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짓누르는 압박과 무기력 속에서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내 결정에 꽤나 관심이 클 줄 알았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의 원서 접수 날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원서 지원에는 돈과 동의가 필요했다. 결국 내 바람은 6가지의 선택지 중 한 곳에 정착했다. 보건 계열의 학과 여러 개와 장애인 복지학과, 그리고 미디어학과. 내가 원하던 방송 작가의 꿈을 이룰 대학은 한 곳뿐이었다.
모든 대학에 원서를 넣고 동의를 받았다. 다행히 하나 정도는 장난으로 받았나 보다. 나에게는 유일한 진심이었는데 말이다. 희망을 품어본다. 내가 바라는 학과가 꼭 붙기를. 그때가 되면 나의 부모도 이해를 해주지 않을까. 나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는 않겠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희망을 품는다.
원서를 넣은 다음은 쉬웠다. 수능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따위도 필요하지 않은 전형을 골랐다. 면접이 들어가는 전형이 하나 있었다. 면접 질문이 다 정해져 있는 곳이었다. 같은 학교에 지원하는 친구와 함께 준비를 했다. 하필이면 국어국문과를 지원하는 친구였다. 국어국문과의 질문은 내가 답하고 싶은 질문 밖에 없었다. 보기만 해도 답이 술술 나올 것 같은 질문들이었다.
내 질문들은 답이 안보였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얘기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생활기록부 12 페이지를 다 찾아보아도 연관을 지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작가만을 생각하고 채워온 기록부. 이 안에서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내용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찾은 내용은 누군가를 도운 얘기. 선행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게 될 일이 생길 줄 몰랐다. 내가 바라지 않는 학교를 위해 이리 노력하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가. 옆의 친구가 가진 질문은 술술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내 것은 여전히 의문만이 가득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회를 많이 했다. 내가 왜 굳이 원치도 않는 곳을 위해 노력을 하는 걸까.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내가 바라는 선택만을 했을 텐데. 왜 나는 바보같이 나를 생각한다고 느꼈을까. 그저 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쓸모 있어지면 그때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내가 돈을 벌어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 하찮은 바람을 떠올리며 의미 없는 노력을 한다.
여전히 내 부모는 면접에 관심이 없다. 그저 알아서 잘하라는 말 뿐이다. 면접을 가는 날조차 본인이 데려다줄 생각이 없다. 큰 응원을 받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작게라도 잘하고 오라는 말이 힘든 걸까. 내가 꿈꾸던 일을 모두 관두고 본인이 희망하는 길을 걷겠다는데. 왜 나는 여기서 보차 지지받을 수 없는 걸까.
나의 물음이 늘어날수록 내 머릿속 바다엔 부유물이 늘어난다. 잡아서 도움이 될 것들도 아닌 쓰레기만 점점 늘어간다. 이 부유물이 떠다니는 바닷속 깊이로 빠져들어간다. 이 기분은 뭘까. 우울감도 아니고 무력감에 가깝다. 늘어져만 가는 기분이다.
내가 이 면접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기분이 좋을까? 행복할까? 이 학과에 들어가게 된다면 내가 잘 다닐 수 있을까? 버텨낼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둥둥 떠오른 채 늘어진다. 이 넓은 방에 혼자 갇힌 채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