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서 배운다.
옛골, 우리 넷째 이모네 동네다. 서울시 서초구와 성남시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우리 집은 서초구, 이모네 집은 성남시였다. 지금은 청계산 입구로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위해 찾는 동네다. 이모네 집은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아주 상반된 집이다. 우리 집은 시끌벅적, 이모네는 조곤조곤 모드다. 이모네는 언니 둘과 오빠가 있다. 딸 둘에 첫째인 나는 이모네 집에 가면 막둥이가 되었다. 막둥이가 된다고 해서 우쭈쭈 나의 뜻을 받아주는 건 아니다. 다만 나와 놀아 달라고 조르고, 양보해 줘야 하는 동생이 없이 막둥이가 되는 게 좋았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버스 타고 세정거장을 가야 하는 이모네 집을 혼자서도 열심히 다녔던 이유는 이것이었다. 버스를 내려서 굴다리 밑을 혼자 걸어야 하는 두려움을 이겨낸 이유도 이것 막둥이 놀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남동으로 이사를 갔다. 한남동에서 옛골까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한남동에서 버스를 타고 지금의 양재동인 말죽거리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이모네로 가는 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길고 먼 거리였지만 이모네 집을 가는 길은 언제나 신났다. 가끔 이모네 언니들이랑 말죽거리에서 만나 언니들이 떡볶이를 사주기도 했었다. 검붉은 색이 도는 떡볶이에 자잘하게 썰어서 튀긴 야채튀김을 묻혀 먹었던 기억은 지금도 세상 최고의 음식은 떡볶이임을 주장하는 내가 되게 했다.
언젠가 여름 방학 때였다. 이모네 집에 자전거가 생겼다. 막내 언니는 내게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씽씽 달리는 자전거를 타는 언니는 뚜껑 열린 스포츠카를 타는 세련된 여성처럼 멋져 보였다. 언니에게 나도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나의 시크한 막내 언니는 자전거는 혼자 타는 거라고 말했다. 무슨 소린가 바퀴는 두 개가 일자로 있는데 혼자서 어떻게 혼자 타라는 건가, 뒤에서 한 손이라도 얹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혼자 타라니 나 혼자 자전거를 어찌 배우나. 언니는 조심히 타보라면서 친절하게 자전거를 건네주고 총총총 사라졌다.
두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는다. 일단 끌어 보자. 음 굴러는 간다. 자전거 두 바퀴가 잘 굴러간다. 이제 잠깐 세운다. 자전거에 앉아 보자. 좀 높다. 언니가 나보다 키가 크다는 걸 확인한다. 자 이제 오른쪽 발을 발판에 얹어 보자. 음 여기까지는 폼 난다. 이제 왼발을 떼고 발판 위에 놓고 두 바퀴가 굴러가면 된다. 그러면 자전거를 타는 거다. 아까 언니처럼 나도 자전거 타는 시크한 여성이 된다. 하지만 왼발이 땅에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왼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나는 고꾸라질 텐데 발을 어찌 떼냔 말이다. 오른발만 발판에 올려놓고 발판을 뒤로만 돌려 댄다. 아무도 보지 않지만 한자리에 서 있는 건 부끄럽다. 다시 자전거를 잡고 몇 걸음 간다. 얼마 동안인가 자전거와 씨름을 하니 땀이 난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맘대로 안 움직여 주는 자전거도 짜증 나고 나만 놓고 간 언니도 야속해진다. 그만 포기하고 이모네 집으로 돌아갈까? 하지만 아까 바람에 날리던 언니의 시원한 머리카락이 떠오른다. 아 한 번만 굴려 보고 싶다. 이놈의 바퀴 둘을! 비틀거리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서도 넘어지지는 않는다.
난 겁쟁이다. 다치는 게 정말 싫다. 까지고 피를 보고 그 따가움을 느끼고 약을 바를 그 행위가 다 싫다. 아주 조심히 아주 신중히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모시듯이 자전거를 탄다. 아니 타려고 애를 쓴다. 나의 끝없는 발판 돌리기를 보고 하늘에서 감동받으셨나. 자전거 바퀴가 두 바퀴 돈다. 이맛이다. 아직 내 머리카락은 날리지 않았으나 이맛이 틀림없다. 나도 이제 자전거를 탄다. 나의 열한 살 자전거 타기는 이렇게 성공했다.
사진출처-픽사 베이
작년 가을이다. 날도 좋고 시원해지는 게 이게 좀 살 것 같아지는 계절이었다. 코로나로 일 년 내내 학교도 못 가고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 2021년은 매일은 아니지만 학교도 가고 친구들도 종종 볼 수 있는 숨통 트이는 해였다. 우리 가족도 야외는 좀 나가 볼 수 있겠다 싶어 여의도 공원으로 나갔다. 몇 년만의 여의도인가. 여의도 한강공원과 여의도 공원은 마치 해외 같은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로 멋있어져 있었다.
내가 공원 풍경에 빠져 있는 사이 아이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자전거 대여소였다. 마침 아이들 씽씽이와 함께 챙겨 온 안전장비들도 있었다. 가격도 한 시간에 천 원 참 예뻤다. 아이들과 맘에 드는 자전거를 고르는데 4학년인 큰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보겠단다. 잡아주는 것도 귀찮고 타다 다칠까 염려스러워 보조 바퀴가 있는 네발 자전거를 타자고 설득했다. 저만치서 네 발 자전거를 고르고 있는 7살 둘째를 바라보며 아니란다. 자긴 이제 두 발 자전거를 타야겠단다. 아이 아빠도 타보라고 거든다. 자기가 잡아 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거드는 건가. 아고 모르겠다. 타려면 타 봐라. 나는 헬멧도 없이, 무릎보호대도 없이 탔는데 다 갖추고 타는데 다치지는 않겠지 싶어 타보라고 했다.
아이 아빠는 조곤조곤 설명해 준다. 그리곤 한발 물러서서 타보란다.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는 않지만 잡아 주지도 않는다. 뒤에서 자전거 좀 잡아 주지. 그냥 혼자 타란다. 중심 잡고 발판을 굴리란다. 저 멀리서 바라 보이는 둘의 모습을 보니 겁이 난다. 아오 눈을 질끈 감는다. 저러다 넘어질까 무섭다. 비틀비틀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그때가 생각났다. 여름날 낑낑대며 자전거를 타던 내가 떠오른다. 내가 둘째를 보고 아이 아빠가 첫째를 보다가 자리가 바뀌었다. 혼자 비틀거리는 아이를 보니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 오른발에 힘을 주고 굴려야지. 바퀴가 굴러야 안 넘어지는 거야. 계속 발판만 뒤로 돌린다고 자전거가 가니, 앞으로 굴려야 가지. 잡아줘? 어디로 가?" 나의 잔소리는 끝이 없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으... 음”
그래 타봐라. 가만히 있어 보마. 언니가 그랬지. 자전거는 혼자 타는 거라고. 그렇게 아이는 두 시간을 낑낑댄다. 비틀댄다. 그러다 드디어 두 발 자전거가 앞으로 나간다. 나의 처음과 같이 머리카락이 날리는 시원한 자전거 달리기는 아니지만 자전거 바퀴가 돌아간다. 아이가 나를 바라보며 씩 웃는다.
아이를 바라보는데 내 마음이 뜨거워진다.
이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잡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고 그냥 보기만 하라. 아이의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넘어질 듯 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기도하고 바라봐 주는 게 부모의 자리일까?
너에게서 나는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