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마지막 여름의 한 조각
봄 향기, 여름 공기, 가을 하늘, 겨울 냄새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1년에 4가지를 다 소화하기에는 무리한 일정인지라,
그 계절을 즐길만하면 재빨리 환절기가 찾아와 버린다.
습습한 공기에서 묻어나는 풀향이 풍기고
모든 것의 색이 쨍한 밝기로 생기를 띄는
하늘조차도 여러 색깔을 담는 계절
과즙이 가득한 과일을 즐길 수 있는 아주 풍부한 시기.
이런 여름과 잠시 헤어져야 한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긴팔 긴바지를 입고 외출한 이상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계절마다 특징이 다른 만큼 어울리는 재료도 다른데, 여름엔 특히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 제격이라 레몬이나 라임 같이 상큼한 과일을 특히 많이 찾게 된다.
여름의 대표 맛을 먹고 여름과 진하게 인사를 해보려고 한다.
아주 제대로 먹어보자는 다짐으로 라임 파임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라임을 한팩 샀다.
이번에 처음 라임 파이를 만들어보면서, 라임 파이에 라임이 이렇게나 많이 들어가는지 처음 알았다.
6개가 들은 한팩을 사서, 이 정도면 남겠다~ 남으면 뭐 해 먹을까 고민했는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라임이 많이 필요해서 오히려 모자랄까 싶어 아찔했다.
세상에서 제일 긴장감 높은 라임즙 짜기 시간을 보내며 가까스로 용량을 맞춘 후로는
평화롭게 베이킹을 이어갔다.
크래커를 부신 후에 버터와 설탕을 넣어 파이지를 만들어 틀에 넣고 냉장고에서 굳힌 후
라임 필링을 붓고 오븐에 굽는다.
단순한 레시피라 진도가 금방 금방 나갔다.
15분 동안 오븐 속에서 구워진 나의 라임 파이.
어설프지만, 상상했던 비주얼에 가까워 만족스럽다.
이제 실온에서 미지근해질 때까지 식힌 후에 냉장고에서 3시간 이상 굳혀준다.
이제 정말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
샹티 크림을 한 주걱 듬뿍 떠서 사정없이 파이 위에 얹어주기!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겠는 여름날들처럼 라임 파이도 금방 완성됐다.
초반에 라임이랑 씨름하느라, 데코용 라임을 깜빡하고 남기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애플민트를 뜯어 얹어봤다.
푸르른 게 올라가니 여름용 파이라는 주장이 훨씬 강해졌다.
이제 곧 있음 바깥 풍경도 석양 색깔로 무르익을 텐데, 지금이라도 시원한 푸르름을 맘껏 누려놔야지.
상큼함과 달콤함 그리고 바삭함. 단순한 두 맛과 식감이
간단한 여름옷차림처럼 편안하고 가볍게 내 입에 착 붙는다.
나에게 사계절은 익숙한 순환이기보다는 언제나 여운을 남기는 4번의 만남과 이별이다.
어떤 기억이 입혀질지 모르는 날 것의 계절을 만나는 설렘
그리고 내 것으로 채워진 계절이 다시 보지 못할 과거의 날들에 묶인다는 게
늘 애틋하다.
맛있는 라임 파이를 앞에 두고 울적한 감상을 늘어놓는 건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불쑥 든다.
그래, 이 맛을 잘 기억해놓고 다음의 여름을 기다려야지.
한 조각 남김없이 먹고 나서,
언제나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가을도 반겨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