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사피엔스 호프맨작가의 칼럼
노자는 물에서 배움을 얻어라 하였고 물처럼 살아라, 설법하였습니다.
그에게 가장 닮고 싶은 것 중에 흐르는 물의 철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니체의 철학, 망치의 철학과 초인의 철학을 좋아하고 탐미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장년이 되면서 자꾸만 물의 철학에 관심이 가면서 철학도 별것 아닐 수 있다고 친근해집니다.
정말 간단한 이치인데, 물을 마시는 방법에도 깨달음이 있습니다.
더운 나라 여름 나라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땀이 촉촉하게 송골송골 맺히는 순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찬물을 마시게 됩니다. 이렇게 그 순간을 못 참고 찬물을 연거푸 마시면 몸에 탈이 나게 됩니다.
몸에 탈이 날 수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우리는 미련하게 찬물을 목구멍 안에 털어놓는 것이 감기를 걸리게 하였습니다. 미련한 것이 자신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거지요.
다시 뜨거운 물을 즐기게 됩니다. 보통 뜨거운 차, 뜨거운 블랙커피를 마시는데요. 수증기가 올라오는 뜨거운 물의 김이 이렇게 야릇한 쾌감이 빠지게 합니다. 코로 맡는 향기에서 또 입술에 닿는 그 열기에서도 유희를 느끼면서 사우나 같은 카타르시스에 빠지게 됩니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 안으로 타고 들어가면서 온몸에 퍼지는 쾌감은 몸을 따뜻하게 하여 보호되는 느낌입니다.
보양이라는 것이 몸을 따뜻하게 하고 머리는 차갑게 하는 것이 열정으로 감싼 지적인 생활에서 나오는가 봅니다.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지적인 생각이 돌겠지요. 설마 얼음물을 마시면서 이지적인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하튼 물의 철학은 뜨거워도 차거워도 할 생각들이 많아집니다.
미지근한 물, 상온의 물은 마법과 같습니다. 바로 평범한 것, 일상의 온도가 가장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마음 변화에 따라서 때로는 미지근한 물이 차갑게도 뜨겁게도 느껴지기에 그렇습니다. 평정한 마음으로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에 흘러들어갈 때, 부담 없이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관계가 밋밋할 수 있어요. 오히려 그런 관계가 서로에게 부담 없을 수 있습니다. 또 언제나 만나도 상충되지 않고 갈등도 없지요. 서로 뜨거운 관계, 차거운 관계가 아니기에 특별히 기대하는 것도 없습니다.
오래된 부부 사이가 그런 적당한 온도의 관계가 아닐까요? 적당한 온도에 부담 없는 관계가 오래가는 것입니다. 열기나 냉기가 있는 관계는 특별한 순간에 필요하지요. 그런 특별한 순간을 매일 가져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적당한 선을 긋고 너무 당기 지도 너무 멀리하지도 않는 관계가 마법과 같은 인생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이랍니다.
눈을 감으면 물이 흐르는 것을 상상합니다.물살이 흐르는 것을 귀전에 들으면 철학하게 됩니다.
"물은 마시는 것으로만 이야기해도 할 말들이 차고 넘친다.
흐르는 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끝도 없이 많은 선각자들의 깨달음들이 있다."
그리스 고대 철학자 중에서 물이 만물의 근본이라고 주장한 철학자는 탈레스(Thales)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최초로 만물을 신이 아닌 인간의 철학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한 철인이었습니다.
탈레스는 약 BC 624년부터 BC 546년 사이에 살았던 이오니아 학파의 철학자로, 그는 과학, 수학, 철학 분야에서 모두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서양 철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리며, 그의 생각과 연구는 그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탈레스는 '모든 것은 물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자연 현상을 신화나 신의 개입 없이 이해하려는 시도로, 과학적 사고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물이 생명을 유지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기본적 요소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 철학 내에서 '아르케(arche)'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이는 '시작', '원리', '근본' 등을 의미하며, 이 아르케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구성한다는 사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탈레스의 사상은 이후의 철학자들에게 자연 현상에 대한 합리적, 과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그의 아르케에 대한 이론은 고대 철학의 중요한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물은 대자연의 법칙대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절대로 밑에서 위로 흐르는 물길은 없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입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면 산 정상, 가장 꼭대기의 물이 흘러가서 개울이 되고 계곡물이 됩니다. 이는 폭포도 만들어 떨어지는 강수량이 불어나고 다시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흐름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 흐름을 통제하여 홍수나 가뭄을 막고자 하였다. 댐과 저수지의 물을 저장하고 다스려서 농사를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심지어 물을 순환시킵니다. 떨어진 물을 다시 올려서 다시 떨어지게 하는 인공의 구조물을 보면서 대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기술력과 예술적인 상상력을 교차하게 됩니다. 물을 생각하고 그 철학을 과학적으로 응용한 것입니다. 태초에 물이 흐르는 원리를 꽤뚫어보지 않았다면 철학도 과학도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탈레스와 유사한 시기에 활동하였던 동양의 철학자, 노자의 물의 철학에서 옮겨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기꺼이 머문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구절
헤르만헤세의 명작품, <싯다르타>에서 헤세는 ‘위가 없는 진리’를 찾아 고행을 떠난 싯다르타가 인생 유전을 맛본 후에 마지막으로 뱃사공이 되어 나그네들을 건네주면서 소박한 진리를 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강물을 보시오. 흐르는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오.”
물소리가 흐르는 것을 상상하면 내 몸이 개울물, 강물, 호수, 바다로 흘러갑니다.
빗물이 떨어지는 영상을 촬영하면서, 내 몸에 빗물이 흐르는 것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제 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관찰합니다.
이 열대어들이 사람들을 보는 것인지, 사람들이 열대어를 보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열대어들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 빵 부스러기를 물에 던집니다.
입을 크게 벌려서 빵 부스러기를 입에 넣는 열대어의 쏜살같은 행동은 물에서만 가능합니다.
부드러운 물살을 가르면서 유영하는 열대어는 물속에서만큼은 사람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폭풍 질주가 가능합니다. 그것도 물 안이기에 물을 이해하게 진화된 생명체이기에 가능한 자연의 법칙입니다.
부드러운 물을 가르면서 헤엄치기 위해서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유선형의 몸도 부드럽습니다.
부드러운 곡선이 물결칩니다. 이 또한 노자의 물의 철학과 일맥 합니다.
노자는 물의 부드러운 성질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단단하고 딱딱하다면 결코 물살을 가르는 것이 열대어처럼 물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물속이 아니라 땅 위에서 살아야만 하는 딱딱한 것들도 있습니다. 근육과 뼈입니다. 하지만, 딱딱한 것을 지탱하는 것은 부드러운 살, 피부입니다.
과연 딱딱한 뼈가 지탱하는 것인지, 부드러운 살, 피부가 지탱하는 것인지는 열대어들의 동작에서 관찰됩니다. 부드러운 몸으로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는 열대어처럼 그렇게 우리의 삶도 순조롭게 세파를 가르고 전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열대어들처럼 360도 방향 전환도 부드럽게 직진에서 180도 꺾는 것도
부드럽게 달릴 수 있다면 사람들의 삶도 훨씬 더 순탄하게 이어질 겁니다.
노자의 물의 철학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철학을 어렵게 적은 것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철학자 때문입니다. 노자의 철학, 도덕경의 철학은 어렵지 않고 우리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물의 철학이 우리 실생활과 연결됩니다. 1월의 철학은 <물의 철학>으로 선택하여 봅니다. 왜냐하면 1년 12개월이 물처럼 순조롭게 순리대로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웃님들, 물처럼 부드럽고 자유롭게 흐르는 2024년도 되시길 바랍니다.
열대어 영상입니다. 호프맨작가의 인스타그램 친구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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