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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l 17. 2024

우째 이런 일이

  피로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잠자리가 불편했지만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쉽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음식도 딱히 불만족스럽지도 않았기에 나름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다 싶다.  아이들도 나름 적응이 되었는지 별다른 불평 없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자, 오늘도 무사히 유익한 하루를 맞이하자꾸나.


  한참을 걷다보니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기나긴 여정의 1/3 정도 되는 곳인데 이곳에는 부르고스 대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유일하게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하던 참이었다.  이후로는 한동안 마을다운 마을을 만나기 힘드니 성당도 구경할 겸 몸도 추스를 겸 오늘 하루는 여유롭게 보낼 계획이다.


  거대한 위용의 성당을 보고 있자니 신의 위대함과 이 성당을 지었을 신자들의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카톨릭에서는 성당의 문을 유독 크게 만드는데 이는 신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미미함을 깨달으라는 의미에서라고 한다.  10m 는 족히 될 만한 문 앞에 서있자니 정말 내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고 작게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보니 핸드폰 하느라 바쁘다.  아, 정말 한 소리 하고 싶다.


  순례자의 길은 워낙에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지라 치안도 꽤나 좋은 편이다.  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시민들마저 지들 밥줄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남미는 남미.  거기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니 조심 또 조심했어야 했다.


  결국 한적한 곳에서 강도를 만났다.  멀리서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오는 모습이 영 수상하던 터라 아이들보다 조금 앞 서 걸었다.  일행은 없는 듯 혼자 건들건들 거리며 다가오는 녀석은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우리를 향해 손을 들어 ‘헤이, 치누’하며 인사를 한다.  그 소리에 그만 긴장감을 놓아 버리고 ‘중국인 아냐.  한국인이야.’하며 대꾸를 했다.  녀석이 주머니에 있던 손을 밖으로 꺼내는데 분명 칼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발로 녀석의 손을 걷어 차 칼을 쳐 내고 이어 녀석의 낭심을 걷어찼다.  이내 앞으로 꼬꾸라지는 녀석을 뒤로 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뛰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자 그제야 뛰기 시작하는 참으로 눈치 빠른 아이들.


  사람들이 많은 곳에 들어서자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그제야 묻는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숨이 가빠 제대로 답변도 못하고 숨 좀 돌리고 말해준다고 하니 어느새 웨이터가 옆에 서 있다.  음료를 주문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자니 조금 전의 그 긴박한 상황이 다시 펼쳐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용기로 공격을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인터폴이 되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벌써 30년도 넘었는데.  위기가 닥치니 몸이 기억하고 움직여준 것일 텐데 30년의 간극이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지 싶었다.  한 놈이라도 더 있었으면 큰일 날 뻔 하지 않았는가.  칼이 아니라 총이었도 몸이 반응했을라나?  에구,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조금 전의 상황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니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뭔가 존경심이 가득한 눈빛이라고나 할까.  후훗, 기분은 좋네.  손이랑 발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 눈치 채지 못했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진정이 안 되네.


  어차피 오늘은 이 마을에서 머물기로 했지만 바깥 구경은 접어야겠다.  혹여 라도 그 놈과 마주치면 안 되니까.  나는 그 놈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그 놈은 나를 기억할라나?  아무래도 외국인인데다 동양인이니 찾으려 마음먹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굳이 찾지는 않겠지.  에고, 하나님, 이 불쌍한 영혼을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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