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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ileall Aug 31. 2020

별것 아닌 게 원래...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함께 일하던 지감독이 사망하자 진짜 자기 자신이 누군지 골똘히 생각한다.


  무소유가 가져다주는 여유와 편안함은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깨닫게 한다. 찬실이도 그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별것 아닌 게 원래 제일 소중한 거’라고 말할 줄만 아는 찬실이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게 문제죠.” 장국영 유령이 (길잡이가 되어) 찬실이를 일깨워준다.

  맑은 찬실이는 자신이 영화만 사랑하며 산 줄 안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찬실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물어본다.
  “영화를 안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밖에 모르던 프로듀서 찬실이 질문에 감독 영이 씨 대답이 걸작이다.
  “영화보다 더 중요한 게 많죠. 사람들하고 함께 있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그런 것들도 영화만큼 중요하죠. 영화 안 하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할 일이 없어진 찬실이는 사랑이란 걸 해 보기로 한다. 찬실이가 한 말에 영이 씨가 “좋은 걸 보고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으니까요.”라고 맞장구 비슷한 말을 하자, 40살 찬실이는 영이 씨를 뒤에서 왈칵 안아버린다. 감정 표현을 해 버린다. 하지만 영이 씨는 그냥 누나로 생각할 뿐이라고 침착하게 말한다. 찬실이는 부끄러워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다.


  영이 씨의 반응과 자신이 한 행동이 실망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찬실이에게 장국영 유령이 또 나타나 위로해 준다.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위로는 효과가 있었다. 찬실이는 영화를 찍지 않으면서 자신을 정말 할 일 없는 사람이라 여겨, 그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영화배우 소피의 집에서 매일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국영 유령의 위로 덕분에 주 2회만 가사도우미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와 함께 보낸다. 그렇게 영화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

  주인집 할머니 또한 찬실이 길잡이로 보인다. 주인집 할머니는 하고 싶은 건만 애써서 하며 하루를 보낸다. 애써서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주민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는 거다.


  노인복지회관에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주인집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인 70대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었다. 그때 한글 수업을 듣던 할머니들은 내가 숙제를 내주기만 하면 결석을 하셨다. 거의 수업만 진행해야 했었는데 찬실이 주인집 할머니는 한글 수업에서 시를 써 오라는 숙제를 가져왔다. 주인집 할머니는 찬실이와 나란히 앉아 시를 쓴다.

  “사라도 꼬처러 다시 도라오며능 어마나 조케씀미까.”

  찬실이는 몽글몽글 멍해진다.


  시를 쓸 때 아무거나 써도 되지만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된다고 웃으며 말했던 찬실이가 주인집 할머니가 쓴 알아볼 수 없는 시를 읽고, 눈물을 머금은 채 뭉클해진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찬실이는 그제야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진다. 물론 영화도 함께...


  이제 절정이다. 모든 의미를 가진 마지막 대사다. 찬실이는 보름달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평온한 목소리로 고개 숙여 말한다.
  우리가 믿고 싶은 , 하고 싶은 , 보고 싶은 ...”
  찬실이는 자신이 깨달  달에게 말하고 다짐하여 실천한다. 드디어 오늘을 살아간다.




엔딩 크레디트에 민요풍 노래가 흘러나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찬실이는 복도 많아.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
사랑도 가고 청춘도 가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에헤이 에헤이야 어어라. 우겨라.
찬실이는 복도 많네.
~.~.”


반어적 표현이 내포한 긍정적 의미가 영화처럼 해학적이면서도 슬프다.


https://youtu.be/7t74fcgh81k

(이희문, “찬실이는 복도 많지.”)


(From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 한국,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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