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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적인튀김요리 Apr 17. 2023

도시에 진짜로 끊어진 건 무엇일까

마흔여덟 번째 책 <블랙아웃>


전기가 일주일 정도 아예 끊어진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고작 몇 시간의 정전에도 어려움이 많은데 일주일 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어떤 세상인지 상상하기가 힘들 겁니다. 뭐가 불편함으로 다가올지 가늠하기가 힘들죠. 당장 내 손의 휴대전화부터 크게는 교통수단까지 세상 모든 것이 정지해버릴지 모릅니다. 오늘 소개하는 <블랙아웃>은 갑자기 모든 전기가 멈춰버린 세상, 블랙아웃의 세상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블랙아웃의 세상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참혹하고 어려운 세상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블랙아웃>은 주인공 동민이의 눈에서 바라본 7일간의 사회를 하루하루 보여주고 있습니다. 7일간 동민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날이 지날수록 그 모습을 달리하죠. 뚝 끊겨버린 전기는 일상적인 모든 장면을 생경하게 만듭니다. 도로가 마비되고 상점들도 영업을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휴대전화, 냉장고, TV, 엘리베이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정지되죠. 그리고 결국, 물과 가스까지 끊기고 맙니다. 하루하루 먹는 것도 힘들어지고 가장 기본적인 생리 현상도 쉽게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죠. 그리고 이런 극단의 상황은 긴 시간 동안 서로 믿고 의지했던 사람 사이의 마음을 며칠 만에 무너뜨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며 삶을 지탱하려고 하죠. 단단해 보였던 사회 구조는 고작 며칠의 블랙아웃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무너진 사회 속 사람들은 허우적거릴 뿐입니다. 


"5일째, 세상이 멈췄다. 전기가 끊어진 지 고작 5일이었다. 도시가스도 물도 안 나온다. 음식을 파는 데도 없고 물을 받을 데도 없다. 그동안 살아온 세상이 이렇게 허술했다는 게 동민이는 믿어지지 않았다."


동민이는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곧 이 사태를 극복할 거라고,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곧 정상화'될 거라고 믿지만 세상은 정상화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어린 동민이는 블랙아웃 사회 속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습니다. 진짜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정부에게서, 와중에도 이익에 눈이 멀어 짐승이 되어버린 기업에게서, 치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찰에게서, 아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밀어내는 어른들에게서 말이죠. 어쩌면 7일간 동민이는 전기가 사라진 모습에서 세상이 달라졌다고 느끼기도 했겠지만 세상을 채우던 마음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얼기설기 흩어진 모습에서 세상이 달라졌음을 비로소 느꼈을 겁니다.


한편, <블랙아웃> 이야기 속에는 동민이가 발견한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또다른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속에 꺼져가는 생명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새끼 고양이는 마치, 블랙아웃 사회 속 동민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민이는 블랙아웃으로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도 새끼 고양이를 끝까지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동민이가 수많은 상처 속에서도 긴 시간 블랙아웃을 견디면서 내색하지 않았던 울분을 토한 건, 새끼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였습니다. 자신이 새끼 고양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동민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동민이를 가차 없이 밀어냈던 어른들과 달리요.


"고양이가 죽었어요. 내가 못 돌봐서 고양이 죽었다고요. 내가 뭘 어째야 하는데요? 좀 가르쳐 주세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양이는 어떻게 돌봐야 했는지, 물은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요, 예?"



7일 후, 도시에는 다시 전기가 들어오지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영영 꺼져버린 무엇인가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블랙아웃>은 앞으로 닥칠 에너지 위기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루는 것을 넘어, 사회 구조적인, 사회 문화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블랙아웃 기간 속에서 동민이를 힘들게 만들었던 건 전기가 없다는 사실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어른들이 없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결국, 사회를 만드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를 만드는 일은 그런 마음을 서로 이해하고 지켜내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있던 줄을 쉽게 끊어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는 사람들은 배제한 채, 언제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다수라고 이름 지어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약자로 대변되는 소수의 행복이나 권리는 쉽게 묵살되는 것이 현실인 것처럼 말입니다. '블랙아웃'으로 인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있는 무엇인가 결핍된 또 다른 형태의 '블랙아웃'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회, 사회구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블랙아웃>을 읽고 아이들도 그런 마음이 한 데 모여 만들어지는 사회를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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