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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Jun 10. 2022

호수로 지는 해

사림호 塞理木湖

사림호는 대충 저기쯤 있음


길고 지루한 평원이 이어진다



투루판에서 누군가 "우루무치-이닝-쿠처 구간을 버스로 가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정말 눈물이 났다. 

허리 아파서. 

우루무치를 빠져나와 2시간 정도 달려 쿠이툰(奎屯)을 넘어선 후론 내내 비포장도로다. 

쿠이툰을 지나면서부터 쿠이툰허(奎屯河)라는 강을 따라 달린다. 

당시에는 포장도로가 없었다. 

버스에서 길가를 보니 '여기서부터 이닝까지 전 구간 도로공사 중'이라 적힌 팻말이 보였다.

버스는 공사 중인 도로 옆, 하천변의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전동 안마기를 엉덩이 밑에 깔고 버스를 탄 느낌이었다. 




이런 길을 달린다.




자리를 받을 때 창가 쪽 좌석이라, '바깥의 풍광을 잘 볼 수 있겠다'하고 좋아했는데 반대쪽 창문으로는 희한한 모양의 산과 초원이 흐르고 내쪽 창밖으론 처음부터 끝까지 공사판이었다. 

건너편 창문으로라도 바깥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빼봤지만 중국사람들은 햇빛 들어온다고 모조리 커튼을 쳐버렸다. 

꿈속을 헤매다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VCD를 보다가, 그렇게 10시간을 달리니 드디어 호수가 보였다. 

차창 너머로 호수가 보이는데 도로가 꽉 막혔다.

외길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두 시간이 넘도록 차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갑갑한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근처를 배회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기사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당 간부들이 이 길을 지나간대요. 그 차 지나갈 때까지는 길을 봉쇄한답니다. 곧 지나갈 거라는데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그래, 여기는 공산당 독재 국가였다. 


잠시 혈압이 올랐지만, 그 덕분에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은 베이징 표준시로 9:45분이었다. 

해가 막 호수 뒤에 선 산속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미미한 물결이 치는 호수 건너편으로 이미 대부분 넘어가버린 해에 그림자만을 드리우고 있는 시커먼 산이 우뚝 섰고 그 위로 물에 탄 잉크처럼 큼직한 구름 한 조각이 번지고 있었다. 

호면은 석양빛을 받아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순도 100% 황금빛이 호수와 하늘을 물들이더니 이내 검은 구름에 화려한 테두리를 입혔다. 

해가 조금씩 더 넘어가면서 석양이 점점 붉어지더니 마지막엔 핏빛으로 변했다. 

호수는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넋이 나가서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노을이 채 가시지 않는 산봉우리 위로 아직 조금 덜 찬 보름달이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버스의 양쪽 차 창을 번갈아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다. 

판타지 소설 속으로 들어 선 기분이었다. 

애당초 사림호에서는 하루만 묵고 이닝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그 자리에서 계획을 바꿨다. 

중국 어디를 가도 도시의 모습은 대동소이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저 아름다운 일몰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사림호의 아침. 안타깝게도 저녁노을은 차에서 내린 순간 이미 물 건너 가버렸다. 두고두고 가슴 아프다.






버스기사에게 부탁해서 천막촌 입구에 내렸더니, 차도 건너편 마을에서 사람들이 마구 달려온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8월 초. 

사스(SARS)가 중국 전역을 휩쓸면서 발동된 봉쇄령이 풀린 지 한 달 남짓한 시기였다. 

당연히 여행객은 극소수였고, 어딜 가도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중국에서. 

나중에 할 얘기지만 단풍철에 구채구 입장하는 데 줄도 안 서고 들어갔다면 이해에 도움이 될까? 

이걸 사스 특수라고 표현하는 건 부적절하긴 한데, 여행객 입장에서는 꽤 편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긴박했다. 

헌터 맵 가운데 정찰 나간 마린 한 마리에게 땅 파고 숨어있던 저글링 50마리가 한꺼번에 대가리 쳐들고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나름 장관이었는데, 표적이 나라는 게 문제였다. 

한 철 장사에 손님은 씨가 말랐으니 다들 눈에 독이 오른 게 보였다. 

형형한 눈빛들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총각! 우리 집 와요!"


"형! 저희가 싸게 해 드릴게요!" 



대략 20명의 호객꾼들이 달려들어 내 팔을 잡아끌고 다리를 잡고 늘어지고 소매를 잡아채는 와중에 한 녀석이 내 배낭을 집어 들더니 냅다 뛰었다. 



"형(哥)! 제가 진짜로 싸게 해 드릴게요!" 


"이 XX야! 반칙이잖아!" 



다른 호객꾼들이 욕을 퍼붓는 소리를 뒤로하고 내 손을 잡고 있던 녀석이 날 잡아끌며 소리 질렀다.



"형! 저 사람 우리 형(老大)이에요! 갑시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야 정상이지만 20:1은 너무했다. 

완전히 얼이 빠져서 그 친구들이 끄는 천막에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XX산장'이라고 간판을 써붙인 천막들이다. 

그제야 한 숨 돌리고 그네들을 보니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저 웃을 수밖에. 

파안대소를 하니 그네들도 멋쩍게 웃는다. 

웃으며 시작하니 기분은 좋다. 

12명 수용하는 파오를 혼자 독차지하고 숙박료 1일 30원에 이틀 묵기로 하고 도장 찍었다. 








호숫가는 초원이다. 저길 하루 종일 말 타고 달렸다. 

 


사림호를 찾은 목적은 승마였다. 

가이드북에는 '스위스 호수 풍광을 닮은 어쩌고 저쩌고'라고 소개가 되어 있었는데, 그보다 내 눈길을 잡아끈 건 '저렴하게 질리도록 말 탈 수 있다'는 한 구절이었다. 

사림호의 승마 투어는 꽤 독특했다.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산장 주인 혹은 직원이 1:1로 따라붙어 말타기를 가르쳐준다. 

비용은 하루 종일 타는데 200元(당시 환율로는 약 3만 2000원)이었다. 

사림호에 사는 사람들은 회족, 카자흐족 등 소수민족인데, 이들은 겨울에는 자기 마을에서 지내다가 봄~가을에만 호숫가에 천막을 치고 여행객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의 관광 상품은 따로 없었던 것 같다. 

중국 여행객들은 단체로 몰려와 이들의 천막에서 음식을 먹고 잠시 호숫가 풍경을 구경하다 떠났다. 



위화감 없는 비주얼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반(북경시 6시 반)에 일어났다. 

세수고 나발이고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밖으로 튀어나갔지만 그래도 춥다. 

8월 초인데 당황스러웠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동쪽을 바라보니 산봉우리 위쪽으로 희미한 오렌지색 테가 둘러져 있다. 

간밤에 이야기해 오늘 하루 종일 승마 선생 하기로 한 왕정(汪征)과 함께 말에 올랐다. 

우선 근처 산 꼭대기에 올라 사림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서 일출을 본 후에 아침나절 내내 산을 헤집고 다니기로 했다.


가파른 산길은 온통 진창이었다. 

험한 길을 꾸역꾸역 잘 올라주는 말이 기특했다. 

경사가 급한 곳이나 유난히 험한 길에서 걱정하는 날 보며 왕정이 말했다. 



"말 다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튼튼해. 걱정 마."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가 탄 말은 거친 숨 한 번 내쉬지 않고 잘도 움직였다. 

일출을 보고 난 후 본격적인 레슨이 시작됐다. 

왕정이 앉는 법부터 고삐 잡는 법, 도는 법, 세우는 법, 뛰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줬다.

대략 3~4시간 정도 왕정을 따라 호숫가를 돌고 나니 말이 내 말을 듣기 시작한다. 

내몽골에서 마부가 끌어주는 말을 탈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이제 혼자 타도 되겠는데? 점심 먹고 오후에 다시 나오자."



왕정의 제안에 일단 산장으로 돌아와 배를 채웠다. 

천지에서 너무 실망한 탓인지 별 기대를 않고 왔는데, 시각마다 눈에 들어오는 사림호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하늘, 하늘보다 더 파랗고, 가까이 가면 바닥이 들여다 보일 만큼 투명한 호수, 병풍처럼 둘러선 아름다운 설산은 그대로 그림이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여기 풍경이 스위스 같대. 스위스 가봤어?"



왕정이 물었다. 

가봤어야 알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답해줬다.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로 새벽부터 찬 바람을 쑀더니 감기 기운이 느껴졌다. 

여행 중에 컨디션이 떨어지면 가능한 한 빨리 회복해야 한다. 

약을 한 알 먹고 잠을 청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산장 사장인 왕정의 매형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한데, 낮에 밥 먹으러 오는 단체 손님들이 있어. 여기다 상을 차려도 될까?"



안 될 이유 없다. 

배낭을 들고 왕정의 천막으로 건너갔다. 

손님들 천막은 깔끔하게 잘 꾸며놓았지만, 정작 본인들이 묵는 천막은 대충 비닐로 둘러놓은 비닐하우스 수준이다. 

자리를 펴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1시간쯤 지나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났더니 감기 기운이 도망간 듯했다. 

그때는 젊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왕정을 채근해서 말 타러 나갔다. 

말이 좀 힘이 없는 듯하여 왕정이 다른 말 한 필을 끌어다 줬는데, 이전 말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올라타고 보니 세상이 내 발 밑에 있는 기분이다. 

놈은 뛰는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살짝만 박차를 가해도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우리 집에서 제일 빠른 말이야. 위험하니까 너무 심하게 몰지는 마."

 


왕정의 말대로 녀석은 무시무시하게 내달렸다. 

말이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주변의 풍광이 옆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왕정의 지도를 받아 서너 번 정도 말 앞뒤로, 옆으로 고꾸라져 떨어질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나서 균형 잡기에 성공했다. 


등자를 밟은 발에 힘을 주고 상체는 고정한다. 

말이 뛰는 리듬에 하반신의 반동을 맞춰 충격이 상체로 올라오지 못하게 훑어낸다. 

스태빌라이저에 올라탄 듯 시선이 고정되고 나면 질주하는 말 위에서도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히 땅 위를 달리고 있는데 하늘을 나는 착각이 든다.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오후 내내 말을 달렸더니 내장이 모조리 흔들려 욕지기가 치밀었다. 

나도 땀투성이고 말도 땀투성이가 됐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모조리 쓸려서 앉을 때마다 따갑기 그지없지만 더없이 상쾌했다. 

넓은 초원을 총알처럼 내달리는 그 짜릿한 기분은 말을 달려보지 않으면 모른다. 




호숫가에 자리한 천막촌



천막촌 근처를 산책하며 저녁식사를 기다렸다. 

왕정의 매형이 투박한 손으로 만들어낸 밥상은 손과 달리 정갈하고 맛있었다. 

이 친구네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왕정네 가족은 회족이다. 

회족의 유래에 대해 물었더니 당나라 말엽 '안사의 난'때 중동에서 용병으로 온 사람들 중 돌아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회족의 선조란다. 



"돌아가려(回) 돌아가려(回) 해도 돌아가지 못해 회족(回族)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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