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합격에는 꽤 고난이 있었다. 우는 순간도 기쁜 순간도 교차했다. 매 순간마다 희비가 교차했다. 전화 한 통을 하루 온종일 기다린 날도 있었다. 고난을 거쳐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사실 내가 바라던 학과도 합격했다. 이제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거절당했다. 나는 그 학과의 예비 순서를 가장 눈여겨봐 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말했다.
' 거기서 전화와도 받지 마. 받아도 안 간다고 해. 가지 마. '
애초에 원서 지원을 막았더라면 희망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괜한 희망을 가졌다. 사람의 기대치가, 희망이 차오를수록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 한구석이 부서져 나가는 듯했다. 유일하게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갔다. 아니, 내 부모는 기회를 완전히 걷어찼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뜨려 버렸다.
이래서 용돈을 주지 않았던 걸까. 합격했을 때 낼 작은 돈조차 없는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하긴 언제는 내가 내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던가. 더 이상 기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곳을 거절했다. 그리고 부모의 뜻대로 바라던 대학에 합격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한 것 같다. 나 말고 부모가. 내 눈앞에서 세상 가장 기뻐하는 사람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 이제는 더 이상 건들지 않겠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큼의 압박은 주지 않겠지. 바라던 곳이 아니더라도 전보다는 나의 자유가 생기겠구나. '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또 망각했을 뿐이다. 내 뜻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걸. 그리고 나에게 자유는 항상 없었다는 걸.
성인이 된 내가 밖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술자리도 가지고 멀리 서울을 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화가 왔다. 메시지는 당연한 일이었다. 저녁 6시경부터 내 전화는 울려댔다. 내가 어디를 가든 내 전화는 조용할 새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내 눈치를 보았다. 정확히는 내 휴대폰 너머의 눈치를 보았다. 항상 내게 이제 가야 하냐고 물었다. 지겨웠다.
그래서 난 반항이라는 걸 해봤다. 설득에 가까웠다. 내가 서울을 나간 어느 날이었다. 연락이 빗발쳤다. 친구와 잠시 거리를 두고 전화를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버스가 언제인지 알고 있다. 새벽 늦게 들어가거나 버스를 놓칠 일도 없다. 이미 다 알아보고 나갔으니 걱정하지 말아 달라. 내가 전화를 받을 때마다 모두 눈치를 본다. 이 긴 얘기의 답은 참 간단했다.
' 누가 너 전화 온다고 눈치를 봐. 그런 애가 어디 있어. 그런 애랑 놀지 마. 안돼. 내가 걱정하는 게 뭐 잘못이야? 늦게 들어올까 봐 그러는 거 아니야! '
차라리 나는 통금을 정해달라고 했다. 그럼 그에 맞춰서 들어갈 테니. 그것조차 거부당했다. 나는 무엇을 동의받을 수 있을까. 이 전화 속에서도 내 일행은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미안할 정도로 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살았기에 이렇게 의심을 받고 살까. 평생을 조용히, 얌전히 살아온 게 죄인 걸까.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꽤 되었다. 그 시간까지 나는 이런 통제 속에 살아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하나하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뭐든 글이라면 좋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끈기가 없는 나를 위해 30일 동안 노래 주제를 정해서 적는 걸 목표로 했다. 노래와 함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간략하게 적는 것이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독립적인 일이었다. 정말 작은 노트를 사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끄적여갔다. 매일 밤마다 노래를 들으며 작성했다.
이게 내가 내 목표를 위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방식이다. 아무리 나를 두 발짝 아래로 끌어내리려 들어도 난 내딛으려 노력할 것이다. 꺾고 부수고 망가뜨려도 내 꿈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나 보다. 이렇게 하나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간 도착할 일이 생기길. 그 순간만을 바라며 통제들을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