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면 남는 게 없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가 뭘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오늘 하루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은 자주 싸우셨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이였던 나는 매일매일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일상이었다.
종교는 없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를 했다.
“두 분 사이가 좋아지게 해 주세요.”
“오늘은 싸우지 않게 해 주세요.”
“이혼하지 않게 해 주세요.”
어릴 적 기억은
그저 매일 밤 그런 기도를 하며
보냈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 시기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었다
진짜 지독히도 싸우셨지
대단한 체력들이야,,
다른 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그릴 때,
나는 매일이 조용하기만을 바랬고,
사실 뭘 원하는 것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보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던 시절.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었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기를 바라며
중간 다리 역할을 자처했고
(부질없다)
동생이 나 같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애썼고
(부질없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 당하고 싶지 않아
현재 상황을 숨기며 어울리려 했고
(부질없다)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한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남는 게 없다.
하지만 그때는 자주 나 자신을 뒤로 밀어 두고
아무 일 없는 듯
조용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데 집중했다.
지금 그 시간이 돌아보면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온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 지냈으면
차라리 확실히 놀거나,
확실히 공부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어정쩡하게 공부도 안 하면서,
야자만 매일 하고 밤 11시에 집에 가는
소심한 노잼 학생이었다.
누군가는 자기 안에서 들끓는 감정으로
‘더 나은 나’를 갈망하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나는 그저
평온해 보이는 일상을 유지하고 싶어
생각하기를 멈췄던 것 같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보내고,
수능을 봤다.
수능은 망했다.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어딘가에는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재수를 택했고,
그와 동시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때도 공부를 엄청나게 했던 건 아니지만,
다음 해 수능을 보고
전문대를 들어갔다.
심지어 그때도
원서를 중구난방으로 넣어
전혀 상관없는 학과들에 동시에 합격했다.
그중 “나중에 이 학과를 나오면
그래도 먹고살 길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한 곳을 골랐다.
이유랄 것도 없는
막연한 선택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학교, 알바, 집만 오가며
그냥 그런 하루하루를 살았다.
특별히 남는 기억은 없지만
몇가지 변화는 있었다.
그건, 더 이상 부모님의 싸움이
나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처음으로 내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던 것.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나'를 생각하면서 지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그 상황에 있으니
주어진 일을 했을 뿐
나 같은 성향이 있을 것 같다.
그 상황 속에 놓여야
움직이는 사람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니
어느새 졸업시즌이 왔고
전공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여기 면접 한 번 보러 갔다 올래?"
"아니요"
전공교수님도 어이없어할
거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