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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어서 전공교수님의 일자리 추천을 거절했다.

누가 너 뽑아준대?

by 온해월

졸업하고 사실 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없었다.

돈을 벌 생각을 안 했다.

그냥 방에 누워 매일을 보내고 싶었다.

근데 졸업 날짜가 다가오니

나보다 더 초조한 전공교수님이

면접자리를 추천하셨다.

(아무래도 전문대를 나왔다 보니

일 자리를 졸업시즌에는 추천하는

분위기였다.)


바로 거절했다.

하지만 전공교수님의 말씀

"누가 너 뽑아준대?

그냥 면접 경험한다고 생각해

평생 일 안 할 거야?"


'그래 누가 날 뽑아'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본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뽑아줬어요,,

(알고 보니 하도 사람이 많이 그만둬서

상시모집이었던 회사였다ㅎ)


그 회사, 졸업하고 처음 다닌

그 첫 직장에서 3년을 버텼다.

정말 육체적으로 힘든 회사였다.


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새벽 출근 저녁 9시 퇴근

심지어 스케줄 근무에 회사에서는

그렇게 일해도 근무시간이 부족하다고

쉬는 날에 근무를 하게 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3년을 버틴 것도 용하다)


하루 종일 걸어서 다리는 퉁퉁 붓고

어떤 신발을 신어도 발이 너무 아프고

새 신발을 신어도 하루면 내 발 냄새가 승리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근처에 올까 봐 걱정했지만

쓸데없는 생각. 나의 32살 모쏠이야기도

글에 나중에 담아야지)


그래서 첫 달에 다짐했다.

수습 지나면 월급 좀 더 받을 수 있으니까

바로 그만두는 건 좀 그렇고

6개월만 하고 그만둬야지


근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나

분명 다리도 너무 아프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

몸도 점점 안 좋아져서

그만둘 생각뿐이었는데

6개월이 지나니

몸이 적응을 해버렸다.

그냥 새벽출근 저녁퇴근으로 인한 피곤함만 있지

나머지 힘듦은 싹 날아가게 된 거다.

(날아간 게 아니라 젊어서 괜찮았던 거 같네)


근데 이게 3년을 버틸 수 있는 이유였나?

아니었다.


난 원래 하고 싶은 게 없던 사람이었어서

대학도 점수 맞춰서 간 사람이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은

못했다. 심지어 동기의 합숙제안

(회사와 집의 거리가 10분도 안 되는

최고의 근무환경,,?)


내가 3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회사에 자부심? 일에 대한 성취감?

아니 이렇게 회사를 오래 다니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었다.


나는 육체적으로 힘듦은 버틸 수 있어도

정신적 힘듦은 못 버티는 사람이란 걸

이다음 회사 가서 알게 됐지만

이때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재밌고

그 육체적 힘듦을 같이 버티니

하루하루가 지나고 그게 3년이 되더라.

어디서든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경험이었다.


그 삶의 유효기간이 딱 3년이었다

그때 재밌게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만두게 되고 반복적인 일에서 오는

무력함, 아직 젊다고 생각되는 나이,

가고 싶던 긴 여행이 차츰차츰 내 생각을

차지하다가 사직서를 내게 됐다.


사직서를 내면서 강렬하게 했던 나의 생각은

이렇게 오래 일하고 그만두니

집에서 쉬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으로 가득해

사직서를 냈던 회사에서

한 달 유럽여행 갔다가

돌아오라는 제안에도 단호함으로 대응한

나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이 경험으론 난 배운게 있다.


시작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잘 맞을지 안 맞을지 고민되서

망설이는 느낌이 온다면

일단 하자. 뭐라도 얻는다.

(항상 얻을 순없지만ㅎㅎ,,)


그래도 난 이 회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

그 사람들을 회사를 그만둔 6년 뒤에도

아직까지 만나고 있으니 난 그 회사에서

분명 얻은 게 크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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