠오를 때면 얼른 낙서장에 적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돌보는 글을 썼었다. 그로 인해 마음이 더 편안했고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는 평안함이 생기고 있었다. 바로 내가 글을 쓰는 의미다. 거기에다 나에게서 타인으로까지 글을 확장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단계에서도 글 쓰는 의미를 느끼기 위해, 이제 브런치로 돌아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