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가 인사하기도 전인 이른 시간, 든든하게 이른 아침을 먹고 대장정의 첫 걸음을 떼었다. 아이들도 내심 기대를 한 것인지 불평 한 마디 없이 일어나 나름 준비를 하고 나서 주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무척이나 빡센 일정이 첫 날인 것이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갈수록 힘든 코스가 나타나는 것보다 의욕 가득한 첫 날 후딱 해치워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제법 가파른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주변에 나무도 점점 사라지고 그늘도 덩달아 찾기 힘들어진다. 다행이라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주어 땀을 식혀주고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초원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보이는 양 떼는 정말 이국적인 풍경이다. 체력을 보충해줄 요량으로 중간 중간 멈춰서 미리 준비한 샌드위치 등으로 요기를 하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소풍 나온 기분이 되어 힘든 여정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아이들도 경치 구경하느라 넋이 반쯤 나간 모양새다. 이렇게 경치에 정신이 팔리는 것도 기나긴 여정에 대한 보상이지 싶다.
한참을 걷다가 해가 넘어가기 시작해서야 첫 날밤을 선사해줄 숙소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중세 수도원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숙소는 대부분 어제 생장에서 만났던 순례자들로 채워진다. 첫 날이다 보니 아무래도 속도 차이가 크게 나지 않기 때문이리라.
숙소에 도착해 대충 씻고 식당에 모여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은 환경도 낯설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을 텐데 하루 종일 고생한 터라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아니,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밀어 넣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
여전히 둘째는 말을 섞기 어려워하지만 그래도 다 같이 힘들다는 것이 뭔가 서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평소 같으면 큰 녀석이 곁에 앉는 것도 거부했을 녀석이 아무 말도 없이 밥만 먹고 있다. 좋은 징조일까, 아니면 너무 배가 고픈 탓에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걸 과대 해석한 것일까?
좋은 호텔에서 맛난 음식들을 기대했던 아이들은 벌써부터 입술을 삐죽인다. 해외여행은 돈으로 하는 거 아니냐며 묻는 첫째. 우리는 해외여행이라기보다는 배낭여행을 하는 거다. 편안한 여행이 아니라 무려 800km를 걸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지. 힘들수록 내면을 살펴보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마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거야. 그래서 순례자의 길을 걷는 많은 순례자들은 고행을 통해 내면의 무언가를 추구하려고 하는 거란다. 그것은 결코 편안하고 아늑한 환경에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거든.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빤 부자 아니다.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순례자의 자세를 갖추기를 강요해주었다. 첫째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려는 모습인 반면 둘째는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굳이 그런 눈빛으로 아빠를 봐야만 하니?
이 여행이 끝나면 구멍 난 재정을 채우기 위해 몇 달을 야근과 특근으로 때워야 하는 아빠의 처지를 녀석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면서까지 가족의 화목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의 마음을 녀석들은 언제쯤 알게 될까?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자라 사춘기가 되면? 에휴, 앓느니 죽지. 나도 아직 내 부모의 마음도 다 알지 못하면서 웬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