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마주 보고 있는 국경 도시인 생장 피에드 데 포르에서 시작한다. 파리에서 생장까지 대략 1,000km 거리. 한 시간 남짓한 비행이지만 전날 파리까지 오는 좁은 비행기에서 고생한 엉덩이가 아직도 아프다. 지겨운 비행기. 남들이 들으면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지겠다고 한 소리 할라. 국내선이다 보니 좌석에 개인용 모니터가 없어 니들이 더 고생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덩달아 입술의 꼬리도 귓가를 스친다.
그런데 양 옆에 앉아있는 녀석들의 표정은 내 바람과는 영 달랐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데다 좌석에 모니터도 없어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녀석들은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히죽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슬쩍 훔쳐보니 웹툰을 보고 있다. 분명 인터넷이 안 될 텐데. 궁금한 마음에 작은 녀석에게 물어보니 이어폰을 핑계 삼아 들은 체도 안 한다. 고개를 돌려 큰 녀석에게 물어보니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반응을 하는지. 하...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궁금하니 다시 한번 작은 녀석에게 물어보려고 가볍게 팔을 건드렸다. 그제야 이어폰을 빼고 나를 쳐다본다.
“와이파이 돼?”
“아뇨.”
너무나도 덤덤한 목소리. 아우, 이게 아들 맞나? 그래도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다시 한번 물어본다.
“근데 웹툰은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전에 다운 받아놓은 거예요?”
잉? 어제 숙소에서는 와이파이가 되기는 했지만 속도가 너무 구려서 다운로드가 안 될 텐데. 궁금증만 더 커졌다.
“언제?”
“집에서요.”
“잉? 집?”
“네.”
헐. 영악한 것들. 외국은 한국만큼 인터넷이 빠르지 못하니 보고 싶은 것들을 미리 다운 받아 놓았구나. 잔머리 하고는... 그래, 그런 너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희들이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구나.
도착 시간이 어중간하기에 바로 출발할 수 없어 생장에서 일박을 하게 되었다. 남은 시간 동안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와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순례자 여권, 지도, 그리고 숙소 알베르게라고 하는 숙소 리스트를 주는 곳에 찾아가 잘 챙겨놓았다. 길을 걷다 보면 숙소나 식당 같은 곳에서 스탬프를 받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데. 글쎄, 기대가 되긴 하지만 힘들어 죽겠는데 그런 재미까지 느껴질지는.
그래도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