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콤플렉스
“그럼 엄마는 어느 대학 나왔어요?”
큰아이가 묻는다.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아이가 가장 수준 높다고 생각하는
서울대에 갈 수 있는지, 우리 집 주변에 있는 대학들은 어떤 대학인지 등등 대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헉’
이럴 때가 오는구나.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콤플렉스. 학력!
전문대를 졸업한 나는 이력서에 학교 이름은 딱
한 번 써봤다. 회사를 한 곳만 쭉 다녔던 건 아니었지만 워낙 바닥이 좁은 업종이기도 했고 그중에서도 같은 업무를 맡은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이직을 할 때도 대표님과 면접만으로 회사를 옮겼다. 이런 일들은 학교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를 잊게 해 주었다. 열정이 넘쳐나던 20대,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 언젠가는 사장이 되어야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달리다 보면 작게라도 회사를 운영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니 내가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디를 가지? 편입? 일반 대학을 가자니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매번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방송통신대학을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친구 언니가 경영을 전공하면서 버릴 것이 없는 학문이라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 경영이다. 회사를 운영할 테니 도움이 되겠지 싶었다. 3학년 편입을 하고 2년 안에 졸업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렸다. 그래, 열심히 달렸다. 야근이 너무나 일상이던 때였고 토요일도 출근했던 시기였다. 주 4일 야근, 주 1회 스터디를 참여했다. 정말 포기하고 싶은 과목들은 일요일 도서관에서 스터디 친구들에게 매달려 꾸역꾸역 학점을 맞추면서 나의 목표인 2년 안에 졸업을 해냈다. 이 덕에 어딘가에 학력란이 있으면 난 ‘학사’라고 적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게 경영을 공부한 크고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 후로 난 회사를 만들지 않았으므로......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얼마 남긴 시점이었다.
통화 중에 내게 묻는다. “친구 아버님이 출신학교를 물으시는데요.” 주례를 맡아 주신 신랑의 친구 아버님이 주례사를 준비하시며 내 출신학교를 물으셨던 거였다. 맞다. 난 연애 시절에 이 사람에게 학교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전문대를 졸업했다고만
이야기했었다.
“전문대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학교 이름까지
얘기해야 해요!”
괜스레 뾰족하게 대답이 나왔다. 그렇게 남편은 나의 출신학교도 모른 채 결혼했고 지금도 모른다.
아니 모르는 척일 수도 있고! 이렇게 보면 사기 결혼 같기도 하다.
고등학교 시절, 꿈은 높고 공부는 하기 싫은 학생이었다. 지금도 가끔은 죽어라 공부해 볼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좋은 대학 못 간 게 후회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 그 시기에 해야 할 일에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더욱 이런 생각이 커졌다. 딸에게 엄마의 리즈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줄 만한
시절이 없고, 엄마가 너와 같은 학생 때는 학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라고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
어찌 보면 이런 콤플렉스가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책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항상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던 경험이 책을 드는데 두려움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책에서 육아 방법을 얻기도 하고, 사람이 힘들어질 때도 책으로 위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꾸준한 독서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첫아이 출산, 친정엄마의 선종, 둘째 출산을 경험하면서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더불어 회사에서 나의 입지에 흔들림을 강하게 느낄 때였다. 나의 삼십 대가 결혼, 출산, 육아로 끝나는 것 같았던 서른아홉. 그때 시작한 토지 전권 6개월 안에 읽기는 나를 ‘책이라도 읽는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편을 사서 읽으며 작은 성공의 기쁨을 느꼈다. 그 자신감으로 ‘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재미를 맛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바로 이것이 내 배움이요, 교육이었다.
빌려 쓰는 책상에 앉아 나를 버리고 떠난 오빠 흉내를 내면서 모르몬 사상의 한 분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낸 그 긴긴 시간들 말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 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읽고 익히는 것에 대한 동경, 그것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경험, 이것이 어른의 공부가 아닐까?
2023년 새해 첫 책으로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 정김경숙>를 읽었다.
워킹맘으로 일도 자기 관리도 척척 잘 해내는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었다. 작가 분은 50대에도
새로운 일을 도전하고 구글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책을 보니 나도 달려 볼까, 피아노도 배워 볼까 하는 마음이 충동질했다.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고 머물러 있을 법도 한데
새로운 자리에 가서 실수도 하며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새로운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는 내게 자극이 되는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이런 사람들은 원래 공부를 잘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래.’로 생각이
귀결된다.
“이런 분들은 알고 보면 다들 학력이 좋아.
그게 뒷받침되니까 잘되는 거 아닐까?”
“학력 열등감은 서울대 출신 아니면 다 있을 거야!” 나의 콤플렉스를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이야기한다.
"너도 학교 다닐 때 그런 경험 많잖아! 고등학교 때 동아리 대표도 하고 대학 때 학교 일도 맡아서 하고!
그런 경험도 아주 중요 하지!"
힘이 되는 이야기는 받아들이는 내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힘이 된다. 나의 학력 콤플렉스는
과거에 머물고 있는 나의 마음 상태다.
과거의 엄마 학력, 과거의 엄마의 리즈시절 말고
지금의 엄마의 공부, 지금 엄마의 달리기는 아이들이 직접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모습이다.
나를 더 좋은 어른으로 만드는 건 학력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마음 아닐까?